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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리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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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경남 작성일09-08-28 15:02 조회2,1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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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교양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고 있으면 늘 안쓰럽고 슬프다. 토요일 저녁시간이  무겁게 가라 앉는 기분이고 ,마음을 아리게 하는 터라 애써 프로그램을 외면하곤 했다. 슬픔은 내 주변의 일상으로 족하다고 생각해 왔다. 슬퍼서 느끼는 긴 카다르시스 보다 개그맨의 짧은 유머 한마디가 토요일 저녁 분위기에는 괜찮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처지가 딱한 사람을 돕는 로그램은 내게는 아직 어색하고 익숙치 않았다.

 
  봉사라는 것을 별로 해 본일이 없었다.학창시절 청소를 하거나,길을 묻는 낯선 이에게 길을 알려 준적은 있었지만, 자발적이지 못했다. 그저 주간 당번이 되면 청소를 했고, 길 잃은 사람이 길을 물어오면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봉사가 싫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체득도 해 보았다. 막연히 자원봉사가 내게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번 혹서기 마라톤에서 자봉을 처음 해봤다. '자봉'이란 말이 '자원봉사'의 준말임을 마라톤 입문후 처음 알게 되었다. 마라톤 자봉은  '사랑의 리퀘스트'처럼 처지가 딱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리라. 눈물이 앞을 가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그래서 자봉을 기꺼이 신청했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자봉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집을 나섰다. 놀러 갈때도 이렇게 일찍 나오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다 문득 내 몸속에  대단한 휴머니즘의 봉사정신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울 대공원 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서자 태극기를 드신 몇분의 주최측 요원들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세상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배정받은 자원봉사 장소는 제 2급수대 였다. 제 2급수대로 올라가는 길은 나무잎 가로수가 서로 맞 닿은 숲길이었다. 벌써 세번째 찾는 오솔길이다. 그 길은 프로스트의 길처럼 두갈래 길이 아니었다. 널찍한 도로나 반듯한 길거리보다는 걷다가 언제든지 걸터앉아 다리쉼을 할 수 있는 김소진의 길 처럼
왠지 위로가 되는 그런 길이었다. 그 길은 아리따운 여인과 손을 잡고 걸으면 참으로 황홀했을 아름답고 정감있는 길이었다. 동물원이 개장 하려면 아직 이른 시간이다. 숲길은 참으로 조용하고 8월 15일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곳이었지만 나무 그늘이 있어 시원했다. 조용하고 시원한 이길에 천명이 넘는 선수들이 거친숨을 몰아쉬며 달린다고 생각하니 동물원 사자를 만난 듯 나도 모르게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제 2 급수대에 도착하자, 벌써 급수대 주변으로  테이블,물과 얼음, 음료수와 수박, 떡,소금,구급함등 자봉에 필요한 도구들이 즐비하에 놓여 있었다. 새벽부터 진행요원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주최측으로 부터 자봉요령 설명을 듣고, 자봉 티셔츠로 갈아 입었다. 그때부터 나를 비롯한 자봉 요원들은  손과 발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동물원 입구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며 긴장된 몸을 움직이고, 자봉하는 우리들은 숲길에서 급수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선수나 주최측,자봉요원 모두 '마라톤'을 위해 함께 땀을 흘리는 새 역사를 쓰는 날이리라...
 
  7시 50분... 자봉을 위한 준비는 거의 마무리 되었다. 파란 플라스틱 통에 물과 얼음을 같이 넣었고, 이온음료,콜라도 쉽게 따를 수 있도록 분리했으며,수박도 썰어 놓고,구급약도 꺼내 놓았다. 이제 선수들을 맞이하는 진정한 봉사활동이 시작될 것이다...  제 2급수대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급수대 였다. 오른쪽에서는 빨간 유니폼을 입은 00 마라톤 클럽에서 북과 꽹가리등 풍물악기를 동원해서 대회 분위기를 한층 돋구고 있었다.
 
  8시가 되었다. 출발시간이다. 선수도 아니건만 가슴이 낮게 떨리는 기분은  왜일까?  숲길에서는 출발 총성이 들리지 않았지만, 자봉하는 일행모두  미흡한 점은 없는지 한번 더 확인해 본다. 때때로 시간을 보며 남궁옥분 노래처럼 선수들이 어디쯤 가고 있을까  떠올려 본다..지금쯤  코끼리 열차 2바퀴를 돌고 있겠지..동물원 언덕을 1바퀴 뛰고 있겠지...언덕에서는 무지하게 힘들텐데, 라고 생각하며... 나는  8월 2일, 8월 9일 23.2km의 리허설 대회에 선수로 출전했었다. 혹서기 대회도 뛰고 싶었지만 ,당일 저녁에 12시간이 넘는 산행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한번에 풀코스와 산행은 무리가 따를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시한번 물과 수박,음료수를 마시기 좋게 배열한다. 종이컵은 손에 쥐기 좋게 틈을 벌려 급수대 앞쪽으로 정렬하고, 이온음료도 내 바로 옆에 뚜껑을 딴채로 박스를 쌓아놓는다. 혹서기 마라톤 자봉만 세번 하셨다는 인상 좋으신 분께서 선수들이 오면 이름을 불러주자고 자봉요원들에게 언지를 주셨다. 그래야 힘이 날것이라고...
 
