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미스터 블루(Good-Bye Mr.Blue)-마라톤과 축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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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선 작성일02-06-10 07:17 조회455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
2002년 6월4일,
명실공히 "축구의 날"이었다.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애들도 단축수업을 하고
(하긴 선생님들도 축구구경 하셔야지. 쩝...)
TV앞에 앉아 중국-코스타리카전에 이어 일본-벨기에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메인게임인 한국-폴란드전의 흥미를 더하기 위한 오픈게임인 셈이다.
서둘러 달리기 복장을 하고 대공원으로 달려나갔다.
동네 달리기 동무들과 우리들의 영원한 휴식처 OASIS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응원을 하며 관전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터라
비록 월드컵이 국가적, 민족적 대사요 거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동안 충실히 지켜왔던 부주불음(不走不飮)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달리는 사람으로 북적대던 주로가
고요함을 넘어 적막하기조차 하다.
풋풋한 신록의 내음과 함께 이미 져서 주로에 낙엽처럼 깔린
아카시아 꽃잎파리를 밟으며 10Km가량을 즐겁게 달렸다.
머리속으로는 한국과 폴란드전을 예상해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달리기 동무 한사람이
경마장에서 대형 전광판으로 중계를 해주니 거기로 가자고 한다.
샤워를 하고 경마장에 가니 그 넓은 관람대가 입추의 여지가 없다.
대회가 시작하기전인데도 응원구호와 함성소리에 고막이 터져나갈 것같다.
드디어 전반 26분경,
황선홍의 선제골이 작열하듯 폴란드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모두가 일어나서 서로 부둥켜 안고 감격을 나누며 함성을 질러대니
경마장을 동서로 감싸고 있는 청계산과 관악산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전반전을 보고 서둘러서 동무들이 기다리고 있는 OASIS로 길을 재촉했다.
아!
나는 거기서 본 낯선풍경,
열광을 넘어 환각, 혹은 광란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는 장면들을
차마 이야기 할 수 없다.
30여평남짓되는 지하술집이 떠나갈 것같은 구호와 함성속에
폭죽이 연이어 터지고
2:0 승리가 확정되자
샴페인과 맥주가 분수처럼 천장을 향해 솟아 올랐으며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엉엉 소리내어 통곡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 말고는...
별빛 또렸한 맑은 밤하늘 아래 때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축구와 맥주로 인한 취기(醉氣)를 다스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핏 상념에 잠겼다.
축구가 대관절 무엇이길래
저토록 많은 사람들을 일사불란하게
결속시키고 미치도록 만드는 것일까?
임진왜란때나 삼일독립운동때도
저렇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48년만의 첫승! 16강 혹은 8강...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며
그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외환위기를 비롯한 몇번의 경제위기,
그리고 혁명적 과도기를 여러번 경험하면서
우리들 가슴에는 냉소적인 허무주의,
"우린 해도 안돼"하는 패배의식이
그 견고한 뿌리를 내려버렸고
조급한 성정(性情)은
비록 더디기는 하나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나가는 것이 소중하다는
아름다운 이치를 비웃게 만들었으며
어떤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남을 짓밟고 경쟁에서 더러운 승리를
쟁취해야된다는 폭력적 편의주의에 길들여져 갔다.
그리하여
위기에 처하면 극단적 페시미즘(pessimism:비관론)에 솔깃하여
쉽게 평정을 잃고 허둥대다가
좌절과 절망의 나락에 빠져
허무와 쉽게 사귀고 만다.
일반적으로 비관적 전망은
그 자체가 자기성취적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그것이 적중했을 경우 생기는 확대재생산된
최면력(催眠力)과 주술효과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가진다.
#####
마라톤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막연히"건강에 좋겠지"하는 생각으로 달렸다.
점점 심취하여 뛰는 거리를 늘리고
대회에도 몇번 참가하면서
그것은 나에게
아름다운 일탈(逸脫)로 다가왔다.
