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문학-유럽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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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생 작성일02-02-14 23:15 조회6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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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여수에서 김종생입니다.
해랑님의 재촉에 저 같은 둔돌이, 느림보, 게으름뱅이는 도저히 게눈 감추듯 찾아오는 목요일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꾀를 내어 제 큰딸(김차림, 초등5년)이 쓴 유럽 기행문으로 눈가림을 하고저 합니다.
기껏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찾는 가족임에도 마라톤을 핑계로 혼자 뽈뽈거리고 다니다보니 이도 지키기가 쉽지 않아 항상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오던 차에 어떤 기회(?)가 생겨 큰 마음 먹고 가족이 함께(4명) 벨지움에 있는 친구집을 일 주일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여행 조건으로 기행문을 제의했더니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덥썩 그러하겠다고하여 쓰게된 글입니다. 아래의 글은 제 큰딸이 쓴 글이며 작은딸(김바른, 초등3년)이 쓴 글은 좀 짧지만 다음 기회에 오늘 처럼 유용하게 활용할 요량으로 꼽쳐두었습니다.
혹시 어려운 국가 경제 사정에 비추어 해외 관광의 낭비적, 사치적 요소를 지적하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여행 전에 미리 여행 전문가이신 정동창 사장님(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의 도움으로 치밀한 준비를 한 덕에 여행사의 팩키지 여행이 아닌 하루에 약 5 시간 이상을 걸으며 최소한의 경비로 가족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좌우튼 글을 올리기엔 여라 가지로 쾡기는 점이 없지않지만 그냥 우리 동네거니하고 편한 마음으로 올리오니 넓으신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벨지움의 워터루 부근과 파리의 세느강변을 달려보았는데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히---임.
김종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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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에서 마이클 아저씨의 집까지. . .
집 울산공항 김포공항 인천국제공항 프랑크푸르트공항 쾔런 브뤼셀의 Midi역 마이클 아저씨의 집
*월*일. 맑음(브뤼셀의 날짜.)
오늘은 유럽 여행을 가는 첫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4:30정도에 일어나서 옷을 입고 갈 준비를 하였다. 나는 그 전날 밤 왠지 모를 기쁨과 설레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내가 제일 빨리 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것은 콜택시를 불러서 갔다. 이른 새벽인데도 찻길엔 차들이 많이있었다. 나는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차들을 보고 '이 세상에는 부지런한 사람도 참 많구나. . .'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후. . .우리 가족은 울산공항에도착했다. 거기서 공항 직원 언니와 엄마께서 알길래 엄마께 여쭈어 봤더니 엄마께서 그 언니가 엄마의 옛날 제자였다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무척 놀랐다. 엄마께서 언제부터 아이들을 가르치셨길래 저렇게 큰 제자가 있었나. . .
그 다음엔, 우리는 짐을 울산에서 김포공항으로 옮기기위해 우리가 탈 비행기에 짐을 넣기로 했다. 그래서 공항직원들이 해라는 지시대로 어딘가에 두었더니 기계가 움직여 그것을 비행기로 날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 2층으로 올라가서 탑승을 기다렸다. 얼마 후 공항 직원 언니들의 비행기를 타라는 소리가들렸다. 우린 모두 그 곳으로 가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몇 번 타봤지만 솔직히 서울쪽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김포공항이나 인천국제공항은 어느 정도의 크기일지 무척이나 궁금해 하면서갔다. 정확히 45분 후, 우리는 김포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기는 역시 내 생각대로 울산공항보다는 컸다. 우리가족은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을 해놨던터라 김포공항에서 시간을 끌 여유도 없이 가방을 찾아와 곧 인천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떠났다.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좀 빨리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군것질도 좀 하고 공항 병원에도 들렀다. 왜냐하면 바로 아빠께서 배탈이 나셔서 병원에 간 것이다. 갔을 때는사람이 많아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진료를 끝내고 나서 약국에서 약을 타가지고 와서 먹을 것 으로 배를 좀 채우고 난 뒤, 면세점도 이리저리 구경을하며 돌아다녔다. 얼마 후, 8번 탑승구로 가서 프랑크푸르트행 아시아나 비행기를 탔다.
