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가 보인다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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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2-01-18 00:45 조회66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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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국토종단 달리기 - 3
이제 국종달 대열은 깃발을 들고 선도에서 설치는 노총각 이명현님을 앞세우고
서대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홍은동 쪽으로 뻗어있는 이 길은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일부 구간이라 해서 "의주로"라 일컬으며
그 이후 길을 조국 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로"로 명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국종달 행사 코스가 이곳을 관통한다는 것은
냉전의 이데올기로 끊어진 한반도 허리를
하루 빨리 이어보자는 뜻깊은 열정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런 뜻을 마라톤을 통해 충분히 이행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이
내 옆에서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달리고 있었다.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 마라조선민국 대통령으로 제청 받은 알통가제 김승기님이었다.
국종달 행사가 출발 하기 전, 잠실운동장에서 뵐 때부터
언제쯤 대통령에 취임할 건지 물어 보았으나
특유의 넉넉한 미소만 내보일 뿐, 확실한 대답이 없었다.
물론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재미로 표현해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마라조선의 대통령으로 뽑혔다는 자체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재발 빨리 알통가제께서 마라톤 대통령에 취임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장관자리 하나 꿰차고,
요즘 세상에 난무하는 무슨 게이트 하나쯤은 일궈내, 한 몫 잡을 것 아닌가?
이제 혹서의 가뭄에도 절대 물줄기가 마르지 않아 우물에 물 꼬리가 있는 것 같다 하여
초리우물, 또는 미정이라 불렀던 미근동(渼芹洞)을 지나
서대문 교차로에 이르렀다.
서대문(西大門)은
처음에 성안의 4대문으로 돈의문(敦義門)이라 하여 사직동 고개에 세웠는데,
풍수지리(風水地理) 상으로
이 자리는 관광방(觀光坊) 동령(東嶺)에 있는 숙청문(肅淸門)과 함께
경복궁(景福宮)의 양팔과 같은 위치이니,
문(門)을 내어 지맥(地脈) 흐름에 손상을 주면 안 된다는 설이 제기 되었다.
그래서 태종 13년(1413)에 이것을 경희궁 서쪽으로 옮겨 서전문(西箭門)이라 하였으나
세종 때, 다시 지금의 서대문 마루턱에 새로 이건(移建)하여 돈의문으로 회복하였다.
그러나 1915년, 일제(日帝)의 도시계획에 따라 돈의문이 철거되었기에
지금은 서대문이란 지명 이름만 있을 뿐, 그 형태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서대문 교차로를 지나자
국종달 행렬은 갑자기 속도가 붙는 듯 했다.
누가 부추겨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쉬는 곳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빨리 도달해서 몸을 추스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달려온 거리가 약 18km 가량 되었기에, 어느 정도 지친 사람들도 보였다.
그래선 지, 제2 구간 휴식장소에서 어떤 분이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불평하면서,
초반에 국종달 대열을 리드했던 Muscle guy 이윤희님께
선도에 다시 서서 속도를 조절해달라고 했다.
국종달 행렬을 서둘러 다시 수습한 윤현수님은 연호와 함께 출발을 선언했다.
하지만 미처 화장실을 들르지 못했을 분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는 용무를 적당하게 볼 곳이 보이지 않았기에,
러너들이 여러 곳에서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종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라면
휴식 장소는 반드시 용무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정해야 할 것 같았다.
하늘을 이어놓은 것처럼 높이 가로지르는 고가차도를 지나자
조선말의 자주독립을 상징하기 위해 1898년에 세워진 독립문(獨立門)이
외세에 시달린 영은문(迎恩門)의 굴욕적인 사대외교를 씻어내고 있는 듯 했다.
또한 바로 옆,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조성된 독립공원은
일제(日帝)에 목숨을 걸고 항거했던 독립투사들의 원혼들과
독재정권의 불의에 저항했던 민주열사의 열정들이
국종달을 응원하는 함성으로 토해내어 조국통일을 선창하는 듯 했다.
