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과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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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신석 작성일08-01-09 15:40 조회1,549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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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과 은퇴
정년퇴직 : 정하여진 나이가 되어 직장에서 물러남
은퇴 :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
정년병 : 정년퇴직자에게 일어나는 노이로제 증상. 오랜 세월의 봉급생활에서 은퇴한 뒤 장래에 대한 불안이나 정신적, 육체적 해이 따위로 나타난다.
2005년 12월 나는 내 생애 4번째 직장에서 22년간의 월급쟁이를 마쳤다. 직장생활 36년 동안 조직개편, 보직변경, 진급, 인사고과가 있을 때마다 마음 고생을 하며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군시렁거린 월급쟁이 생활을 정년인 만 61살 12월까지 마칠 수 있었으니 덕담으로 건네는 후배들의 ‘천수를 누렸다’에 공감을 했다. 내게는 정년퇴직과 함께 은퇴가 시작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일부러 휴가를 내어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스포츠센터에 가서 지치도록 운동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하고싶은 공부도 시작하였다.
그러나 왠지 마음은 불안해 지고 하루가 길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나는 40대 후반부터 심난해지면 찾는 병원을 방문하여 문진을 받고 F코드의 투약을 다시 시작했다. 그래도 증세는 점점 심해져 갔다.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자동차 운전중 접촉사고도 잦았다.
내게 정년퇴직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장래에 대한 경제불안이다. 은행 통장의 지출은 변함이 없는데 수입은 중단된 것이다. 한 달 두 달 경과할 때마다 저축 잔고는 줄어나갔다. 마이나스 통장을 메꾸기 위해 적금 통장을 해약하여 채워 넣어야했다.
내게 노후 경제 대책은 미미했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노후를 설계하였다. 자식들 대학 진학 후에서야 나는 우리 내외의 노후 경제 대책에 대하여 조금씩 실천을 하기 시작했다. 직장의 퇴직금 중간 정산과 적금을 타면 꼬박꼬박 개인 연금을 들었다. 그러나 IMF 이전에는 직장의 정년이 65세까지 였는데 61세로 줄어드는 바람에 4년의 계획이 차질이 난 것이다.
1년을 운동도 하지 않고 집에 칩거하여 궁상을 떨었다. 그 동안 체중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주위 학교 운동장이라고 걷고 오라며 몰아세웠다. 오른쪽 무릎 외측 연골에 골극과 퇴행성관절염으로 진전되고 있었다.
결혼한 맞벌이를 하는 딸이 외손주를 돌보아 달라고 하여 우리 내외는 2007년 1월부터 서울에 올라왔다. 그렇더라도 딸 내외가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면 우리 내외는 차를 끌고 주말의 경부고속도로를 다섯 시간을 전후하여 아들과 강아지 그리고 화분들이 있는 대전을 향해 달려간다. 강아지 산책과, 청소, 빨래, 화분 물주기 등으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그런 생활이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리고 기약도 없다.
앞으로 두 해 정도면 개인연금이 모두 개시된다. 직장생활할 때처럼 넉넉하진 않지만 우리 두 내외 운동하고 친구들 만나는 데는 그냥저냥 될 것 같다. 그래도 모자라면 역모기지론으로 채워야한다.
서울에서는 매일 점심을 먹고 달리기를 한다. 진선여자중고등학교에서 영동4교, 탄천, 한강에 이르러 잠실, 광나루까지 약 17km를 시속 10km 이내로. 힘 들면 걷기도 하고, 돌아올 때는 거의 걷는다. 한강의 사는 모습을 관조하노라면 내 삶의 조급함도 무뎌지는 것 같다.
정년퇴직, 은퇴까지하고 벌써 3년째인 내게도 꿈은 남아있다. 일흔 살이 넘기 전에 제한시간 내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의사가 자전거를 타면 안된다고는 하지만 트라이애슬론도 제한시간 내에 완주하고싶다.
