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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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민호 작성일07-03-20 18:55 조회3,2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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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아저씨가 뛰고있어"
"저 아저씨 이렇게 하고 뛰는데...."
거리를 혹은 운동장에서 뛰다보면 나의 모습을 보고 이상한 듯,흉내를 내는등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나의 마음과 머릿속은 복잡함을 버리지 못한다.
나 자신이 정상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뛰다보면 한번더 관심을 보이는 시선들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무엇인지도 모르는것에 내 자신이 열심히 빠져드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
어릴적에 뇌성마비로 왼쪽 수족의 마비로 오른쪽보다 모든것이 짧고 굳어 있는 뼈로 인해 뛰는순간 바로 심한 통증을 느껴 어떤 경우에는 마음 속으로 울면서 뛰고 있는 장애 3급인이다.
어느누가 나같은 장애인이 105리를 달린다고 믿겠는가>
일반 장애우들은 활동장애는 있을지 모르나 나처럼 통증을 동반한 가운데 마라톤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줄 안다.
5년전 내가 근무하고 있는곳에 인천마라톤 클럽 소속 이홍근(57세)씨의 권유로 5km를 뛰고 난뒤 (아내는 10km)알수 없는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 안산마라톤 클럽에 가입, 회원들의 적극적인 도움하에 나름대로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그후 춘천마라톤을 비롯한 5번의 풀코스도 완주하고 하프대회는 수없이 참가하며 나름대로 펀런의 보람을 맛보기도 하였다.
특히,올해의 첫 풀도전인 제 10회 서울 마라톤 대회는 마라톤의 매력에 빠진후 가장 먼저하고 싶어하는 꿈이 이루어지는 대회이기에 나에게는 무한한 자유로움과 희망,사랑을 느끼는 대회가 되었다.
다른 마스터스 선수처럼 서브-3달성, 대회 입상, 최고의 기록 경신등의 꿈이 아니라 소박한 하나의 소원이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부부가 같이 풀코스를 도전하여 완주후 "부부완주기념사진"한장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번 풀코스를 완주하였지만 부부완주 기념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
각자 서로 다른 풀코스(아내-동아,나-서울등)의 참가로 어려웠다.
올해는 특별히 아내도 같이 동아마라톤을 포기하고 서울 마라톤에 참가하여 특별한 꿈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제60회 춘천마라톤을 같이 완주한후 올해 처음 도전하는 서울마라톤대회의 105리길을 무사히 완주하고 펀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여러번 도전의 기회를 넘긴것인데도 긴장이 되었는지 새벽 2시 40분경에 눈이 떠져 잠 못이루고 는 5시기상 우리부부와 같이 갈 클럽 회원들을 만나 7:00경에 대회장 도착후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30여분의 조깅으로 몸을 풀고 대회준비 마무리를 하였다.
어제의 일기예보상으로 오늘 비가 많이오고 강한 바람이 불것이라하여 걱정이 앞섰다.
안그래도 한쪽발로 뛰고 있는 나는 땀이나 물에 젖으면 발이 부풀어 올라 물집이 생기고 터지고 하여 상처뿐인데 오늘은 더 심하여 이중의 고통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 때문이다.
출발 직전 우리클럽의 훈련부장 김운호씨와 박태암씨가 우리부부의 동반주를 해 주시겠다하며 오셔서 마음과 몸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기회와 편안함을 느꼈다.
출발전부터 맞바람이 심하여 추위와 함께할 105리길의 험난한 여정이 거듭 걱정이었다.
출발전까지 점퍼를 입혀주며 옆에 같이 있어준 문효길씨께 감사한다.
마침내 내가 출발할 E조의 스타트가 시작 되었는데 나와 동반하기로 한 운호씨가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찾다가 찾지 못하고 할수 없이 혼자 마지막으로 출발을 하였다.
매서운 맞바람이 약한 비와 함께 나를 막아 세울듯한 기분이 드는가운데 무수한 달림이들이 나를 감싸고 박차고 나간다.
