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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단독횡단(3) 혼자이어도 결코 외롭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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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식 작성일00-10-09 11:30 조회1,1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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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1(일) 00:00 김포공항-8KM

옆으로 아파트촌과 함께 서서히 김포 중심지역을 관통하고 있었다. 23분이 되자 왼쪽으로 가면 김포시청이라는 표시가 나왔다. 시가지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굽은 긴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왼편으로 서울방향의 곧은 길이 나왔다. 44분에 고촌면 마을표시판을 보이기 시작하자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전방 시야를 가렸다. 무섭게 질주해오는 트럭들을 피하기 위하여 몇번인가 풀섶으로 몸을 피했다. 김포공항-8KM표시판과 멀리서 승용차 한 대가 멈추어 선 것을 본 것이 50분이 될 때였다. 윤장웅님, 정해성님, 채흔호님이었다. 뜨거운 만남의 악수를 나누었다. 윤장웅님이 반딧불(야간표시등)을 건네주셨다. 채흔호님은 언제 준비했는지 꿀물을 주셨다. 마침 목마른 상태라 한통을 다 비웠다. 정해성님은 무언가 준비해온 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면서 무사완주의 따뜻한 마음을 안겨 주셨다. 이들 세 분의 격려로 그동안의 피로가 안개와 더불어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01:00 개화산삼거리

따뜻한 정을 덤뿍 안고 달리니 발걸음도 경쾌했다. 24분에 서울외곽순환도로밑을 통과하고 44분에 서울로 진입하는 김포입구에 도착했다. 여기부터는 서울이다는 생각이 더욱더 분발하게 만들었다. 개화산삼거리 근처에서 처음으로 소염진통로션을 하체 구석구석 골고루 발랐다.

02:00 개화육갑문+1KM

로션의 자극적인 냄새에 취해 머리를 흔들거리면서 달리다가 윤장웅님이 앞에서 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행이 청솔아파트에 있는데 내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감시(?)하고 싶어서 와봤다고 했다. 같이 약 500M정도 달려서 30분에 청솔아파트의 옥외주차장으로 가니 정해성님과 채흔호님이 계셨다. 채흔호님이 능숙한 솜씨로 배 하나를 벗겨 주셨다. 배고픔과 갈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과일이 배인 것같다. 정해성님이 지금 페이스로만 유지된다면 60시간대에 도착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직까지는 부상 재발이 조짐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보다도 더 줄여볼 것이라고 객기를 부려보았다. 어쨌던 야밤에 나를 위하여 여기까지 찾아준 이들 세분의 따뜻한 마음으로 다시한번 세상은 결코 외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되었으니 귀가하여 주시는 것이 오히려 저를 돕는 것이라고 애써 매정하게 헤어졌다. 47분이 되어 개화육갑문을 통과하였다. 비포장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니 뒤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서 내옆을 지나면서 흙먼지를 일으켰다. 먼지를 툴툴 털면서 조금 달려가니 그 오토바이가 길옆에 누워 있었다. 나이어린 청년이 야밤에 여기까지 왔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호소했다. 오토바이가 무거우니 일으키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죄는 밉지만 인간은 미워할 수는 없다. 함께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길을 재촉했다. 조금 있으니 그녀석의 오토바이가 다시 먼지를 일으키고 내옆을 감사하다는 말대신에 휙 지나쳐갔다. 어쩔 수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03:00 성산대교

3분이 지나자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후예들이 드문드문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물론 길가에서 낚시와는 무관하게 술판의 끝에 꿈자리에 든 사이비 강태공도 있었지만. 비록 길은 다르지만 그들과는 동류라는 것을 느꼈다. 시간에 구애받지않고 무언가 한가지에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는 것이. 36분이 지나자 한강 맞은 편에 난지도매립장 중간지점의 철탑이 흉물스럽게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50분이 되어 안양천 입구의 다리를 건넜다. 곧 성산대교가 나왔다.

04:00 여의도 야외음악당

5분을 달리니 양화선착장이 나왔다. 야밤에도 불구하고 매점은 불야성을 이루고 많은 아베크족 남녀들이 간이테이블에서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26분이 되어 양화대교, 30분에 당산철교, 46분에 서강대교, 55분에 마포대교밑을 지나갔다. 이제 가까이 야외음악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배고프고 갈증도 생겨 버스모양의 간이음식점에 들어가 우동을 하나 말아 먹었다.

05:00 한강대교부근 88도로밑 터널길

물을 보충하고 길을 다시 나서니 20분이었다. 40분에 한강철교, 50분에 한강대교밑을 지나갔다. 88대로밑으로 길게 뻗은 터널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을 즈음 오경택님의 격려전화가 왔었다. 이렇게 일찍? 일전에 청주갈 기회가 있어서 처음으로 뵈었는데 마라톤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시는 분으로 언제나 진지함이 넘쳐흐르고 계셨다. 그날 술자리에서 청주마라톤회의 갑작스런 환영식에 부끄러워 혼났지만 그때를 회상하면 그분들이 그립기만 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만이 있는 청마회의 장미빛 미래를 기원했다.