이제 주로(走路)는 가파른 무악재 고개로 접어들었다.
서대문부터 다시 함께 나란히 달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포도청나리 최동선님이
오르막 길에 힘이 부치는 지 슬그머니 뒤쳐지며 먼저 가라고 했다.
그 외 몇몇 러너들이 오르막의 무악재를
발놀림보다 빠르게 가쁜 숨소리로 대신하는 것 같았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인왕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였기에
사람들 여럿이 모아져야 넘었다하여 "모아재"라 불렸다는 무악재는
효성 깊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효성이 지극한 한성판윤(漢城判尹)은 하루도 빠짐없이 선친 묘를 참배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밤, 좀 늦었지만, 참배를 거를 수 없어 무악재를 넘으려 하자,
갑자기 숲 속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앞을 가로막았다.
놀랍고 당황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행장을 가다듬고 목에 힘을 주며,
"나는 매일매일 선친 묘를 참배하러 다니는 한성판윤이다.
날 잡아먹겠다면 잡아먹어 보라"고 고함 치면서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호랑이는 뒷걸음을 치면서 그에게 등을 내보이는 시늉만 반복하고 있었다.
자신을 돕겠다는 뜻을 알아차린 한성판윤은 조심스럽게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금수(禽獸)라 할지라도 그 동안 그의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는
쏜살같이 밤길을 달려 한달음에 그를 선친 묘 앞에 이르게 했다.
참배를 마치자, 다시 올 때처럼 호랑이가 등을 내보이므로 올라타자
무악재에 그를 내려놓고 사라져 버렸다.
그 후, 한성판윤이 병들어 죽자, 뒷산에 안장하고, 훗날 가족들이 묘를 찾았는데,
그 옆에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가족들이 그가 살아 생전에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해왔기에,
그 묘지 옆에 그를 묻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대궐까지 알려지자 임금은 '출천지효(出天之孝)'라 하여
그 묘 앞에 효자문을 세우게 하고, 이곳을 "효자리"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무악재를 지나 홍은동 오르막길에 이르자
모자를 예쁘게 쓴 여성 러너가 아주 당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누구일까? 누구인데 이런 고갯길을 저렇게 거침없이 달릴 수 있을까?'
바로 그 때, 나와 나란히 달려가던 서울마라톤 이중식님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저분이 누군 줄 모르세요?"
"예, 몰겠는데요. 누군데요?"
"저분은 지난 번, 63km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여성 부분에서 1위를 한 박희숙님이예요"
"애앵!!! 그래요!"
그러면 그렇지! 지금까지 달린 거리도 있는데
언덕에서 저렇게 당차게 뛰는 것을 보면, 평범한 여성 러너가 아니지!
달리면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나자
함께 뛰고 있다는 러너 입장에서 서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생면부지의 아낙네에게 내가 어찌 이렇게 쉽게 말 붙일 수 있을까?
마라톤은 달리는 것만큼 건강한 생활을 가져다주지만
그와 동시에 마라톤을 즐긴다는 공유의식 때문에
서로 건전한 대화를 가능하게 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 뒤쪽에서
"안녕하세요! 송파세상 김현우님!"
아리따운 아가씨 음성이 들려왔다.
오잉! 오늘 나 여복 터졌네! 그려!
누구야? 도대체 날 알아보고 인사해오는 아가씨가......
뒤를 돌아보자,
런너스클럽 콩쥐 윤이준님이 savvy 윤혜자님과 나란히 달려오고 있었다.
언제 봐도 참 밝고 명랑한 낭자들이다.
저런 아가씨들과 평생을 함께 할 어느 낭군은 정말로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낭자들이 처녀로만 수절 세월을 즐기려는 지
낭군에는 관심이 없고, 죽기 살기로 마라톤 대회만 쫓아다닌다.
참말로 세상에, 마약보다 더 지독한 것이 마라톤 중독이라 더니
그 어떤 낭군인지 몰라도 몽달귀신 될 팔자가 보인다 보여!!!