초반에는 짧은 보폭과 팔동작을 빨리하며 바람을 헤쳐 나가는 가운데 약 3km지점을 통과한후 운호씨가 내 대열에 와서 동반주를 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마지막 조에 있는줄 알고 맨뒤에 있다가 출발하여 계속오다 보니 이제 만난것이었다.이제는 운호씨가 이끌어 주는대로 펀런 하기로 하였다.
5km를 지나며 추위도 가시고 오히려 바람이 부는것이 땀을 많이 흘리는 나에게는 편한 레이스가 되어 주는것 같았다.
그러나 6km지점을 지나며 다시 비가 내리고 주로 곳곳이 빗물이 고여 신발이 침수되면서 양발이 축축함을 느끼고,안경속으로는 빗물이 맺혀 앞이 어른거리기도 하여 레이스의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몸이 풀려 오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속도가 조금 느껴지자 운호씨가 후반을 위해 속도를 줄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10km지점을 72분만에 통과한다, 나의 예상보다 2~3분정도 늦지만 나의 완주 목표인 5:00~5:10엔 가능하다는 운호씨의 말에 걱정않고 펀런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10.5km정도 이후 걱정하였던 일이 내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정상인과 달리 지면에 겨우 2~3cm만 닿는 나의 왼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는지 통증과 함께,발등과 발목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이중고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도 몇년 동안의 풀코스레이스와 훈련때문에 고통에 대한 신경계가 어느정도 이력이 난것인지는 모르나 참을수 있을것 같다. 오늘은 2차 목표로 발을 주무르거나 물집 때문에 서거나 걷는것이 없는 레이스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옆에서 뛰고 있는 운호씨께 부담을 주지않는 선으로 계속 가기를 바랬다.
고통을 잊으면서 달리기를 계속 15km를 지나자 조금은 괜찮은것 같았다.
15km를 지나고 조금 가다보니 키가 무척큰 (2m쯤 되보임)외국인이 뛰기도 힘든데 경보를 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특이한 분이라 생각 들었다.그때부터 그분과 나는 거의 똑같은 속도로 동반주가 되고 있었다.
나는 뛰는것도 힘든데 그분은 한발 한발 경보로 펼치는 레이스가 나보다 더 빠른것 같았다.
어느정도 가다 "파이팅"!을 하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니 그분도 아는체를 해주었다.
그분과 계속 같은 속도로만 가면 5시간대 완주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런을 계속했다.
그사이에 비는 오지 않고 펀런하기 좋은 날씨가 된것 같았다.
16.3km지점 쯤에서 2006년도 9회 서울 마라톤에 참가 했을때의 생각에 야릇한 미소를 지을수 밖에 없었다.
9회 대회참가때 16km를 막 지나자 화장실 용무가 급하게 되었고 주변 상황에 어두웠던 나는 주로를 벗어나 화장실을 찾으려다 왼쪽발이 조그마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입술과 손등,무릎,옷이 찢어지는 등 상처를 입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느 달림이께서 다가와 친히 일으켜 주며 완주를 기원해 주었다.
한참을 걸어서 가며 통증을 참고 완주한뒤의 나의 모습은 군데군데 피가 굳어 딱지가 되어 있었다.그곳이 바로 이지점이었다.그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오늘은 무사히 지나치고 있었다.
17km지점쯤에서 "최민호"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니 이미 반환점을 돌아 오던 아내와 형님이 "파이팅"을 한번 더 외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나도 힘을 내라는 손짖과 "파이팅"을 외치며 헤어지고 계속 뚜기 시작하던중 19km를 지나고 난뒤 우리 클럽의 정연석 고문님이 반환점을 돌아오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힘을 주고 가신다.
그때쯤 같이 뛰어가던 그 외국인은 조금더 빨라지며 금방 앞서가고 있었고 반환점을 돌며 시간을 보니 예상기록보다 8분정도가 늦어지고 있었다.
비록 발은 계속 아팠지만 시간은 조금 단축하려 했는데 (2:28:28)마음과 몸은 따로였나 보다.많은 런너들이 나를 질러가고 있었다.
20km급수대에서 나는 잠깐 스트레칭하고 동시에 김밥 한개와 물 한모금을 먹고 출발하려고 운호씨를 찾으니 운호씨는 배가 고프다며 조금 많은양의 음식을 섭취하고 있었다 할수없이 나는 너무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더 통증이 오는것 같아 먼저 출발을 했다.