06:00 동호대교

터널을 나와서 12분에 동작대교에 도착했다. 30분에 반포대교, 37분에 철탑을 돌았다. 48분 한남대교를 지나니 서서히 여명이 비추기 시작했다. 갑자기 밤샘의 여파가 몰려왔다. 꾸역꾸역 동호대교로 갔다.

07:00 청담대교

비몽사몽간에 어질어질하면서 나아갔다. 햇빛이 세어질수록 나의 기운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50대 조깅하시는 분이 지나치면서 내가 안쓰러웠는지 힘내라고 하셨다. 머리가 어지러워 도저히 전진할 수가 없었다. 길옆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떨어지는 기분에 깜짝 놀라 깼다. 잠시 졸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정신이 매우 맑아졌다. 약 1~2분 졸았을 뿐이었는데....50분이 되어 영동대교를 지나고, 곧 청담대교가 바로 앞에 보일 때 박문승님의 전화가 왔었다. 지금 미사리인데 아침을 같이 먹자고 하셨다. 아직 그까지 가려면 2~3시간을 더 가야될텐데....아침 일찍 나를 위하여 멀리 의정부에서 차를 몰고 오신 정성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또한 채흔호님과 정해성님의 안부전화도 있었다.

08:00 천호대교

5분을 달리니 서경석님의 전화가 왔었다. 금수산 산악 마라톤 참가를 위해 이귀자님 등 몇분과 함께 제천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셨다. 서로가 건주하기를 기원했다. 29분 잠실대교, 31분 잠실철교, 40분 올림픽대교, 그리고 천호대교를 지나쳤다. 박문승님의 위치재확인 전화가 있었다.

09:00 경인IC-500M

공사중인 광진교를 지나고, 21분 광나루유원지, 38분에 드디어 한강자전도로끝에 도착했다. 박문승님이 기다리실 것같아 제방둑을 쉴 틈없이 기어 올라갔다. 88대로로 접어들었다. 몰아쳐오는 햇살과 차량으로 흠칫흠칫 놀랄 때도 있었다. 갓길의 폭이 30CM도 되지않은데 어떤 차는 고의로 갓길선을 밟고 들어오기도 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는 차량의 운전자 얼굴을 노려보면서 가는 것이다. 살의(?)가 있는지는 대체로 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전진해나갔다. 58분에 박민규님의 전화가 왔었다. 지난 6월 25일 그의 첫 풀코스도전을 함께 한 기억이 났다. '늦는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포기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그에게 들려주었는데 이제는 나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 되었다. 가까이 경인IC 고가도로가 보였다.

10:00 하남시 입구

오는 차량을 노려보면서 마치 미식축구처럼 일정 구간별로 전진해나갔다. 차가 오면 멈쳤고 안오면 달렸다. 20분이 되어 박문승님과 조우하여 식당으로 갔다. 힘내라고 하시면서 맛있는 것을 사주신다길래 염치불구하고 꼬리곰탕을 주문했다. 울트라마라톤은 기본적으로 체력전이다. 마라톤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채식위주로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울트라마라톤의 경우는 오히려 육식위주의 파워가 더욱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끊임없이 잘먹고 소화시켜야 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박문승님은 지난번 한반도횡단시 무서운 괴력을 보여주셨다. 대부분 주자들은 산오르막에서 걸어올랐지만, 박문승님은 뛰어서 그것도 아주 힘차고 오르시는 것을 보고 감탄했을 정도였다. 박문승님의 완주당부를 가슴에 안고 아쉽게 헤어졌다. 떠나는 나에게 포도 한송이도 주셨다.

11:00 미사리까페촌

식사후였고 태양이 이글거려 졸음이 밀려왔다. 주로의 상황은 최악이라 순간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머리를 뒤흔들고 갔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약 20분간 구석진 곳에서 앉아 구부린채 잤다. 58분에 윤장웅님과 채흔호님의 격려전화가 있었다.

12:00 팔당교

다시 힘내어 나아갔다. 팔당대교를 눈앞에 두고 아까 박문승님이 주신 포도 한송이를 다 먹어 치웠다. 40분에 팔당대교를 건넜다. 그런데 양평행 차량이 밀물처럼 밀려와 도저히 차량진행반대방향으로 건너갈 수가 없었다.

13:00 양평-20KM

결국 팔당 제1터널 앞에까지 왔어야 겨우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갈 수가 있었다. 22분에 제1터널을 통과하기 시작하면서 제2터널, 제3터널, 제4터널, 그리고 봉안터널을 51분에 통과했다. 터널 통과시 차량소음으로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참다가 가장 긴 봉안터널에서는 휴지를 찟어 귀에 쑤셔 넣었다. 휠씬 편안했다. 이제 조안을 지나 양평에 이르는 무척 지루한 고가다리를 끊임없이 가야했다.

14:00 용담대교끝

9분에 양수대교를 타고, 40분에 용담대교를 타면서 기나긴 단조로운 길을 폭염을 뚫고 전진해나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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