다음으로 계속 됩니다.
송파세상 김현우
이제 국종달 대열은 깃발을 들고 선도에서 설치는 노총각 이명현님을 앞세우고
서대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홍은동 쪽으로 뻗어있는 이 길은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일부 구간이라 해서 "의주로"라 일컬으며
그 이후 길을 조국 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로"로 명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국종달 행사 코스가 이곳을 관통한다는 것은
냉전의 이데올기로 끊어진 한반도 허리를
하루 빨리 이어보자는 뜻깊은 열정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런 뜻을 마라톤을 통해 충분히 이행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이
내 옆에서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달리고 있었다.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 마라조선민국 대통령으로 제청 받은 알통가제 김승기님이었다.
국종달 행사가 출발 하기 전, 잠실운동장에서 뵐 때부터
언제쯤 대통령에 취임할 건지 물어 보았으나
특유의 넉넉한 미소만 내보일 뿐, 확실한 대답이 없었다.
물론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재미로 표현해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마라조선의 대통령으로 뽑혔다는 자체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재발 빨리 알통가제께서 마라톤 대통령에 취임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장관자리 하나 꿰차고,
요즘 세상에 난무하는 무슨 게이트 하나쯤은 일궈내, 한 몫 잡을 것 아닌가?
이제 혹서의 가뭄에도 절대 물줄기가 마르지 않아 우물에 물 꼬리가 있는 것 같다 하여
초리우물, 또는 미정이라 불렀던 미근동(渼芹洞)을 지나
서대문 교차로에 이르렀다.
서대문(西大門)은
처음에 성안의 4대문으로 돈의문(敦義門)이라 하여 사직동 고개에 세웠는데,
풍수지리(風水地理) 상으로
이 자리는 관광방(觀光坊) 동령(東嶺)에 있는 숙청문(肅淸門)과 함께
경복궁(景福宮)의 양팔과 같은 위치이니,
문(門)을 내어 지맥(地脈) 흐름에 손상을 주면 안 된다는 설이 제기 되었다.
그래서 태종 13년(1413)에 이것을 경희궁 서쪽으로 옮겨 서전문(西箭門)이라 하였으나
세종 때, 다시 지금의 서대문 마루턱에 새로 이건(移建)하여 돈의문으로 회복하였다.
그러나 1915년, 일제(日帝)의 도시계획에 따라 돈의문이 철거되었기에
지금은 서대문이란 지명 이름만 있을 뿐, 그 형태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서대문 교차로를 지나자
국종달 행렬은 갑자기 속도가 붙는 듯 했다.
누가 부추겨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쉬는 곳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빨리 도달해서 몸을 추스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달려온 거리가 약 18km 가량 되었기에, 어느 정도 지친 사람들도 보였다.
그래선 지, 제2 구간 휴식장소에서 어떤 분이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불평하면서,
초반에 국종달 대열을 리드했던 Muscle guy 이윤희님께
선도에 다시 서서 속도를 조절해달라고 했다.
국종달 행렬을 서둘러 다시 수습한 윤현수님은 연호와 함께 출발을 선언했다.
하지만 미처 화장실을 들르지 못했을 분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는 용무를 적당하게 볼 곳이 보이지 않았기에,
러너들이 여러 곳에서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종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라면
휴식 장소는 반드시 용무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정해야 할 것 같았다.
하늘을 이어놓은 것처럼 높이 가로지르는 고가차도를 지나자
조선말의 자주독립을 상징하기 위해 1898년에 세워진 독립문(獨立門)이
외세에 시달린 영은문(迎恩門)의 굴욕적인 사대외교를 씻어내고 있는 듯 했다.
또한 바로 옆,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조성된 독립공원은
일제(日帝)에 목숨을 걸고 항거했던 독립투사들의 원혼들과
독재정권의 불의에 저항했던 민주열사의 열정들이
국종달을 응원하는 함성으로 토해내어 조국통일을 선창하는 듯 했다.
이제 주로(走路)는 가파른 무악재 고개로 접어들었다.