그러나 500m 도 가지 않아 소변이 마려워 실례를 하고 주로에 돌아오니 아까 그외국인이 바로 앞에 뛰고 있었다.또다시 만남에 나는 기뻐하며 "독일분"이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신다.
24km 지점을 앞두고 앞서가시던 정연석 형님을 다시 만났다.
형님은 몸이 좋지 않은지 한쪽 허리를 잡으며 걷고 계셨다.
형님 곁으로 다가가며 "괜찮으시냐"고 물으니 "몸이 좋지 않아 다음을 기약해야겠다"는 말씀이 계신다. 할수없이 나는"뒤에 천천히 오세요"하며 인사후 헤어지고 5분쯤 달리다 보니 운호씨가 그때 쌕쌕거리며 뒤에서 달려오면서 "형님이 천천히 가는것이 보이는데도 따라잡기힘들었다"며 옆으로 와 동반주를 계속해 주었다.
26km지점을 지나며 운호씨가 이제부터는 '정신력'으로 뛰어야 된다고 '정신력'을 강조해 준다 마음속으로 '정신력'이란 단어만 생각하며 뛰기로 작정해 본다
28km지점을 지나면서 2006년 10월에 출전한 춘천마라톤 대회때 발에 물집이 터지고 발목이부어,멈추고 신발을 벗어보니 피가 흥건히 고여 물집 제거후 팔에 붙였던 테이핑을 떼어내 발을 칭칭감고 완주한것이 생각났다.
그나마 오늘은 아직 견딜만 한것이 다행이다.32km를 지나면서 나의 왼쪽 다리가 발목 뼈와 물집 잡힌곳이 통증이 조금더 오는것이었다. 참기가 좀 힘들었지만 운호씨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조금 힘든 모습을 보이자 외국분도 알아 차린것 같았다.
34km쯤에서는 그 외국분께서 나의 어깨를 두세번 툭툭처 주시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말은 통하진 않으나 정말 무엇보다도 큰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고 정신력 하나로 끝까지 갈것을 다짐하고 그분 또한 즐거운 런과 함께 하길 빌어 드렸다.
35km를 지나면서 조금더 힘들어지자 스트레칭을 하고 가는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것같아 스트레칭을 운호씨와 같이 하였다.또한 발아픔이 완하되는것을 느꼈다.
그사이 그분은 벌써 우리들의 시야를 벗어나고 있었고 이제는 거의 같이 골인하기는 힘들것같아 좋은 성적으로 들어가길 한번더 빌어드리고 나의 레이스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이후부터는 계속 운호씨가 "정신력!정신력!정신력!" 을 외치며 동반주를 해 주기 시작 하였고 나를 기다리는 동료와도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정신력 단어하나에 정신을 쏟으며 200여일동안에 일주일에 4~5일정도 아침에 10km씩 뛰고 또한 오후에는 1시간 30분~2시간 정도씩 조깅외 보강운동으로 다져진 다리힘이 완주때까지 힘을 내주기를 바랐다.
38km를 지나며 앞으로 63빌딩이 보이자 운호씨가 마지막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더욱더 큰소리로 “정신력"을 외쳐준다.
마지막 2km정도를 남기고 다시 가랑비가 오기 시작 나의 마지막레이스를 아쉬워 하는것 같았다.
골인지점앞 500여 미터쯤에서 먼저 도착후 마중나온 아내와 손을 잡고 마침내 골인 오늘의 풀코스 도전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 순간 마라톤을 사랑한 이후 꿈꾸던 "부부참가완주"의 제1의 소망을 이루는 기쁨과 환희를 맛보았다.
시계를 보니 제2의 목표인 5시간대의 기록은 달성하지 못한것에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5시간 17분대였다.
그러나 제9회 서울마라톤대회때 보다 9분정도 단축 한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칩을 반납하고 나니 조금더 굵은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오는 가운데 "부부완주패"를 받고난뒤 "부부완주기념사진"을 촬영하며 부부가 함께하는 마라톤의 깊은맛을 만끽할수 있었다.
