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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맞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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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준호 작성일07-03-06 10:44 조회2,9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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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체가 머리에 닿는 순간 깜짝 놀라 눈을 뜹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하철 유리창에 부딪힌 모양입니다. 상계동가는 주말 저녁의 지하철에는 고개를 꺾은 채 단잠 청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띌 뿐, 젊은 연인들의 다정한 속삭임도 직장 동료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도 들려 오지 않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즐거웠던 봄나들이를 되돌아봅니다.




1. 나에게 특별한 무엇



오늘 열린 서울마라톤대회. 주최측에서는 10주년을 맞이하는 마라톤대회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으랴! 비록 부실한 다리를 이끌고 패잔병처럼 완주를 했다고는 하나 나에게도 이번 서울마라톤대회는 함께 기뻐할 특별한 무엇이 있음입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서울마라톤대회를 완주함으로써 서울마라톤클럽에서 주최하는 3개의 주요 대회를 모두 완주한 일입니다.



벌써 지난해가 되어버린 8월 어느 날, 나는 과천대공원의 숲길을 달렸습니다. 마라톤에 입문한지 5개월 밖에 안 된 내가, 언덕으로 가득한 숲길을, 그 더운 날씨에 달리겠노라 결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그 무모한 배짱은 어디서 온 것인지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완주 기록으로 말하자면 내 삶의 모습보다 훨씬 겸손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 날의 즐거운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특별한 경험은 11월의 서울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할 용기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먼저 썼던 후기를 통해서도 밝힌 바 있지만, 서울울트라마라톤은 혹서기마라톤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이며, 도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토 박영섭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완주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니, 가을의 전설 치고는 믿기 어려운 전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달리기를 마치고 탈의실 들어갔다가 박 선생님과 함께 달리셨던 분을 만나, 지난 가을 즐거웠던 기억을 회상해보는 뜻밖의 행운을 얻기도 했습니다.




2. 올림픽공원, 유년시절의 고향같은



누구라도 그러하듯 처음은 설레임입니다. 그 설레임을 담고 저마다 힘차게 달려갑니다. 나는 몇 몇 글벗들에게 '걷는 듯 달리는 신비의 주법'으로 기필코 꼴찌를 차지해서 울릉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까닭에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달리기로 작정했습니다. 후미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갑니다. 나는 속으로 목표 달성이 임박했음을 기뻐하며 그들을 배웅합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을 덮고 있던 검은 구름은 수증기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함인지, 한 두 방울씩 대지에 비를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빗속의 달리기를 예상했던 까닭에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빗속의 달리기는 처음인 까닭에 조금의 부담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반환점이 가까워 지면서 이 길이 지난 가을에 달렸던 그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서늘한 가을 바람, 이른 새벽에 옹기종기 모여서 김밥을 나눠 먹으며 선전을 다짐하던 올림픽공원이 생각납니다. 한계 그 너머의 한계를 경험하게 해 준 올림픽공원은 마치 유년시절의 고향을 만나는 반가움이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설날 연휴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처럼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달려 갑니다. 어차피 고향 떠난 사람들에게 있어, 고향이란 마음 속에서만 존재하는 동화 속 세상인지도 모릅니다.




3. 갈대가 일어선다.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 옵니다. 서울 가거든 잘 살라고 손 흔들어 배웅하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같은 바람이 불어 옵니다. 지친 다리에 힘 얻어 달리라고 응원처럼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같대 밭을 지납니다. 겨우내 마른 갈대는 바람소리에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마른 갈대 아래에는 아마 봄비 맞아 새싹 돋는 부지런한 생명의 용솟음이 가득할 겁니다. 봄은 어느새 우리들 곁에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봄은 언 땅을 뚫고 솟아 오르는 여린 새싹들의 힘찬 몸짓에서 시작됨을 알겠습니다.




4. 함께 맞는 비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무거운 발걸음 위로 쏟아지는 빗줄기는 영화 속에서 만나는 낭만의 빗줄기가 아닙니다. 문득 '함께 맞는 비'라는 쇠귀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햇살 들지 않으면 아직은 서늘한 겨울의 자락이 남아 있는 한강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야 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며, 동반이며, 동행이며, 공감이 되어 주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겨운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그들과 더불어 함께 비를 맞으며 정직한 땀방울 흘리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중랑천에서의 홀로 달리기가 즐거운 사색의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사색이란 어쩌면 발없는 말의 헛된 몸짓처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상상의 발현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친 호흡 쏟아 내며 그들과 함께 달리는 일이야말로 함께 비를 맞는 사람의 정직한 위로라고 믿습니다.




5. 특별한 감사를 담아



꼴찌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비록 울릉도 여행권을 얻지는 못했지만, 서울마라톤이 선물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큼직한 결실을 거둔 하루였습니다. 특별히 오랜 시간 기다려 주고, 영등포 시장에서 막걸리 한 사발 함께 마시며 정담 나눴던 좋은 친구에게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 만들어 주신 서울마라톤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수고하신 모든 봉사자님들에게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비를 맞으며 달리신 모든 분들과 가족 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은 -
신선한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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