서대문부터 다시 함께 나란히 달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포도청나리 최동선님이
오르막 길에 힘이 부치는 지 슬그머니 뒤쳐지며 먼저 가라고 했다.
그 외 몇몇 러너들이 오르막의 무악재를
발놀림보다 빠르게 가쁜 숨소리로 대신하는 것 같았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인왕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였기에
사람들 여럿이 모아져야 넘었다하여 "모아재"라 불렸다는 무악재는
효성 깊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효성이 지극한 한성판윤(漢城判尹)은 하루도 빠짐없이 선친 묘를 참배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밤, 좀 늦었지만, 참배를 거를 수 없어 무악재를 넘으려 하자,
갑자기 숲 속에서 커다란 호랑이가 앞을 가로막았다.
놀랍고 당황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행장을 가다듬고 목에 힘을 주며,
"나는 매일매일 선친 묘를 참배하러 다니는 한성판윤이다.
날 잡아먹겠다면 잡아먹어 보라"고 고함 치면서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호랑이는 뒷걸음을 치면서 그에게 등을 내보이는 시늉만 반복하고 있었다.
자신을 돕겠다는 뜻을 알아차린 한성판윤은 조심스럽게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금수(禽獸)라 할지라도 그 동안 그의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는
쏜살같이 밤길을 달려 한달음에 그를 선친 묘 앞에 이르게 했다.
참배를 마치자, 다시 올 때처럼 호랑이가 등을 내보이므로 올라타자
무악재에 그를 내려놓고 사라져 버렸다.
그 후, 한성판윤이 병들어 죽자, 뒷산에 안장하고, 훗날 가족들이 묘를 찾았는데,
그 옆에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가족들이 그가 살아 생전에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해왔기에,
그 묘지 옆에 그를 묻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대궐까지 알려지자 임금은 '출천지효(出天之孝)'라 하여
그 묘 앞에 효자문을 세우게 하고, 이곳을 "효자리"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무악재를 지나 홍은동 오르막길에 이르자
모자를 예쁘게 쓴 여성 러너가 아주 당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누구일까? 누구인데 이런 고갯길을 저렇게 거침없이 달릴 수 있을까?'
바로 그 때, 나와 나란히 달려가던 서울마라톤 이중식님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저분이 누군 줄 모르세요?"
"예, 몰겠는데요. 누군데요?"
"저분은 지난 번, 63km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여성 부분에서 1위를 한 박희숙님이예요"
"애앵!!! 그래요!"
그러면 그렇지! 지금까지 달린 거리도 있는데
언덕에서 저렇게 당차게 뛰는 것을 보면, 평범한 여성 러너가 아니지!
달리면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나자
함께 뛰고 있다는 러너 입장에서 서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생면부지의 아낙네에게 내가 어찌 이렇게 쉽게 말 붙일 수 있을까?
마라톤은 달리는 것만큼 건강한 생활을 가져다주지만
그와 동시에 마라톤을 즐긴다는 공유의식 때문에
서로 건전한 대화를 가능하게 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 뒤쪽에서
"안녕하세요! 송파세상 김현우님!"
아리따운 아가씨 음성이 들려왔다.
오잉! 오늘 나 여복 터졌네! 그려!
누구야? 도대체 날 알아보고 인사해오는 아가씨가......
뒤를 돌아보자,
런너스클럽 콩쥐 윤이준님이 savvy 윤혜자님과 나란히 달려오고 있었다.
언제 봐도 참 밝고 명랑한 낭자들이다.
저런 아가씨들과 평생을 함께 할 어느 낭군은 정말로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낭자들이 처녀로만 수절 세월을 즐기려는 지
낭군에는 관심이 없고, 죽기 살기로 마라톤 대회만 쫓아다닌다.
참말로 세상에, 마약보다 더 지독한 것이 마라톤 중독이라 더니
그 어떤 낭군인지 몰라도 몽달귀신 될 팔자가 보인다 보여!!!
다음으로 계속 됩니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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