계속된 빗방울과 바람속에서도 마지막으로 들어온 나를 기다려주신 클럽분들과 함께 완주와 기록 단축등의 서로간의 축하와 격려가 나의 하루의 고통과 인내를 잊게 해 주었다.
오늘 같이 동반주를 해준 운호씨께 또한 개인적으로 아침저녁 훈련에 도움을 주신 문효길 감독및,김승규씨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이번 10회 서울 마라톤은 년중 350여개의 전국마라톤대회가 있으나 바람직 하지 못한 경쟁을 하고,런너는 대회에서 운동보다는 기념품에 치중한다는 설도 있으나 급수및 자봉등의 대회운영관리가 철저한 준비가 되어있는 마스트스를 위한 대회라 하겠다. 너도나도 만든 각종대회의 준비되지 않은 엉망인 대회를 치르는것이 낭비고 손실인 것이다.
내가 살아온 50여년의 생에 있어 그동안 나의 외모와 장애로 인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내몸을 아끼려 하는 노력이란 없었다.
그러나 마라톤을 접하고 난뒤 몇년 사이에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나 자신을 먼저 사랑할줄 알아야 나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찾게 되고 모든 일에도 자신감도 함께 하며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줄수 있다고
또한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또한 다른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계속된 마라톤의 여정을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이며 나와 같은 장애우들이 비장애우들과의 훌륭한 파트너가 될수있는 한자루의 촛불이 되어 어둠속에서 그분을 밝혀 줄수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그분들의 일관된 희망이 우리 모두의 정신을 새롭게 하기를 빌어본다.
마지막으로 2004년도 춘천마라톤 에 출전하고 참가기를 올린적 있는데 나의 글을 읽고 2006년 춘천마라톤에 참여하게된 대전에 계신 "나의 30대 마지막 가을을 춘천에서"라는 참가기 주인공 '유정숙'씨께 2006년 춘천마라톤대회 참가기를 통해 알게됨을 이자리를 빌어 감사와 고마움을 보낸다.
**작성자 : 최민호 (안산시마라톤클럽)010-2378-8001
"저 아저씨 이렇게 하고 뛰는데...."
거리를 혹은 운동장에서 뛰다보면 나의 모습을 보고 이상한 듯,흉내를 내는등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나의 마음과 머릿속은 복잡함을 버리지 못한다.
나 자신이 정상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뛰다보면 한번더 관심을 보이는 시선들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무엇인지도 모르는것에 내 자신이 열심히 빠져드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
어릴적에 뇌성마비로 왼쪽 수족의 마비로 오른쪽보다 모든것이 짧고 굳어 있는 뼈로 인해 뛰는순간 바로 심한 통증을 느껴 어떤 경우에는 마음 속으로 울면서 뛰고 있는 장애 3급인이다.
어느누가 나같은 장애인이 105리를 달린다고 믿겠는가>
일반 장애우들은 활동장애는 있을지 모르나 나처럼 통증을 동반한 가운데 마라톤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줄 안다.
5년전 내가 근무하고 있는곳에 인천마라톤 클럽 소속 이홍근(57세)씨의 권유로 5km를 뛰고 난뒤 (아내는 10km)알수 없는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 안산마라톤 클럽에 가입, 회원들의 적극적인 도움하에 나름대로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그후 춘천마라톤을 비롯한 5번의 풀코스도 완주하고 하프대회는 수없이 참가하며 나름대로 펀런의 보람을 맛보기도 하였다.
특히,올해의 첫 풀도전인 제 10회 서울 마라톤 대회는 마라톤의 매력에 빠진후 가장 먼저하고 싶어하는 꿈이 이루어지는 대회이기에 나에게는 무한한 자유로움과 희망,사랑을 느끼는 대회가 되었다.
다른 마스터스 선수처럼 서브-3달성, 대회 입상, 최고의 기록 경신등의 꿈이 아니라 소박한 하나의 소원이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부부가 같이 풀코스를 도전하여 완주후 "부부완주기념사진"한장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번 풀코스를 완주하였지만 부부완주 기념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
각자 서로 다른 풀코스(아내-동아,나-서울등)의 참가로 어려웠다.
