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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목요 문학------즐거운 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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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석산 작성일02-02-14 16:09 조회3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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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빈대

방송이나 신문을 보면 천연 기념물들이나 희귀 생물들의 수난에 관한 기사를 가금씩 본다. 숫자가 적으니 보존하고,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멸종되는 것을 막아 보자는 사람들의 주장이 보인다. 그들은 적다는 것에 대해 꽤나 안쓰러워 하는 것 같다.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그 것들을 돌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시간을 들여서 관찰하고, 조사하고, 그 것들의 생존을 위한 방책을 마련해 주려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사람에게 베푸는 정성 이상의 것을 그 것들에게 보이는 사람이 많은 반면에 경제적인 이익 때문에 그 것들을 탐하는 사람들의 얘기들도 들린다. 돈을 벌기 위해 잡아들이는 사람, 보양식 이라고 먹는 사람, 장식용으로 쓰는 사람. 그들은 적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오히려 그 것들을 찾아내고, 잡고,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 처리하는 일들에 신경을 쓴다.
같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살아가지만 한 쪽은 보호하려하고, 다른 쪽은 그 것을 이용하려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것이 먹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수단이었던 시절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이 잡아들이는 숫자도 적었을 뿐더러, 멸종이 되도록 잡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자신들이 적응을 하지 못해 멸종된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같은 지구상에 살아가는 많은 생명체들이 그 숫자가 늘어나건 줄어들건, 그 것은 엄격하게 바라보면 적자 생존의 법칙이 아닐까? 지금의 환경에 가장 적절하게 생존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들은 번성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

생명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우월한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열등한 것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우월하다는 뜻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적응을 잘 하는 것이다. 생명체의 속성은 번성을 할 때는 번성을 향하여 가도록 하는 반면에 소멸하기 시작할 때는 소멸로 치닫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생성과 소멸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아 보일 뿐이다.
한 개체가 우월한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주변 환경이 그들이 살아가기에 가장 적절한 경우일 것이다. 그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는 그들의 숫자일 것이다. 그들이 우월한 지위를 유지할 경우에는 그 숫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늘어날 때는 그 한계가 없는 듯이 그리 늘어날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그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 감소는 참으로 빠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숫자가 늘어날 경우에는 자신에게 이로운 것으로 사용하길 바란다. 가축들이 그렇다. 일하는데 쓰기도 하고, 먹을거리로도 쓴다. 그 숫자가 줄어들면 대개들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간혹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때론 사람 자신을 공격한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파괴함으로 많은 종류의 생명체들이 멸종해 간다고. 그러나 사람은 결국 환경을 이루는 한 요인이요, 스스로 번성하는 개체다. 사람이란 개체가 차지하는 공간만큼은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조건을 갖추도록 한다. 자연적으로든 인위적으로든 그렇다.

