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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벽지의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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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애 작성일03-01-16 15:55 조회3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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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리와 난로에게 이르기를
한여름 동안 우리의 엉덩이며 가슴 팍을 시원하게 해주었던 대자리, 지난 여름의 뜨거운 정열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나? 스산한 가을 속에서 남아있는 것은 얼룩 뿐이라고 이제는 모두 나를 잊는다고 슬퍼마라. 자신이 대자리가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나? 더운 여름의 수많은 연회도 시원한 잠자리를 이끈 것도 장본인이 었다고 질러봐야 가을은 오고 이제는 그 자리를 난로와 따스한 카펫이 대신 할 것이다. 이제 너나 할 것 없이 제 할 일 바쁘고 볼일 끝났다고 가버렸다고 나의 공을 모른다고 섭해말라 대자리야, 이제는 잠시 얼룩을 벗고 가을 푸른 하늘에 자신을 탈탈 털어서 광합성 하듯 태양을 마주하고 옥상으로 올라가, 가장 편한 자세로 벌렁 드러누워보는 것도 편할 듯. 때론 인생은 단순하게 살 필요가 있지.

한여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대자리 너, 너를 볼 때마다 늑골이 뻐근해지고 부럽기도 하고 잘난 척 하는 거 같아 배가 아픈 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난로다. 집안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 먼지와 어둠을 덮어쓰고 너에 대한 증오로 활활 가슴을 불태웠을 난로를 생각해 보았느냐? 그것이 증오가 아니어도 세상에 나아가고 싶은 난로의 열정을 너는 아느냐고? 이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때라고 난로가 신이 났다. 아마 언젠가 차가운 한기가 가시고 파릇파릇 봄 볕이 고개를 들 때쯤이면 너랑 나란히 어두운 구석에서 안면을 틀것도 같아. 난로가 활약을 펼치는 동안 너는 먼지와 어둠 속에서 세상을 그리다 못해 푸르게 멍든 몸이면서 그 착한 미소를 들고 타인을 위해 다시 나올 것을 믿는다.

사람 사는 일이 물건의 쓰임새가, 최선을 다한 이에겐 이래 선 안 돼는 거라며 자신을 휘청 하게 하는 적도 많다만, 모든 사는 것의 진정함이란 아픔의 선상 위에서 펼쳐지는 일이라 그래야 조그만 행복도 진국이 뚝뚝 흐르고 맛깔스러운지라 억울 타 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니 모든 지난 일은 잊고 잠시 너를 내려두렴

내가 누구냐고? 난 벽지다. 너희들의 행동을 시시때때로 바라보며 에어컨의 불만, 티브이의 몸살, 눈망울의 온도, 컴퓨터의 오류까지 지켜보는 벽지 말이다. 삼 년을 이 자리를 고수해가며 사 계절을 세 번이나 보내었는데 항상 묵묵히 배경을 보내어주던 나도 이제 더 이상 너희를 지켜보지 못할 거 같아. 한 동안 즐거웠노라 이제 소임을 다하였으니 어디 불구덩이로 들어갈지, 아님 재생 화장지로 변신할지 갈 길이 아득하다. 그게 인생 아니니? 추억과 역사가 담긴 이 몸이 난로와 대자리에게 아주 살갑게 안녕을 고한다. 사이 좋게 지내렴 인생은 누구에게나 고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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