올해는 특별히 아내도 같이 동아마라톤을 포기하고 서울 마라톤에 참가하여 특별한 꿈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제60회 춘천마라톤을 같이 완주한후 올해 처음 도전하는 서울마라톤대회의 105리길을 무사히 완주하고 펀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여러번 도전의 기회를 넘긴것인데도 긴장이 되었는지 새벽 2시 40분경에 눈이 떠져 잠 못이루고 는 5시기상 우리부부와 같이 갈 클럽 회원들을 만나 7:00경에 대회장 도착후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30여분의 조깅으로 몸을 풀고 대회준비 마무리를 하였다.
어제의 일기예보상으로 오늘 비가 많이오고 강한 바람이 불것이라하여 걱정이 앞섰다.
안그래도 한쪽발로 뛰고 있는 나는 땀이나 물에 젖으면 발이 부풀어 올라 물집이 생기고 터지고 하여 상처뿐인데 오늘은 더 심하여 이중의 고통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 때문이다.
출발 직전 우리클럽의 훈련부장 김운호씨와 박태암씨가 우리부부의 동반주를 해 주시겠다하며 오셔서 마음과 몸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기회와 편안함을 느꼈다.
출발전부터 맞바람이 심하여 추위와 함께할 105리길의 험난한 여정이 거듭 걱정이었다.
출발전까지 점퍼를 입혀주며 옆에 같이 있어준 문효길씨께 감사한다.
마침내 내가 출발할 E조의 스타트가 시작 되었는데 나와 동반하기로 한 운호씨가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찾다가 찾지 못하고 할수 없이 혼자 마지막으로 출발을 하였다.
매서운 맞바람이 약한 비와 함께 나를 막아 세울듯한 기분이 드는가운데 무수한 달림이들이 나를 감싸고 박차고 나간다.
초반에는 짧은 보폭과 팔동작을 빨리하며 바람을 헤쳐 나가는 가운데 약 3km지점을 통과한후 운호씨가 내 대열에 와서 동반주를 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마지막 조에 있는줄 알고 맨뒤에 있다가 출발하여 계속오다 보니 이제 만난것이었다.이제는 운호씨가 이끌어 주는대로 펀런 하기로 하였다.
5km를 지나며 추위도 가시고 오히려 바람이 부는것이 땀을 많이 흘리는 나에게는 편한 레이스가 되어 주는것 같았다.
그러나 6km지점을 지나며 다시 비가 내리고 주로 곳곳이 빗물이 고여 신발이 침수되면서 양발이 축축함을 느끼고,안경속으로는 빗물이 맺혀 앞이 어른거리기도 하여 레이스의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몸이 풀려 오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속도가 조금 느껴지자 운호씨가 후반을 위해 속도를 줄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10km지점을 72분만에 통과한다, 나의 예상보다 2~3분정도 늦지만 나의 완주 목표인 5:00~5:10엔 가능하다는 운호씨의 말에 걱정않고 펀런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10.5km정도 이후 걱정하였던 일이 내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정상인과 달리 지면에 겨우 2~3cm만 닿는 나의 왼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는지 통증과 함께,발등과 발목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이중고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도 몇년 동안의 풀코스레이스와 훈련때문에 고통에 대한 신경계가 어느정도 이력이 난것인지는 모르나 참을수 있을것 같다. 오늘은 2차 목표로 발을 주무르거나 물집 때문에 서거나 걷는것이 없는 레이스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옆에서 뛰고 있는 운호씨께 부담을 주지않는 선으로 계속 가기를 바랬다.
고통을 잊으면서 달리기를 계속 15km를 지나자 조금은 괜찮은것 같았다.
15km를 지나고 조금 가다보니 키가 무척큰 (2m쯤 되보임)외국인이 뛰기도 힘든데 경보를 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특이한 분이라 생각 들었다.그때부터 그분과 나는 거의 똑같은 속도로 동반주가 되고 있었다.
나는 뛰는것도 힘든데 그분은 한발 한발 경보로 펼치는 레이스가 나보다 더 빠른것 같았다.
