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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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진 작성일02-01-16 11:25 조회6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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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달10 - 왜 달리나?
이제는 달리기의 본질이 무었인지 알고싶고 생각하고 듣고 싶습니다.
왜 미친듯이 달리는가?
불과 몇 년전에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뛰었다면 "저 X 어디가 잘못된거 아냐?"라는 비아냥을 듣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주한미군들이 열심히 거리를 뛰는 모습이 생경할 때였죠.
한마디로 양반이 상놈 내려다 보듯 했읍니다.
하지만 이제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읍니다.
왜 달라졌을까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려고?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50년만에 마라톤을 제패해서?
박철, 이영자가 달리기로 살을 뺐다고?
각설하옵고,
우리의 조상이 원숭이와 돌고래의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서 변화내지 진화하여,
나무위의 생활을 포기하고(?아마 다른 원숭이족과의 경쟁에서 밀려났거나, 천재지변으로 나무가 다죽고 너무 추웠거나, 한두번 맛본 고기에 맛들려 간이 부었거나 어쨌거나 절실한 동기가 있었을 것-목숨이 왔다갔다 하니까....)
좀 더 나은 삶(또는 먹이)을 위하여 땅을 디뎠을 즈음,
이미 땅위에는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았고, 새로운 먹이를 호시탐탐 노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은 나무에서 내려올 때, 빈손으로 내려오지는 않았읍니다.
그들의 손에는 창 비스무레한 꺽은 나무가지와 나무몽둥이가 들려있었읍니다. 앞발이 허전했던 게지요?
그리고 곧 그들은 방어전략(4-2-4-1보초 시스템과 1호땅굴과 나중에 불하나 추가요!)을 세웠고,
본능적으로 다른 동물들의 행동양식을 알아내고 효과적으로 대처했더랬읍니다.
그들은 절대 용감하지도 희생적이지도 자비롭지도 않았고 엄격한 규율과 복종으로 하루하루 종족을 보전해나갔으나, 그래도 자연법칙에따라 지고한 종족보존 본능은 사랑이라는 형태로 발전과 유행을 창조해나갔읍니다.
집단에서의 이탈은 곧 죽음이었고, 다른 종의 먹이로 찢겨져 사라지는 꼴이 되지않으려면,
즉 집단내에서 잘먹고 잘살려면,
첫번째 조건은 맹수로부터 잘 도망하고, 잽싼 다른 종을 추격할 수있는 빠른 다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즐겁게 달리기 1]에서 말씀드린대로 직립보행자세로는 달리기에 무척 불리합니다.(네발로 달릴 때보다 약2.5배의 공기저항)
지구상에는 몇몇 동물외에 모든 날짐승, 들짐승과 물짐승, 곤충 등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머리를 맨 앞에 두고 유선형 몸매로 공기나 물의 저항을 최소화합니다.
사실은 우리의 골격으로 보아 나무에서 생활하기 이전에는 육상 네발 동물이었고, 갓 태어난 아기가 자연스레 물호흡과 수영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더 이전에 돌고래와도 친구했을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처럼 더 맛있는 나무 과실을 노리고 나무로 올라 갔다가 신세 망친 것이죠.
즐달11 - 머때메 달리나?
쯧쯧-
조깅화 하나,
마라톤 팬티 한장 없이
나무에서 내려와
나뭇잎을 으뜸가리개 삼아
마라톤 동산을 떠나온 우리의 조상은
첫걸음부터 두려움에 쫓겨
발톱들은 피멍이 들고
발바닥은 찢기어 아프고
다리는 천근 만근........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큰 위기는 큰 기회이고,
큰 고난과 시험은 큰 성공과 성취를 어깨동무 합니다.
털가죽은 있는둥 마는둥하고 몸의 구조는 요상하고 뜀박질자세는 목도리도마뱀보다 더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네들에게는 다른 종족에게는 없는 고난과 불리함으로부터 획득한,
쓸데없이 크고 무거운 대뇌(신피질)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뇌는 원초적 공포와 고통을 마비시키고 오히려 쾌감으로 전환시켜주는 뇌내모르핀(엔돌핀)을 몸 구석구석까지 전달하여,
위험과 통증이 극에 달한 순간에도-정신일도 하사불성-초동물적인 혹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혹은 인내하도록 강제하였읍니다.
