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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했어도 즐거웠던 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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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환 작성일07-10-16 16:30 조회6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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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달려본 올림픽공원과 양재천의 가을은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맑은 하늘 가벼운 바람
갈대밭 억새풀
깔끔한 공원길


서울마라톤의 배려와 열성적 응원은 이미 겪어 알고 있었고
서석신님께선 앞에서 힘들지 않게 편안하게 이끌어 주시고
이장호님께선 뒤에서 지루하지 않게 이런 저런 얘기도 해주시고...
60km와 65km를 한번씩 뛰어 봤지만
오늘 첨으로 걷지 않고 뛰어 보겠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역쉬!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 입니다
저번 주에 풀코스를 조금 힘들게 뛴데다 음주와 훈련부족,
30km이후에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라 물만 마셔대고,
애초 어차피 연습주니깐 대충 즐길 정도만 뛰어 보자는 안일한 마음까지...


48km에서 물을 마시는데 속이 살짝 미식거리면서 어지러워 집니다
순간 아! 아니구나 싶드라구요
슬슬 걷다 뛰다 해볼 요량으로 천천히 뛰어 보는데
호흡이 감당을 못합니다 밸런스도 잘 안맞구요


하이고 이 화상!
이 좋은 조건에서도 여기까지라니...허~참
그래도 어쩔 수 없었죠
증상이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포기하는게 현명할 것 같았습니다


마음을 잡고 크게 호흡하니
그래도 한강의 가을 하늘은 참 좋기만 합니다
사진기나 가져 올 걸...
중도포기 했는데도 기죽거나 우울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김선화페메님의 발걸음만 바빠지네요
걱정해 주시는 얼굴 표정이 저보다 더 사색입니다
전 알아서 자전거라도 얻어 타고 갈테니까
앞에 두 분 잘 이끌고 가시라 했더니
택시비 있는지 확인하고
정말 괜찮겠냐고 묻고 또 묻고 가십니다
쉬지 않고 구령을 맞춰주신 김선화님께도 죄송하고
고통을 참고 한발 한발 힘겹게 뛰고 있는
유귀훈님과 구리타니양께 너무너무 미안한 겁니다
나 땜에 두 분의 페이스가 흐트러질까 걱정도 되구요


세 분이 멀리 사라지는 걸 보면서 저도 느긋하게 걸어 봅니다
가을을 만끽하면서 오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혹시 얻어 탈만한게 있는지도 보구요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간 도착하겠지만
이 부족한 화상 땜에 여러 사람 고생할게 빤~합니다
이왕이면 학생들이 타는 자전거를 붙잡고 싶었습니다
사정을 얘기하고 학생을 뒤에 태우고
여유만만 결승점을 향하면서
가을 바람에 노래도 한곡 날리면서
그 좋았던 레이스를 이어가고 싶었더랬습니다


근데 막상 세우려고 보니 아시다시피 요즘 자전거는 거의 뒷좌석이 없는 겁니다
아무 자전거나 붙잡으면 되겠지 했는데
아니 이건 영~ 아닌겁니다
이것들도 ‘S'라인 붐인지 거의 스피드를 위한 자전거고
어쩌다 보이는 애들 기저귀 넓이 반도 안되는 뒷좌석은
말도 나오기 전에 눈앞에서 쓩 사라지고


아!
옛날 삽을 장검처럼 옆에 차고 느그작~느그작~ 논에 물대러 가던 자전거,
쌀을 몇 가마씩 얹고 늠름하게 다니던 화물(?)자전거
(제 기억으로 음파시아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정확한 명칭이???)
하여간 펑퍼짐한 자전거 뒷좌석이 가슴속에 사무쳐 주십니다!!!


이때 멋진 뒷좌석을 단 적토마에
대장 깃발처럼 서울마라톤 깃발을 높이 휘날리며
대조영에 나옴직한 건장한 장수 같은 분이 ‘짠’하고 나타납니다
김대현님!
아! 서울마라톤은 이렇게 항상 뒤에서 챙기고 또 챙기는 분들이 꼭 있구나!!!