어느정도 가다 "파이팅"!을 하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니 그분도 아는체를 해주었다.
그분과 계속 같은 속도로만 가면 5시간대 완주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런을 계속했다.
그사이에 비는 오지 않고 펀런하기 좋은 날씨가 된것 같았다.
16.3km지점 쯤에서 2006년도 9회 서울 마라톤에 참가 했을때의 생각에 야릇한 미소를 지을수 밖에 없었다.
9회 대회참가때 16km를 막 지나자 화장실 용무가 급하게 되었고 주변 상황에 어두웠던 나는 주로를 벗어나 화장실을 찾으려다 왼쪽발이 조그마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입술과 손등,무릎,옷이 찢어지는 등 상처를 입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느 달림이께서 다가와 친히 일으켜 주며 완주를 기원해 주었다.
한참을 걸어서 가며 통증을 참고 완주한뒤의 나의 모습은 군데군데 피가 굳어 딱지가 되어 있었다.그곳이 바로 이지점이었다.그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오늘은 무사히 지나치고 있었다.
17km지점쯤에서 "최민호"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니 이미 반환점을 돌아 오던 아내와 형님이 "파이팅"을 한번 더 외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나도 힘을 내라는 손짖과 "파이팅"을 외치며 헤어지고 계속 뚜기 시작하던중 19km를 지나고 난뒤 우리 클럽의 정연석 고문님이 반환점을 돌아오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힘을 주고 가신다.
그때쯤 같이 뛰어가던 그 외국인은 조금더 빨라지며 금방 앞서가고 있었고 반환점을 돌며 시간을 보니 예상기록보다 8분정도가 늦어지고 있었다.
비록 발은 계속 아팠지만 시간은 조금 단축하려 했는데 (2:28:28)마음과 몸은 따로였나 보다.많은 런너들이 나를 질러가고 있었다.
20km급수대에서 나는 잠깐 스트레칭하고 동시에 김밥 한개와 물 한모금을 먹고 출발하려고 운호씨를 찾으니 운호씨는 배가 고프다며 조금 많은양의 음식을 섭취하고 있었다 할수없이 나는 너무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더 통증이 오는것 같아 먼저 출발을 했다.
그러나 500m 도 가지 않아 소변이 마려워 실례를 하고 주로에 돌아오니 아까 그외국인이 바로 앞에 뛰고 있었다.또다시 만남에 나는 기뻐하며 "독일분"이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신다.
24km 지점을 앞두고 앞서가시던 정연석 형님을 다시 만났다.
형님은 몸이 좋지 않은지 한쪽 허리를 잡으며 걷고 계셨다.
형님 곁으로 다가가며 "괜찮으시냐"고 물으니 "몸이 좋지 않아 다음을 기약해야겠다"는 말씀이 계신다. 할수없이 나는"뒤에 천천히 오세요"하며 인사후 헤어지고 5분쯤 달리다 보니 운호씨가 그때 쌕쌕거리며 뒤에서 달려오면서 "형님이 천천히 가는것이 보이는데도 따라잡기힘들었다"며 옆으로 와 동반주를 계속해 주었다.
26km지점을 지나며 운호씨가 이제부터는 '정신력'으로 뛰어야 된다고 '정신력'을 강조해 준다 마음속으로 '정신력'이란 단어만 생각하며 뛰기로 작정해 본다
28km지점을 지나면서 2006년 10월에 출전한 춘천마라톤 대회때 발에 물집이 터지고 발목이부어,멈추고 신발을 벗어보니 피가 흥건히 고여 물집 제거후 팔에 붙였던 테이핑을 떼어내 발을 칭칭감고 완주한것이 생각났다.
그나마 오늘은 아직 견딜만 한것이 다행이다.32km를 지나면서 나의 왼쪽 다리가 발목 뼈와 물집 잡힌곳이 통증이 조금더 오는것이었다. 참기가 좀 힘들었지만 운호씨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조금 힘든 모습을 보이자 외국분도 알아 차린것 같았다.
34km쯤에서는 그 외국분께서 나의 어깨를 두세번 툭툭처 주시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말은 통하진 않으나 정말 무엇보다도 큰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고 정신력 하나로 끝까지 갈것을 다짐하고 그분 또한 즐거운 런과 함께 하길 빌어 드렸다.