세상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독버섯 처럼 생겨나는 적들을 향한
적개심과 증오심따위를
마라톤, 그 일탈의 행위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이미 깊은 중독상태에 빠진 지금,
마라톤은 나에게
"하면 된다, 못할 것이 없다."
라는 "자신감"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월드컵,
축구,
거스 히딩크,
48년만의 첫 승
16강, 8강 혹은 4강
이런 단어들이 주는 짜릿한 감동과 환희를
일과성 이벤트로 흘려보내지 말고
만나기 어려운
교훈으로 받아들여
기본을 중시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하며
지금까지 빠져 있었던 허무주의, 패배의식과 결별을 하고
잠시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아
우리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는
미스터 블루(비관론자)를 떠나보내며
"굿바이! 미스터 블루"하고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계기로 승화시키자.
그것이
48년만의 첫승이 가져다 준 14조원에 달한다는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값지고 소중한 소득으로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전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저력이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감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
"굿바이 미스터 블루"는
암울했던 외환위기 시절
어느 증권회사의 리서치 헤드(Research Head)로 재직하면서
비관적 증시전망을 반박하며 쓴 보고서의 타이틀이다.
또한,
당시 주식투자를 하신 분들에게는
돌이키기 싫은 기억 중 하나이겠지만
섬짓한 독설과 비관적 전망으로 일관하며
한국경제와 증시를 난도질 했던
스티븐 마빈이라는 황발색목(黃髮色目)의
에널리스트에게 선사한 닉네임이자
경고의 메세지이기도 하다.
그와는 98년 11월, 증권업협회가 주관하는
증시전망세미나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는 여전히 연말에는 주가지수가 200선을 밑돌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설전(舌戰)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토론을 마치고
나는 그에게 나의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입살이 보살이라 했던가!
마빈은 그 이듬해 초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났으며
98년 10월경부터 서서히 상승하던 주가는
99년들어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48년만의 첫승이라는 쾌거가 월드컵축구사의 한 이변으로 그치지말고
우리 민족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로 승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닝스타 정병선
(2002/06/06)
2002년 6월4일,
명실공히 "축구의 날"이었다.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애들도 단축수업을 하고
(하긴 선생님들도 축구구경 하셔야지. 쩝...)
TV앞에 앉아 중국-코스타리카전에 이어 일본-벨기에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메인게임인 한국-폴란드전의 흥미를 더하기 위한 오픈게임인 셈이다.
서둘러 달리기 복장을 하고 대공원으로 달려나갔다.
동네 달리기 동무들과 우리들의 영원한 휴식처 OASIS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응원을 하며 관전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터라
비록 월드컵이 국가적, 민족적 대사요 거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동안 충실히 지켜왔던 부주불음(不走不飮)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달리는 사람으로 북적대던 주로가
고요함을 넘어 적막하기조차 하다.
풋풋한 신록의 내음과 함께 이미 져서 주로에 낙엽처럼 깔린
아카시아 꽃잎파리를 밟으며 10Km가량을 즐겁게 달렸다.
머리속으로는 한국과 폴란드전을 예상해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달리기 동무 한사람이
경마장에서 대형 전광판으로 중계를 해주니 거기로 가자고 한다.
샤워를 하고 경마장에 가니 그 넓은 관람대가 입추의 여지가 없다.
대회가 시작하기전인데도 응원구호와 함성소리에 고막이 터져나갈 것같다.
드디어 전반 26분경,
황선홍의 선제골이 작열하듯 폴란드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모두가 일어나서 서로 부둥켜 안고 감격을 나누며 함성을 질러대니
경마장을 동서로 감싸고 있는 청계산과 관악산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전반전을 보고 서둘러서 동무들이 기다리고 있는 OASIS로 길을 재촉했다.
아!
나는 거기서 본 낯선풍경,
열광을 넘어 환각, 혹은 광란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는 장면들을
차마 이야기 할 수 없다.
