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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 하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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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현묵 작성일02-01-23 05:19 조회5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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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 어머니는 운동회 전날이면 광목을 사다가 우리 형제들의 덧버선을 만들어 주시곤 하였다. 나는 그런 날 저녁이면 어머니의 재봉틀 가에 턱을 괘고 빨리 내 것이 다 만들어지기를 학수고대하곤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는 청군이나 백군 모자를 쓰고(뒤집어쓰면 청군이 백군된다), 러닝 셔츠에 나일론 팬티를 입고 맨발에 광목으로 만든 덧버선을 신고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구름에 떠가는 길이다. 지금 같으면 발이 아파 그런 것 신고는 뛰지도 못할 텐데...
학교에 가면 솜사탕 장수, 물을 담은 커다란 다라이에 번호를 붙인 칸을 만들어 놓아 아이들이 돈을 걸면 가운데 물방게를 놓은 다음 그 방게가 헤엄쳐 들어가는 번호에는 건 돈의 몇 배를 주고, 나머지는 자기 주머니에 넣는 장사꾼(한국 촌 동네판 룰렛이다), 그 외에도 또뽑기, 찍기, 등등 무척 많은 장사들이 코흘리개들의 돈을 울궈먹기 위해 운동장 가에 진을 친다. 학교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거리는 일년에 한번 가을에 있는 잔칫날이다. 특별한 놀이마당이 없던 그 시절, 일년에 설날 포함 몇 번 안 되는 특별 용돈을 받아쥐고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어찌 구름에 떠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경험을 소풍가는 날도 많은 분들이 하셨으리라 믿는다. 나보다 (훠-ㄹ씬)더 촌 동네에 산 우리 반달 장군도 같은 경험을 했는지 몰라?!

선을 하는 스님들이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고, 같은 파트너와 섹스를 하여도 특별히 다른 분위기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조지 쉬한 박사는 이런 기분들도 넓은 의미에서 러너스 하이와 같은 범주에 넣는다. 그것은 운동회의 경우처럼 잔뜩 기대하여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전혀 예기치 않게 나타나기도 한다. 어느 경우에도 그것에의 몰입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느낌은 같을 지 몰라도 위의 경우들은 그냥 하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러너스 하이란 아무래도 달리기와 관련된 위와같은 느낌일 것이다. 마라톤을 예로 들어보자면 사람에 따라 처음 한 5-8km 정도는 몸을 푸는 과정이다. 그간의 훈련이 제대로 되었다고 하면 대략 30km 정도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하프를 지날 때 쯤에는 발걸음도 무척 가볍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 뛰고 있는 속도가 너무 빠르던가, 마라톤을 뛸 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봐야한다.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도 상쾌한 그 상태를 크지는 않아도 하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마라톤이나 오래 달리기가 끝나고 몸은 녹초가 되어 다리를 끌기조차 힘들어도 마음은 날아갈 것같은 그런 기분은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그것을 하이가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도 아마 없으리라 본다.

고재봉님이 아래 인용한 글에서처럼 러너스 하이는 육체적, 심리적, 생리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어떤 특정한 주변 환경과 맞을 때 일어나는 것으로 추측된다. 어떤 사람에겐 이런 저런 생각으로 주유간산하며 천천히 뛸 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인생의 무게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뛴 다음에 일어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야, 이거다!"하고 크게 느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모르고 지나간다고 하여서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가 느끼는 것이 아닐까한다. 사실 달리기만큼 단조로운 운동이 어디 있겠는가? 왼발 앞에 오른발, 그 다음에 왼발... 그러나 일단 코가 꿰면 그것만큼 재미있는 운동이 또 어디 있는가? 이 달리기의 묘미가 바로 러너스 하이에 있지 않을까 싶다.

존 행크는 그의 훌륭한 책 "Running for Dummies"에서 다음과 같이 러너스 하이를 정의하고 설명한다.
"뇌가 분비하는 호르몬 중에 천연 아편의 일종인 엔돌핀이라는 것이 있다. 달리는 도중이나 달리고 난 후 무아지경 또는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한 느낌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을 러너스 하이라고 한다. 이 러너스 하이는 그간 엔돌핀의 작용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한 연구에서 보면 러너들은 엔돌핀이 나오지 않게 하는 약을 복용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이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 연구에 참가한 학자들은 러너스 하이는 페이스, 리듬, 또는 그냥 야외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자극을 받아 얻는 느낌으로, 보다 주관적인 느낌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호르몬이건 아니건 달리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적이고 즐거운 느낌을 준다."

다분히 철학적인 냄새를 풍기는 조지 쉬한 박사는 주말의 오래 달리기를 할 때 가끔 시계를 집에 풀어놓고 뛰고 싶은 만큼 뛰다가 산 위에라도 올라가 앉아있고 싶은 만큼 있다 내려오는 자기 친구에 대해 얘기 한 걸 읽은 적이 있다. 너무 시간에 집착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건강을 도모하겠다는 달리기 본연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뛰다보면, 예기치 않았던 기쁨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버리는 것이 얻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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