35km를 지나면서 조금더 힘들어지자 스트레칭을 하고 가는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것같아 스트레칭을 운호씨와 같이 하였다.또한 발아픔이 완하되는것을 느꼈다.
그사이 그분은 벌써 우리들의 시야를 벗어나고 있었고 이제는 거의 같이 골인하기는 힘들것같아 좋은 성적으로 들어가길 한번더 빌어드리고 나의 레이스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이후부터는 계속 운호씨가 "정신력!정신력!정신력!" 을 외치며 동반주를 해 주기 시작 하였고 나를 기다리는 동료와도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정신력 단어하나에 정신을 쏟으며 200여일동안에 일주일에 4~5일정도 아침에 10km씩 뛰고 또한 오후에는 1시간 30분~2시간 정도씩 조깅외 보강운동으로 다져진 다리힘이 완주때까지 힘을 내주기를 바랐다.
38km를 지나며 앞으로 63빌딩이 보이자 운호씨가 마지막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더욱더 큰소리로 “정신력"을 외쳐준다.
마지막 2km정도를 남기고 다시 가랑비가 오기 시작 나의 마지막레이스를 아쉬워 하는것 같았다.
골인지점앞 500여 미터쯤에서 먼저 도착후 마중나온 아내와 손을 잡고 마침내 골인 오늘의 풀코스 도전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 순간 마라톤을 사랑한 이후 꿈꾸던 "부부참가완주"의 제1의 소망을 이루는 기쁨과 환희를 맛보았다.
시계를 보니 제2의 목표인 5시간대의 기록은 달성하지 못한것에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5시간 17분대였다.
그러나 제9회 서울마라톤대회때 보다 9분정도 단축 한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칩을 반납하고 나니 조금더 굵은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오는 가운데 "부부완주패"를 받고난뒤 "부부완주기념사진"을 촬영하며 부부가 함께하는 마라톤의 깊은맛을 만끽할수 있었다.
계속된 빗방울과 바람속에서도 마지막으로 들어온 나를 기다려주신 클럽분들과 함께 완주와 기록 단축등의 서로간의 축하와 격려가 나의 하루의 고통과 인내를 잊게 해 주었다.
오늘 같이 동반주를 해준 운호씨께 또한 개인적으로 아침저녁 훈련에 도움을 주신 문효길 감독및,김승규씨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이번 10회 서울 마라톤은 년중 350여개의 전국마라톤대회가 있으나 바람직 하지 못한 경쟁을 하고,런너는 대회에서 운동보다는 기념품에 치중한다는 설도 있으나 급수및 자봉등의 대회운영관리가 철저한 준비가 되어있는 마스트스를 위한 대회라 하겠다. 너도나도 만든 각종대회의 준비되지 않은 엉망인 대회를 치르는것이 낭비고 손실인 것이다.
내가 살아온 50여년의 생에 있어 그동안 나의 외모와 장애로 인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내몸을 아끼려 하는 노력이란 없었다.
그러나 마라톤을 접하고 난뒤 몇년 사이에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나 자신을 먼저 사랑할줄 알아야 나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찾게 되고 모든 일에도 자신감도 함께 하며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줄수 있다고
또한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또한 다른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계속된 마라톤의 여정을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이며 나와 같은 장애우들이 비장애우들과의 훌륭한 파트너가 될수있는 한자루의 촛불이 되어 어둠속에서 그분을 밝혀 줄수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그분들의 일관된 희망이 우리 모두의 정신을 새롭게 하기를 빌어본다.
마지막으로 2004년도 춘천마라톤 에 출전하고 참가기를 올린적 있는데 나의 글을 읽고 2006년 춘천마라톤에 참여하게된 대전에 계신 "나의 30대 마지막 가을을 춘천에서"라는 참가기 주인공 '유정숙'씨께 2006년 춘천마라톤대회 참가기를 통해 알게됨을 이자리를 빌어 감사와 고마움을 보낸다.
**작성자 : 최민호 (안산시마라톤클럽)010-2378-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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