반갑고도 반가웠습니다
근데 막상 당신은 그냥 뛸테니 적토마를 저 혼자 타고 가라는 말을 들으니
고지식해선지 영 죄송해서 못 타겠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뒷자리에 타고 가 보는데
자리가 불편하고 다리가 걸리지 않게 힘을 주니 얼마 못가 숨이 찹니다
할 수 없이 염치없게도
젊은 놈은 적토마를 몰고 하루종일 애쓰신 장군님은 뛰셨습니다
송구하옵니다!
이 빚은 꼭 다른 달림이들에게 기필코 갚겠사옵니다!


근데..산넘어 산이라..
더 송구한 일이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다음번 급수대에 도착할 쯤
“부상자가 한사람 남았다는데 어떻게 저리 잘 뛰어 오지?
하고 가만히 보니까 김대현이야! 허허허“


아이고 명예회장님!
연세가 많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 화상 땜에 점심때가 지나도록 땡볕에서 여태 기다리고 계신겁니다
하이고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더라구요
여기 있는 차량은 급수대 물품을 옮기느라 좌석이 안난다며
저를 편안하게 본부까지 이송시킬 연구를 하고 계시네요
쓰러지더라도 걍 달려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데
여러 사람 또 애멕일거고
송구한 마음이야 내가 자초한거니 감수해야겠다고 그냥 달래고 달래고...


급수대 자봉하셨던 두 분
성함도 못 여쭤 봤네요
화물차도 아니고 고급 승용차에 짐을 쑤셔 넣어서
어떻게 어떻게 자리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도 제가 차에 타고나니까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네요
그래 차를 타고 빨리 들어가야 여러사람 도와 주는거다 싶고
빨리 들어가서 마지막 주자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어집니다


차를 타고 본부를 향하는 그 짧은 시간에
서울마라톤 가족들의 열정에 새삼 또 놀랍니다
오늘 먹은 간식 중에 뭐가 젤 좋았는지
거리에 따라서 어떤 간식이 더 나은지
뭐 추가하거나 바꿔야할 간식은 없는지...
저한테 묻고 서로 얘기하시고...


햐!
가만보니 웬만한 사람은 종교 생활이라도
이 정도 열정에는 못미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잘 될거야!
서울마라톤은 오래도록 멋진 클럽으로 남을거야!
애들하고도 같이 와서 뛰야지
아니 나중에 손주들도 데려와서 뛰야지
덕분에 잠시 흐뭇한 상상에 빠져 봅니다


본부에 도착하니 너 나 없이 식사하라고 난립니다
수고했다고
애 쓰셨다고
국밥 한 그릇 빨리 달라고...
‘하 이거 쑥쓰럽구만!’
'다른 대회 같으면 쓸쓸히 짐 싸서 도망치듯 집으로 갔을 판인데...'
이장호님 60km가 처음이었냐며 위로해주시고
어떤 분인지 전해질 때문에 그런 증상이 나온 거라며 가르쳐 주십니다


어? 근데 이거 봐라?
뭐가 이렇게 맛있어?
오징어국밥?
징하게 맛있네!!!
내가 아까 미식거리고 어지러워서 쓰러질려고 했던 거 맞나? 허 ~ 참!


허겁지겁 국밥 한 그릇을 비워가니
마지막 주자가 들어온다고 멘트합니다
김선화님 유귀훈님 구리타니양 멋있게 힘차게 들어오네요
미안하고 고맙고 멋지고
박수가 그냥 나옵니다


유귀훈님과 반가움의 악수를 하고
김선화님께 애쓰셨다 인사드리니
괜찮냐며 제 몸 걱정이 먼접니다
그렇게도 편하게 이끌어 주셨는데...
아쉽고 죄송한 마음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덕분에 맑은 가을 하늘을 마음껏 즐기고
좋은 약이 되는 경험도 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더구나 유귀훈님과 구리타니양이 한번도 걷지 않고 뛰었다니
두 분이 대단하고 다행스럽고 기분 좋았습니다


서석신님 이장호님 김선화님 김대현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명예회장님과 이날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유귀훈님과 구리타니양!
11월18일에도 부상없이 완주하길 바랍니다
저도 그 날은 꼭 완주 하겠습니다


처음 뛰어 본 반달!
서울마라톤클럽이 마스터즈 달림이들의 이정표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라톤을 사랑한다면 누구나 주인 같은 이 모임에
우리의 아이들도
우리의 손자들도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무대가 되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당근이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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