   자전거 한대가 언덕을  넘으며 거친 숨소리로 '선수들이 옵니다! 선수들이 와요!'라고 외쳐댄다.  그 외침은 호외 신문을 하늘로 던지며 목청을 키우는 신문 배달원의 긴장된 목소리 같기도 하고, 8월 15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환희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우리들은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달리는 선수들의 이름을 빠르게 불러주며 화이팅을 외쳤다. 그러자 선수들은 우리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아름다운 꽃이 되기 시작했다. 마치 그것은 김춘수님의 시처럼 선수들은 자봉요원들에게, 자봉요원들은 선수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배번위에 이름을 붙인것은 선수들에게도,자봉 요원들에게도 유용한 좋은 기획인것 같았다. 
 
그들은 급수대로 다가와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물과 음료,수박을 보충했다. 선두그룹이 지나가자 수십명의 선수들이 언덕을 차고 급수대로 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급수대는 정신이 없었다. 선수들은 물보다 이온음료를 더 많이 찾았다. 이온 음료를 담당한 나는 그때부터 선수 이름을 불러 줄수가 없었다. 종이컵에 이온음료를 따르는 속도보다 선수들의 음료 집는 속도와 숫자가 더 빠르고, 많았기 때문이었다. 옆에 계신분들에게 긴급 지원요청을 했다. 이온음료 담당이 두세명으로 늘었지만 , 한 시간여 선수들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종이컵에 음료만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따라 준 음료수를 마시고 선수들이 힘을 내서 달린다고 생각나니, 자봉에 힘이 났다. 음료수 따르는 속도도 빨라졌고, 병 뚜껑 돌리는  힘도 쌔진것 같았다. 선수들이 마시고 버린 수천개의 종이컵을 보고 있으니 내 땀의 결정체 같아 저절로 마음이 흐믓해졌다. 이것이 자봉의 보람과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선수들은 첫번째 바퀴에선  달리면서 음료수를 집었지만 바퀴수가 많아지자 급수대에 걸음을 멈춰서서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수록 급수대는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체력이 저하 된 선수이름을 일일히 호명하며 화이팅을 외치기 시작했다. 홍길동 화이팅,00마라톤 아무개 화이팅,힘네세요...자봉을 하면서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마라톤 클럽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단체로 혹서기 마라톤에 출전을 한것이다. 등뒤에 새긴  졸업깃수 번호를 보고 선배님,후배님 화이팅이라 외쳤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는 내 가슴속에서도 묘한 파도의 물결을 느끼게 했다.저 틈에 끼여서 언덕을 오르 내리며 달리고 싶었고,그들과 같은 땀이 가득한 숨소리를 느끼고 싶었다. 마라톤 출발한지 이제 5시간이 흘러갔다.선수들의 속력도 줄고, 인원도 줄었다. 급수대에서 조금은 여유있게 선수들의 지켜보았다.  줄넘기로 언덕을 달리는 선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힘겨워 하는 모습,잔뜩 찡끄리며 불편한 다리를 내 딛는 선수의 모습.. 연신 땀을 훔치며 고개를 떨구며 달리는 선수들....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감동스러웠다. 선수들의 모습은 인생의  파노라마 같았다. '사랑의  리퀘스트'도 아니건만 내 마음속에서 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길고 오래갈 것 같은 감동과 카다르시스가 가슴속으로 전율되는  순간이다.
 
  오후 3시경  우리는 감동의 혹서기 마라톤 자봉을 끝냈다. 더 이상 우리 급수대를 오르는 선수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6시부터 시작한 마라톤 자봉이 9시간만에 끝났다. 마라톤  풀코스 시간보다 긴 자봉이었다. 숲길을 터벅터벅 내려 가는데, 주최측에서 고생하셨다고 악수를 청하신다... 사실 고생보다 스스로 얻은 느낌과 감동이 컸던 대회였는데 말이다. 이제는 '사랑의 리퀘스트'를 관심있게,어색하지 않게 볼 수 있을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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