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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서기는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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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명일 작성일10-08-20 17:33 조회2,0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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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늘 경쟁이다.

좋은 말로 선의의 경쟁이라고도 하고

야박한 말로 약육강식이라고 합리화 시키기도한다.

어떤 말이 선이고 악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때에 따라 알맞은 말을 찾아 쓸 뿐이다.

 

혹서기 대회.

내가 마라톤을 알고 난 뒤,

동아마라톤이 끝나고 여름 언저리에 이르면

전설처럼 들려주던 혹서기의 무용담이 있었다.

나와는 DNA가 다른,

광기로 가득찬 핏빛 눈동자와

지옥을 깨부수고 돌아온 불사조,

그리고 무시무시한 필살기 하나 정도는 옵션으로 갖추었으리라 짐작했다.

결코 그런 대회는 나와는 무관한 먼 별나라 이야기이며

자신의 만용을 시험하는 일종의 [광란의 장]정도로 치부했다.

 

2010년 8월 15일

 나는 어지럽게 인파가 뒤섞인 광장에 섰다.

몇년동안 선배님들로 부터 무의식중에 교육된 혹서기의 혹독한 이미지에 주눅 든 모습으로

구령에 맞추어 몸을 풀었다.

선의의 경쟁도 약육강식도 부질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지옥같은 코스에서 완주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절박한 소망이었다.

 

지웠다.

눈앞에 경쟁자도

갑옷처럼 단단한 기록의 시간도

때때로 구름처럼 일어나는 새털같은 욕심도 지웠다.

맘 같아선 납처럼 무거운 몸뚱아리 마져 지우고 싶었다.

내 몸이 시키는 대로 나가리라.

내 작은 소망... 완주를 위하여.

혹서기는 불안함을 넘어 공포에 맞닿아있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긴 행렬은 꼬리를 물고 여름 한 가운데로 빨려들었다.

이제부터 이 경쟁자들이 내뿜는 열기는 여름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다그치는 상승작용으로

길고 짧음과 빠르고 느림, 침묵과 소란스러움

이 모든것을 차이 없이 녹일것이다.

스스로를 냉각시키지 못하면 형체도 없이 자신을 잃어버릴 것이다.

 

비워라.

혹서기대회가 아니면 나를 온전히 비울수 있을까?

새벽에 내린 비 덕분에 산빛은 막 행구어낸 채소처럼 싱그러웠고

골골이 안개를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폭포도 재법 물소리를 냈다.

긴 오르막과 긴 내리막

지나쳐가는 주자의 달아나는 발소리와 벅찬 숨소리.

구절양장 끝을 내 보이지 않는 코스.

음악의 선율인듯, 오선지를 오르내리는 음표처럼 그렇게 몸을 따라  마음도 달렸다.

선배님들이 그렇게 죽을 맛이라던 지옥코스가 이 정도 라면

지옥도 그리 나쁜 것 만은 아닐 듯했다.

가벼웠다.

우화하는 나비처럼.

욕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나를 속이던 불신.

그 욕망의 유혹이 사라진 곳에 마라톤 풍경이 보였다.

마라톤이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지만

싸움이라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함은 만고의 진리가 아닌가?.

굴곡진 다섯고개를 욕심을 풀어내어 즐겁게 달렸다.

 

샤워하고 밥먹고.

일상이다. 이 일상이란 것을 누리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다투거나... 일상도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 완주자들은 열무비빔밥을 일상처럼 받아들었다.

하지만  마라톤 평원을 달려온 그리스의 병사는 죽음으로써 열무비빔밥이라는 일상을 대신했다.

하여,오늘 마라톤이 나에게 얼마나 위대한가. 이렇게 일상을 얻었으니 말이다.

완주의 고단함과 열무의 신내음에 나도 모르게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한 그릇 비웠다.

 

광란의 장도 아니요. 지옥의 코스도 아닌

그저 욕심만 줄이면 열락의 미소로 가득한 천상의 코스.

남녀노소, 그리고 빠르고 느린 주자들.

열정적 응원과 헌신적 스탭들.

모두가 하나되어 즐거운 대회.

 

혹서기대회는 열무비빔밥 같다.

따로 국밥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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