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달릴까 - 부산 온천천변에서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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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광호 작성일02-01-20 19:39 조회5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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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달리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에 대하여 한 두 번씩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문득 달리는 도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달리는가.
건강을 위해서?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
시류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흔히 말하는 스테미너를 강화하기 위해서?
누구나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문득,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런 목적이 없어야 한다.
달리는 지금 이 순간이 좋아서, 이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달리는 것이어야 한다.
비약인지 모르지만
소위 고시를 준비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격한 후에 얻을 것으로 기대하는 부와 명예와...이런 것들을 목표하여 공부를 한다면
이는 올바른 것이 아니며 자칫 잘못될 수도 있다...라고.
'목표'에 지나친 비중을 두고 추구한다면 강한 의지와 집념으로 목적달성 가능성은 높을지 모르지만
자칫 그 공부하는 '과정'은 단지 수단으로만 평가받는데 그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과정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능밖에 못한다면
목적만 달성한다면 수단은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는 식의 해석도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전체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이란
과정 그 자체에서 우선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과정이 좋아서 선택하고 즐기다가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것이라고요.
달리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다면 어느 대회이건 기록의 좋고 나쁨에 따라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고
수험생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미 즐거움을 찾았으므로 혹시 시험에 실패하더라도 전부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록이라든가 합격이라든가... 하는 목표만을 전력추구한 사람은
목표를 이루지 못한 순간에 이미 실패해버린 것이지요.
그에게는 좌절만이 남을 뿐입니다.
달리면서 또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이 힘든 순간 순간도 즐거워해야 한다고?
골인 후의 기쁨이나 우등한 기록에 집착하며 달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구나.
이 고통의 순간도 즐거움인가?
이 자체가 보람인가?
그럴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시시각각 엄습해오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극복해내는 그 순간 순간이 통렬한 기쁨이 아닌가요.
오늘은 부산의 온천천을 달렸습니다.
월요일 오후에 올라갈 스케쥴로 어젯밤 처가에 내려왔습니다.
실력 없는 표시라도 내려는 듯, 유난히 법석을 떨며 달리고 싶었습니다.
연제구 거제동 동서의 집에서 오후 4시에 운동화 끈을 매고 인근의 온천천으로 나갔습니다.
연제구 연산9동 한양아파트 앞 온천천변 '0'이라 쓰인 기점에서부터
잘 포장된 붉은 빛 자전거 전용도로가 이어져 있었습니다.
연제구와 동래구가 만나는 세병교 다리 밑까지.
길이는 2,300미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불충분한 여건인지라 4회 왕복, 18킬로미터 남짓만 달렸습니다.
생선회를 먹으러 갈 약속 때문에 아쉽지만 하프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달리는 도중 억센 부산사투리가 정겹게 들려왔습니다.
'되엤네...'
'잘 티기네...'
'잘 티긴다고 다 농구공이가...'
농구공을 들고 지나가는 청소년들의 커다랗고, 높낮이가 뚜렷한 목소리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제대로 달림이 복장을 갖추어 입은 청년이 서로 교차할 때마다 손을 들어주며 힘차게 '화이팅'을 외쳐줍니다.
달리는 사람들은 전국 어디서나 말없이 통하나 봅니다.
가방 속에 있는 서울마라톤 유니폼을 입고 나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빙그레 혼자 웃었습니다.
하지만 곧 주법도 엉성하고 쿡, 튀어나온 배불뚝이의 내 모습으로는
어느 낯선 곳에서 서울마라톤클럽 유니폼을 입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분간은 어렵겠지요?
이렇게 정겨운, 부산에서의 달리기를 하였습니다.
비록 아직은 초보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마라톤에 입문한 이후 어디에 가든지 할 일이 하나 더 늘은 생활은 유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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