아빠께서 말씀하시기를 프랑크푸르트까지는 약 10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셨다. 곧 우린 어마어마한 엔진 소리와 함께 프랑크푸르트로 떠났다. 식사시간이 다되니 언니들이 음식을 가져왔다.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차안이나 비행기에서 잠을 잘 못 자기 때문에 피곤했지만 자지를 못했다. 그대신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역시 오래 타야되는 비행기라서 음악도 듣고 영화를 볼 때 필요한 헤드폰도 주었다. 가는데 좀 지루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우린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기차를 타고 쾔런에서기차를 갈아탔다. 그 다음엔 브뤼셀로 갔다. 얼마 후 우린 브뤼셀의 Midi역에서 내렸다. 약 11시 정도가 되어 있었다. 거기엔 아빠 친구분이신 마이클 아저씨가 기다리고 계셨다. 우린 아저씨 차를 타고 아저씨 댁으로 갔다. 우리는 바로 여기 아저씨 댁에서 몇 일을 묵을 예정이다. 하~ 오늘은 참 고된 하루였다.
2.마이클 아저씨 댁에서 이틀을 보낸 뒤 파리에 오기까지. . .
마이클 아저씨 댁 관광지 마이클 아저씨 댁(하룻밤을 자고..) 프랑스의 파리
*월*일.흐림
어제는 정말 고된 하루였다. 밤11시쯤 아저씨 댁에가서 잠을 잤다. 아저씨 댁은
동화속에서나 나오는 집처럼 생겼다. 뾰족한 지붕에 집안도 이층으로 되어있고.. .몇 일 밖에 되지않지만 나는 이런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터레이시아랑 놀았다. 터레이시아는 마이클 아저씨 댁의 딸이다. 지금 겨우16개월이 됐을 뿐이다. 이 아저씨의 부인은 한국사람이다. 그래서 터레이시아는 한국사람도 좀 닮은 것 같고 독일인도 좀 닮은 것 같다. 아줌마께서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고 우리가족은 마이클 아저씨를 따라 시내에 관광을 하러갔다. 거기에는 몇 백년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섕 미셸 성당도 있었고, 오줌누는 사내아이 동상도 있었다.그 외에도 법정, 왕궁, 돈키호테 동상, 오줌누는 여자아이 동상 등 많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거리를 다니면서 보니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나라는 개를 잘 데리고 다니지 않는데 그 쪽 사람들은 하도 개를 많이 끌고 다녀서 사람들의 신발에 거의 매일 개똥이 묻혀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쪽 사람들은 초코릿을 많이 먹기 때문에 고급 초콜릿 전문 매장도 많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몇 시간을 시내에서 보내다가 다시 마이클 아저씨 댁으로 왔다.
*월*일.흐림
하룻밤을 자고. . . 마이클 아저씨께서 출근을 하시고 돌아오신 뒤 우리는 프랑스의 파리로 가기 위하여 마이클 아저씨 자동차를 타고 역으로 갔다. 아쉬운 이별 이였다. 우리는 유럽에서 제일 빠른 탈레스라는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갔다. 기차 내부는 호텔 급 수준(?) 이였다. 우리는 파리의 '북역' 에서 내려 숙소를 정하기 위해 여행사에 물어 보았다. 그런데 어떤 한국 오빠가 우리 주위에서 계속 얼쩡거렸다. 그땐 아빠께서 전화를 하시는 터라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나중에 보니 유학생인데 공부를 하려고 민박집에서 픽업을 해서가는 오빠였다. 그런데 조금 뒤, 어떤 여자가 우리보고 돈을 좀 달라고 했다. 아마도 집시인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가 'Sorry...'라고 했는데 그 여자가 뭐라고 궁시렁 거렸다. 아마도 욕인 것 같았다. 나중에 아빠가 전화를 끊으시고 하시는 말씀이 그런 사람이 오면 말도 하지말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빠께서 동역으로 가야한다고 하셨다. 그러니 아까 그 오빠가 시간도 남는데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우리는 한결 편하게 동역을로 갈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그런데 들어가보니 완전히 호텔이 아니라 여관같았다.
우리 가족은 시간이 좀 남아서 몽마르뜨 언덕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거기를 가면서 보니 거의 다 흑인이였다. 그리고 유명한 파리같은 도시치고는 너무나 더러웠다. 조금 후.. 몽마르뜨의 사원에 도착하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사진도 몇 장 찍고 파리의 시가지를 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영 딴판이였다. 그리고 저~옆을 보니 에펠탑이 보였다. 마음도 설레이고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시내를 좀 구경하다가 다시 호텔로 와서 잠이 들었다. 정말 좋은 날 이였다.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하다.
