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유단(走道有段)(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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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선 작성일01-02-17 13:47 조회7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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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조 지훈 선생은 주도유단(酒道有段) 이란 수필을 통 하여 그 사람의 주정(酒酊) 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 (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고 설파 하신 바 있습니다. 즉 술을 마시는 것도 일 종의 도(道)인 만큼 그 깊이와 높이에 따라 주도(酒 道)에도 엄연히 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술 을 마신 연륜과 같이 술을 마신 친구, 술을 마신 기회와 동기, 술 버릇 등을 종합해 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모두 18 단계로 그 경지를 나눈바 있습니다.
술 (酒)과 달리기(走), 언뜻 보면 이 둘 사이에는 발음이 같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날 수 없다는 중독성과 빠져나올 때 겪게 되는 고통스런 금단현상을 들 수 있겠지요.
올 겨울 눈이 많이 와서 제대로 달리기를 하지 못하자 달릴 장소를 찾는 의견들이 우리클럽 ‘만남의 광장’에도 몇 편인가 올라 온 적이 있습니다. 풍귀터널, 을지로 지하보도, 하다못해 간선도로의 인도까지 얼지 않은 주로(走路)로 추천된 적인 있었지요.
또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며칠 술을 마시지 못하면 안절부절 하듯이 달리기에 중독된 사람들도 한 일주일 달리지 못하면 공연히 불안해지는 증상을 보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게다가 달리기를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엄청난 주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거리 완주 후 들이키는 한 잔의 시원한 맥주가 주는 청량감은 그것이 체력회복에는 좋지 않은 것을 잘 알지만 쉽게 뿌리치기가 어려운 유혹입니다. 어쨌든 술(酒)과 달리기(走)는 몇 가지 공통점과 예사롭지 않은 관계가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조 지훈 선생 이 주장하신대로 주도 (酒道)에 단이 있다면 주도(走道)에도 단이 있다할 수 있겠지요. 달리기를 한 연륜, 그 동기 , 주법(走法), 달리기를 할 때의 버릇 등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주력(走歷)과 함께 주력(走力)을 알 수 있지 않을 까요. 마라톤보급이 날로 확산되어 명실공히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작 금의 상황에 접하여 아직 초보자 주제에 외람되지만 대 시인의 주장을 감히 차용(借用 )하여 아직은 일천한 달리기 생활을 통해 겪은 소회(所懷)의 일단을 피력하니 이름 하여 주도유단 (走道有段 )이라해 봅니다.
(1)불주(不酒 ;不走)는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다. 마찬가지로 달리기를 아주 모르진 않으나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주 초보자여서 달리기(마라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레 겁을 먹거나 잘못 된 달리기로 부상등과 같은 쓰라린 경험을 한 뒤 다시는 달리기를 하지 않겠다고 철석 같은 맹세를 한 사람들이 이 단계에 속합니다.
(2) 외주(畏酒; 畏走)는 술을 마시긴 하나 술을 겁내는 사람으로 달리기에서는 달리기(마라톤)에 대한 막 연한 공포심(대부분이 거리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어 가볍게 걷는 다거나 조깅수준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단계입니다. 조금 단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가끔 ‘새가슴’이라는 비아냥거 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3)민주(憫酒 ;憫走)는 술을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을 이르는 단계입니다. 달리기를 한 경험도 있고 겁내지도 않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런닝팬츠(겨울철에는 ‘통아저씨’를 방불케하는 타이즈차림)바람으로 뜀박질을 하는 것이 특히 골프나 테니스와 같은 다른 운동에 비해 어딘가 점잖치 못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입니다.
(4)은주( 隱酒 ;隱走)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 않고 취 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달리기는 어차피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은밀히 달리기를 하는 사람. 주위 사람이 알까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므로 결코 동호인 모임등에 가입하는 법이 없습니다.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잘 모르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5)상주 (商酒;商走) 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 달리기를 잘 알고 좋아하면서도 크게는 각종대회의 상금이나 기록, 작게는 기념품, 메달 등에 집착하여 달리기생활을 하는 사람.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기는 법이 없고 대회에만(그것도 큰 공식대회)참석하려는 사람들입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접대골프와 같이 접대달리기같은 것이 나올 날도 있지 않을까 쓸 데 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란히 한강변을 달리면서 상담도 하고 계약을 한다면 그야말로 상주(商走)가 되겠지요.
(6)색주 (色酒;色走) 는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달리기가 성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선주성 님이 쓴 ‘런맨의 헬스리포트: 달리기를 하면 밤이 기다려진다’ 조선일보 이 메일클럽 2001년 2월 1일자 참조).유산소운동인 달리기는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신체적인 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성생활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달리기생활을 통해 얻어진 자신감이 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섹스 그 자체만을 위해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겠지요.
(7)수주(睡酒 ;睡走)는 잠이 안 와서 마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달리기를 한 후 거의 죽음과 같은 깊은 잠을 이룬 경험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지요.
(8)반주(飯酒 飯走)는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달리기를 한 후 솟구치는 식욕은 우리가 매번 경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10월 서울마라톤 클럽에 가입하고 처음 반달모임에 나가서 엉겹결에 고수들을 따라 하프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하게 되었습니다.(기록은 비밀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제가 골인할 때까지 상당시간을 기다렸다는 사실만 밝혀드립니다.) 당시 반환점에서 박 영석 회장님께서 건네주신 생수 한 잔과 사탕 맛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는 기억과 함께. 과천에 살고 있는 저는 매일 아침 과천대공원 호수 순환도로를 10Km달린 후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합니다. 달리기를 한 후 아침 밥맛은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지만 달리기를 하고 난 뒤에는 엄청난 양의 ‘든든한’ 아침식사를 하게 되어 체중이 오히려 늘어날까 봐 집사람의 눈살이 찌푸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II편으로 계속)
모닝스타 정 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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