정년퇴직 : 정하여진 나이가 되어 직장에서 물러남
은퇴 :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
정년병 : 정년퇴직자에게 일어나는 노이로제 증상. 오랜 세월의 봉급생활에서 은퇴한 뒤 장래에 대한 불안이나 정신적, 육체적 해이 따위로 나타난다.
2005년 12월 나는 내 생애 4번째 직장에서 22년간의 월급쟁이를 마쳤다. 직장생활 36년 동안 조직개편, 보직변경, 진급, 인사고과가 있을 때마다 마음 고생을 하며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군시렁거린 월급쟁이 생활을 정년인 만 61살 12월까지 마칠 수 있었으니 덕담으로 건네는 후배들의 ‘천수를 누렸다’에 공감을 했다. 내게는 정년퇴직과 함께 은퇴가 시작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일부러 휴가를 내어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스포츠센터에 가서 지치도록 운동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하고싶은 공부도 시작하였다.
그러나 왠지 마음은 불안해 지고 하루가 길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나는 40대 후반부터 심난해지면 찾는 병원을 방문하여 문진을 받고 F코드의 투약을 다시 시작했다. 그래도 증세는 점점 심해져 갔다.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자동차 운전중 접촉사고도 잦았다.
내게 정년퇴직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장래에 대한 경제불안이다. 은행 통장의 지출은 변함이 없는데 수입은 중단된 것이다. 한 달 두 달 경과할 때마다 저축 잔고는 줄어나갔다. 마이나스 통장을 메꾸기 위해 적금 통장을 해약하여 채워 넣어야했다.
내게 노후 경제 대책은 미미했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노후를 설계하였다. 자식들 대학 진학 후에서야 나는 우리 내외의 노후 경제 대책에 대하여 조금씩 실천을 하기 시작했다. 직장의 퇴직금 중간 정산과 적금을 타면 꼬박꼬박 개인 연금을 들었다. 그러나 IMF 이전에는 직장의 정년이 65세까지 였는데 61세로 줄어드는 바람에 4년의 계획이 차질이 난 것이다.
1년을 운동도 하지 않고 집에 칩거하여 궁상을 떨었다. 그 동안 체중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주위 학교 운동장이라고 걷고 오라며 몰아세웠다. 오른쪽 무릎 외측 연골에 골극과 퇴행성관절염으로 진전되고 있었다.
결혼한 맞벌이를 하는 딸이 외손주를 돌보아 달라고 하여 우리 내외는 2007년 1월부터 서울에 올라왔다. 그렇더라도 딸 내외가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면 우리 내외는 차를 끌고 주말의 경부고속도로를 다섯 시간을 전후하여 아들과 강아지 그리고 화분들이 있는 대전을 향해 달려간다. 강아지 산책과, 청소, 빨래, 화분 물주기 등으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그런 생활이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리고 기약도 없다.
앞으로 두 해 정도면 개인연금이 모두 개시된다. 직장생활할 때처럼 넉넉하진 않지만 우리 두 내외 운동하고 친구들 만나는 데는 그냥저냥 될 것 같다. 그래도 모자라면 역모기지론으로 채워야한다.
서울에서는 매일 점심을 먹고 달리기를 한다. 진선여자중고등학교에서 영동4교, 탄천, 한강에 이르러 잠실, 광나루까지 약 17km를 시속 10km 이내로. 힘 들면 걷기도 하고, 돌아올 때는 거의 걷는다. 한강의 사는 모습을 관조하노라면 내 삶의 조급함도 무뎌지는 것 같다.
정년퇴직, 은퇴까지하고 벌써 3년째인 내게도 꿈은 남아있다. 일흔 살이 넘기 전에 제한시간 내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의사가 자전거를 타면 안된다고는 하지만 트라이애슬론도 제한시간 내에 완주하고싶다.
추천 1
댓글목록
이경열님의 댓글
이경열 작성일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대전에내려가지않는일요일 반달에 운동하러나오시죠.봽고싶네요
이장호님의 댓글
이장호 작성일
선배님 반갑습니다.
가끔 선배님께서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계실까? 왜 운동장에는 나타나지 않으실까? 궁궁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일년여 동안 통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운동하고 계신다니 다행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내내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