또한, 대뇌는 유례가 없는 정교한 시신경과 손구락 제어능력(한석봉과 어머니가 모자단체전 금메달감)을 부상(상처 또는 다친게 아님)으로 주었읍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가장 변화무쌍한 개체불균일을 가진 비틀리고 변형되고 불완전한 종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입니다.(게놈 프로젝트)
다른 종에 비하여 현저하게 뒤떨어지는 달리기능력은 필히 강화되어야할 1차 덕목이었기에,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뛰고 달리기를 스스로 훈련하고,
새끼들에게도 가르쳤더랬읍니다.
그후 3천여년전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에서도,
그 정신은 계승되어 남자들은 발가벗고(여자들은 참가 구경 접근 금지) 달리기를 했던 것입니다.
-계속
{위 썰은 일부 사실외에는 모두 가설 및 허구(뻥)임을 밝혀 둡니다.} -목마 김영진
즐달12 - 무담시로 달리나?
우리의 선조들은 석기시대를 지나 철기시대로 넘어가며 인류최고최대의 발명인 쟁기와 보습을 발명하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였읍니다.
그 전에는 돌도끼와 죽창을 들고 동물들과 먹느냐 먹히느냐의 게임에 열중했었죠.
수십 Km를 싸돌아 다녀야 겨우 먹고살던 자들이 이제 수백m 만 꼼지락거리면 잘 먹고 잘 살 수있는 시대가 도래했읍니다.
자! 인간의 시대는 왔던 것입니다.
인간은 이제 삶의 방어와 공격에서 최우위에 서게됐고 두려움의 대상은 맹수가 아니라 자연현상 또는 신에서 타인과 자기자신으로 변경되어 왔읍니다.
이제 달리기는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변경되고 선택과목은 하나의 신성한 행사의식으로 전락하였고, 대신 잘 뛰는 야생마를 동반자로 길들이면서 -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등 - 달리기는 존재조차 희미하게 잊혀져 갔읍니다.
하지만 필요성이 없다고해서 그리 쉽게 달리기가 사라질 수 있었을까요?
사실 수백만년 동안 쌓여온 달리기본능은 인간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 역사를 아로새기고 있었고 그 본능을 폭발시킬 날을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저는 그 본능의 본질은 고통과 쾌감의 두개의 축과 바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누가 마라톤을 자기자신과의 싸움, 자신의 한계의극복, 극한운동이라고 말하였던가요?
전 그렇게 피상적으로만 보고싶지 않습니다.
달리기의 본질은 인간의 본능과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개개인의 나약한 의지만으로는 해명할 수도 없고 설명되어지지않는 - 한 마디로 택도없는 능력의 발휘는 깊숙히, 저 원시시대로부터 쌓여온 피?의 요구(고통과 쾌감)라 할만 합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은 급격한 신체구조의 변모를 겪어왔고 현대와 와서는 식생활과 생활환경에 따라 개체마다 급속도로 큰차이를 보이며 변모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비만인데 인간뿐만아니라 그 애완동물까지도 비만으로 변모합니다.
특히, 편리한 생활, 과도한 영양식은 인간을 하체는 빈약하게 가죽과 근육은 지방질로 대치시켰읍니다. 한때 제2의 심장이라 불리웠던 다리는 조직학적인 면에서 부실공사내지 카산드로크로스가 되었읍니다. 그야말로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꼴입니다.
그래서 이제, 달리기는 새로운 위기로부터의 본능적인 탈출이기도 한것입니다.
즐달 13 - 달리기의 辯
본능의 폭발도 좋고, 살빼고 날씬하고 건강하고도 좋고, 피의 요구도 좋지만,
기냥 마냥 좋은 것은 달리기가 자유롭기 때문이겠지요?
일상의 따분함과 불안함과 스트레스와 우울과 외로움과 무지근함과 억울함과 무력함과 답답함과 무언가 찝찝함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짓누를 때, 달리기를 하면
땀과 중금속과 여타 노폐물과 함께 마음의 여러가지 금제는 풀어져 나가고 순수한 자유와 자연과 자신이 남는 것같습니다.
무한히 빛이 뻗어나가는 우주의 한 공간에서 터럭끝같은 움직임이겠지만 한발짝 한발짝 강하고 빠르고 똑바른, 나의 존재를 확실히 해주는 비트(Bits)같은 달리기는 과연 자유를 넘어 평화와 무상무념의 경지까지 도달케 해주는 강력한 행위예술인 것입니다.
또 달리기는 걍 단순한 뜀박질이 아니라 쿠라이막스에 이르기위하여 지휘자의 광란의 몸짓에 호응하는 웅대한 오케스트라관현악의 발작과도 같은 베에토벤의 교향곡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어쨋든-
과장이 심했나요?
-심한 달리기는 어린이와 초보자는 절대 따라하지 맙시다.- ^^ 과천 목마 김영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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