30여평남짓되는 지하술집이 떠나갈 것같은 구호와 함성속에
폭죽이 연이어 터지고
2:0 승리가 확정되자
샴페인과 맥주가 분수처럼 천장을 향해 솟아 올랐으며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엉엉 소리내어 통곡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 말고는...
별빛 또렸한 맑은 밤하늘 아래 때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축구와 맥주로 인한 취기(醉氣)를 다스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핏 상념에 잠겼다.
축구가 대관절 무엇이길래
저토록 많은 사람들을 일사불란하게
결속시키고 미치도록 만드는 것일까?
임진왜란때나 삼일독립운동때도
저렇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48년만의 첫승! 16강 혹은 8강...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며
그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외환위기를 비롯한 몇번의 경제위기,
그리고 혁명적 과도기를 여러번 경험하면서
우리들 가슴에는 냉소적인 허무주의,
"우린 해도 안돼"하는 패배의식이
그 견고한 뿌리를 내려버렸고
조급한 성정(性情)은
비록 더디기는 하나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나가는 것이 소중하다는
아름다운 이치를 비웃게 만들었으며
어떤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남을 짓밟고 경쟁에서 더러운 승리를
쟁취해야된다는 폭력적 편의주의에 길들여져 갔다.
그리하여
위기에 처하면 극단적 페시미즘(pessimism:비관론)에 솔깃하여
쉽게 평정을 잃고 허둥대다가
좌절과 절망의 나락에 빠져
허무와 쉽게 사귀고 만다.
일반적으로 비관적 전망은
그 자체가 자기성취적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그것이 적중했을 경우 생기는 확대재생산된
최면력(催眠力)과 주술효과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가진다.
#####
마라톤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막연히"건강에 좋겠지"하는 생각으로 달렸다.
점점 심취하여 뛰는 거리를 늘리고
대회에도 몇번 참가하면서
그것은 나에게
아름다운 일탈(逸脫)로 다가왔다.
세상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독버섯 처럼 생겨나는 적들을 향한
적개심과 증오심따위를
마라톤, 그 일탈의 행위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이미 깊은 중독상태에 빠진 지금,
마라톤은 나에게
"하면 된다, 못할 것이 없다."
라는 "자신감"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월드컵,
축구,
거스 히딩크,
48년만의 첫 승
16강, 8강 혹은 4강
이런 단어들이 주는 짜릿한 감동과 환희를
일과성 이벤트로 흘려보내지 말고
만나기 어려운
교훈으로 받아들여
기본을 중시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하며
지금까지 빠져 있었던 허무주의, 패배의식과 결별을 하고
잠시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아
우리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는
미스터 블루(비관론자)를 떠나보내며
"굿바이! 미스터 블루"하고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계기로 승화시키자.
그것이
48년만의 첫승이 가져다 준 14조원에 달한다는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값지고 소중한 소득으로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전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저력이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감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
"굿바이 미스터 블루"는
암울했던 외환위기 시절
어느 증권회사의 리서치 헤드(Research Head)로 재직하면서
비관적 증시전망을 반박하며 쓴 보고서의 타이틀이다.
또한,
당시 주식투자를 하신 분들에게는
돌이키기 싫은 기억 중 하나이겠지만
섬짓한 독설과 비관적 전망으로 일관하며
한국경제와 증시를 난도질 했던
스티븐 마빈이라는 황발색목(黃髮色目)의
에널리스트에게 선사한 닉네임이자
경고의 메세지이기도 하다.
그와는 98년 11월, 증권업협회가 주관하는
증시전망세미나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는 여전히 연말에는 주가지수가 200선을 밑돌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설전(舌戰)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토론을 마치고
나는 그에게 나의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입살이 보살이라 했던가!
마빈은 그 이듬해 초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났으며
98년 10월경부터 서서히 상승하던 주가는
99년들어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48년만의 첫승이라는 쾌거가 월드컵축구사의 한 이변으로 그치지말고
우리 민족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로 승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닝스타 정병선
(200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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