3.파리에서 2박 3일을 묵고, 프랑크푸르트까지. . .
*월*일.맑음
어제 우리가족은 몽마르뜨 언덕을 구경 하였다. 오늘 우리 가족이 관광한 곳은'노틀담의 곱추'영화나 만화영화의 배경인 노틀담 대성당과, 개선문, 파리에서 제일 유명한(내가 생각 하기에는 제일 유명한 것 같음.)에펠탑에 갔다.
우리는 호텔에서 제공해 주는 아침식사를 먹고, 호텔을 나와 버스를 타고 노틀담 대 성당으로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 인상적인 것이 버스가 2개가 같이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기차처럼 말이다. 기차는 밖에서 보면 한 기차 칸의 일반적인 그런 철제로 되어있지만 이것은 그 대신 고무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냥 우리 나라 처럼 하나짜리의 버스도 있다. 그리고 지하철표를 버스표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도 좀 개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성당에 도착해서 우선은 성당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돌아보는 오래된 흔적이 구석구석이 있었다. 이끼도 좀 피어있고. . .성당의 벽에 꾸며져있는 그런 동상 중에 머리가 부러져 있는 것 도 볼 수 있었다. 내 생각에 그 조각 동상이 우리 나라의 기와를 바치고 있는 용(내 생각으로는 수호신같음.)처럼 그 동상도 아마 서양적 마귀 마녀, 악마 등이 들어오지 못 하도록 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성당 주위를 둘러본 뒤 성당 안을 들어가 보았다. 안은 밖에서 보던 그런 웅장함과는 틀린 느낌을 주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엄숙하였다. 그 안에서는 옛 교황이 입던 옷, 신발, 반지 등을 볼 수 있게 전시를 해 놓았는데 그곳은 표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념 겸, 구경 겸 그곳에 갔다. 내 생각으로는 교황님이나, 신부님 같은 분들은 아주 검소할 줄 알았는데, 반지도 휘황찬란하고, 옷도 내 생각에는 좀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부님이 들고 있는 무엇인가는 위쪽이 엄청나게 화려했다. 다이아몬드도 셀수 없이 많이 박혀있고, 그 중앙 부분은 루비나 에메랄드 따위의 색조 보석이 박혀 있었다. 나는 속으로 '옛날 사람들은 교황님의 말에는 껌뻑(?)했다더니 신부님이 이 정도니 교황님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 .'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세느강을 구경했다. 옛날의 책에 보면 '세느 강변에서 책을 읽고. . .'이런 단어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아주 분위기 있고 그럴 줄 알았는데 물살이 엄청 세었다. 그날은 춥지 않았지만 우리가 오기 얼마 전에 눈이 내려서 흙탕물에다가 물살이 센 것 같았다. 우리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가면서 목이 말라 물을 사려고 했는데 물이 귀해선지 물이 엄청 비쌌다. 그리고 우리 나라 음식점에서는 물을 공짜로 주는데 여기서는 물도 사먹어야 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그날은 표를 예매를 해야되는 날이라 우리는 내일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나타내며 오페라로 향하였다. 그 주변에 백화점도 있어서 구경을 좀 하다가 개선문으로 갔다. 어느 길을 가다가 앞을 보니 저~앞에 그 멋있는 개선문이 있었다. 우리는 그때 택시를 타고 있었는데 그 기사 아저씨가 친절히 매표소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셔서 표를 끊어 쉽게 갈 수 있었다. 올라가는데 높아서 다리가 좀 뻐근했다. 올라가서 저~ 옆쪽을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에펠탑이 턱하니 서있었다. 위에서 사진도 찍고 좀 있다가 우리는 다시 내려가 에펠탑을 향해 걸어갔다. 몇 분쯤 가다보니 에펠탑의 근처까지 왔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하나같이 가까이 가서 보니 에펠탑이 그렇게 예쁘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을 때. 밤에 길을 갈 때 켜져있는 가로등 불빛과 같은색의 불빛이 에펠탑을 애워싸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왜 에펠탑은 밤에 와여 더 멋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탑을 올라갈 때 어찌나 높았으면 귀까지 멍멍해졌다. 우리 가족은 꼭대기에 도착해서 실내에서도 구경을 하고 한층을 더 걸어 올라가 그물망이 쳐져있는 야외에서도 구경을 하였다. 거기에서 내려다본 관경은 멋지기도 하지만 개선문과는 달리 (예.<표현> 야~멋지다.) 공포스럽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높은 곳 이였다. 그 다음엔. . .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4.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가 프랑크푸르트로. . .