반면에 소멸해 가는 생명체는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으로 그 분명한 성격을 보여준다. 희귀 생물들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항상 고의적으로 그런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이되 그 것을 버릴 수밖에 없는 것도 사람이다. 그 것이 다른 생명체에 치명적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생명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희귀 생물들이 인간이 만들어 낸 쓰레기 때문에 그리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잘 살아 남기 위해 한 행동들이 다른 생명체들에게 위험 요인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희귀 생물들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희귀성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희귀 생물들이야 자신들의 적응력이 떨어져 그리 된 것이니 무어 그리 대단하게 생각할 것인가? 적응력이 뛰어나서 잘 살아가는 것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지, 소멸되어 가는 것은 옛 기억일 뿐이다. 오래 전 지구상에서 살았던 생명체의 화석을 보면, 결코 희귀종은 아니다. 당시에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 것들이다. 지금이야 땅 속에 숨어 있으니 그 것이 귀하니 화석 하나만 나와도 대단한 일로 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것이 지금은 귀한 것이지, 당대에는 얼마나 흔했을까?
흔하던, 드물던 이 세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들이 그 흔적을 남겨서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하거나, 현재 숫자가 적어서 관심을 끌던 그 근본은 평범한 것들을 늘 보던 습관에서 벗어나는 호기심일 뿐이다. 호기심이 동하지 않으면 애를 써 가면서 그런 것들을 보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내가 어렸을 땐 빈대가 흔했다. 습한 집에서 잘 자라는 빈대들은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 틈에서 엄청나게 그 숫자를 불려갔다. 주로 밤에 조르르 몰려 나와 피를 빨아먹고 불빛이라도 나면 또 조르르 숨어 들어가는 것들. 한 여름에 모기장을 쳐 놓으면 밑으로 기어들어 왔다가 불이라도 키면 빛이 적게 비추는 곳으로 조르르 기어가는 것이 보인다. 모기장의 구석진 곳에 스며들 듯 그리 몰려 있는 것들을 보곤 했다.
지금이야 빈대 구경을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희귀 생물 취급을 하지 않는다. 천연 기념물로도 취급하지 않는다. 아직도 빈대는 흔한 것들인가? 사람 살아가는 주변에는 쉽게 볼 수 없다. 다만 빈대는 상징적인 말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빈대란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피를 빨아먹는 곤충이기보다는 남에게 의지하여 아무런 노력 없이 어떤 이익을 얻는 사람을 상징하는 말인가? 그 것들도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적절한 환경 속에서는 그 수를 부풀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그 것들이 살기에 나쁜 환경을 만들어 놓으니, 더 이상 사람 근처에 올 수가 없다.
천연 기념물도, 희귀 생물도 아닌 빈대가 주변에서 보이진 않지만, 상징적인 의미인 '빈대' 같은 사람들은 많다. 그 빈대 같은 사람들의 특성은 본인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그 것은 빈대의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빈대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어두운 틈 사이에서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감을 기다리다 먹고, 배설하고, 생산하기를 반복한다. 엄연히 한 생명체가 자기 자신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리하니 번성을 하는 것이다. 빈대는 마치 아무런 노력 없이 살아가는 것들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노력은 결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그 결과를 얻으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나도 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얻었을 때는 즐거워한다. 그러니 즐거운 나처럼 빈대들도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자기들의 새끼들을 잘 키워 나갈 때는 즐거운 빈대가 아닌가?
어떤 것이든 번성할 때는 즐거운 것이다. 설사 빈대라 하더라도 즐겁게 살아간다면 이 지구는 그들에게는 풍족한 곳이다. 아직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이 세상은 우리 인간이 번성하는 곳이고, 살만한 곳이다. 이 지구는 사람들에게는 살아가기에 풍족한 곳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내 곁에 빈대보다는 사람이 더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숫자를 불려가다가 어느 순간 좋지 못한 환경이 되어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하지만 않는다면 즐거워 할 것이다. 빈대가 인간 사회 속에서 즐겁게 살 때 인간이 괴롭듯이, 사람도 자신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지구가 자구책을 마련할 때까지는 여전히 즐거워하며 살아갈 것이고, 그 숫자를 늘려갈 것이다. 70-80년 간을 버티고 먹어치우고, 부서뜨리는 것이야 무슨 상관이랴. 빈대가 그 죽을 때를 모르고 있다가 인간의 손등에서 등을 터뜨리면서 죽든, 때가 되어 그리되든 살아 생전에 인간의 피를 탐한 것을 누가 탓하리까? 오직 살기 위해서 그리한 것인데.
한 목숨 바쳐 내 삶의 영역을 돌아다니면서 파괴하는 것을 구태여 쳐다보고 싶지 않은 것은 여생을 반성하면서 살아가기에는 그 동안 살아 온 인생이 결코 기뻤다고 만 할 수 없을 뿐이다. 빈대처럼 살아도 즐거웠노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그리해야만 나를 닮고자 하는 어린 것들이 따라 할 것이다. 나도 나의 어린것들에게 즐거운 유전 인자를 넘겨주고자 노력하는 이유를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번성기 때의 즐거운 빈대를 닮고자 하는 소박한 꿈이리라. 우리 인간의 번성기가 사라지면 나나 빈대나 혹시 화석으로 남아 어떤 박물관에서 서로 히죽이 웃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서로 적대적 감정을 갖고 헤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우호적인 관계를 남겨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서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과거의 적대적인 감정만을 가지고 서로 쳐다보는 고통을 남기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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