*월*일.비
오늘은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가 프랑크푸르트에 가는 날이다. 오늘 우리 가족은 일찍부터 서둘러 짐을 챙겨 호텔에 놓아두고 루브르로 향했다. 루브르 안에 들어가보니 엄청나게 어마어마했다. 아빠께선 우선 빨리 가야되니, 유명한 비너스 조각상, 모나리자 그림을 먼저 보러 가자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비너스 조각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박물관이 하도 커서 모나리자 그림을 찾으려고 하니 거의 이건 미로 수준이였다. 우리는 겨우 찾아서 그림을 감상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이집트의 스핑크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박물관에는 우리 옛날 조상 때 빼앗아갔던 유물도 있다고 했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거기 안에서 파는 와플, 샌드위치 따위의 것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호텔을 향해 루브르를 떠났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가지고 와서 동역으로 갔다. 거기서 좀 기차를 기다렸는데 아빠께서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오셨다. 그러나 우리 나라와는 또 좀 맛이 틀려 갑자기 우리 나라 것이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후. . .기차가 도착했다는 안내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우리는 기차에 탔다. 오래 가야하기 때문인지 기차에 객실이 있었다. 몇 시간 후. . .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거기서 미리 예약해놓은 괴테
민박집을 찾아서 짐을 풀어놓고 우린 내일을 위해 다시 잠을 잤다.
5.하이델베르그에서. . .
*월*일.비-맑음
오늘 아침 식사는 민박집에서 주는 컵라면을 먹었다. 오랜만의 맛이라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다 먹고는 기차를 타고 하이델베르그에 갔다. 하이델베르그는 우리 나라의 시골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나 버스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는 우선 하이델베르그 성을 가기 위해 어느 할아버지 한분에게 여쭈어 보았다. 그러니까 그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해야되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한국말을 제법 많이 할 줄 아셨는데 그 이유는 그 할아버지의 딸이 아시아 사람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교수이기 때문이였다. 나는 타지에 나와서 우리 국가의 말을 듣
는 것이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외국인에게 그만큼 우리 한국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리고 하이델베르그는 우리 나라의 진주처럼 '대학의 도시'라고 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그 할아버지께서는 시간이 남으신다고 우리를 가이드 해주셨다. 그 할아버지 덕분에 도서관에도 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 덕분에 교회나 성당의 역사 등을 알 수 있었다. 도서관 같은 경우만해도 일반 주택 집 같은데 도서관이라고 그 할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으니. . .그리고 하이델베르그는 오래된 건물이 거의(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님.) 없었다. 왜냐하면 전쟁이 났을때 적이 다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옛날 학생 감옥에 대려다 주셨다. 그때는 점심시간이 다 됐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약속이 있다면서 먼저 가셨다. 우리는 그 할아버지에 대하여 정말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할아버지와 헤어진 후 우린 학생 감옥에 들어갔는데 거긴 전시해놓은 것은 없었지만 그 건물 자체가 박물관 이였다. 벽에는 옛날에 갇혔던 학생들이 지루했는지 낙서 천지였다.
우리는 나와서 배가 고파 음식점을 찾아 다녔다. 우리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4가지를 시켰는데, 내가 제일 맛이 없는 것 이였다. 그것은 바로 샐러드였다. 다른 사람들것도 먹긴 했지만 나와서도 속이 편치 않았다. 우리는 끼니를 해결한 후 하이델베르그 성을 찾아갔다. 우리는 그 성에 찾아가 유명한 왕실의 거대한 술통을 구경하였다. 그 술통은 가로 세로가 한 건물 2층 정도 되는 것 같이 보였다. 어찌나 컷으면. . . 그리고 우리는 옛날의 의학의 관한 방에 갔다 그곳에 가보니 약의 재료도 있었고 약을 찧는 기구도 보였다. 우리가족은 다시 내려와서 시내의 백화점에 갔다. 그 백화점 옆에 있는 옷가게에 가서 내 옷도 샀다. 우리는 피곤해지고 기차시간도 다 되어서 기차를 타고 민박집으로 왔다. 그리고 오는 도중에 보니 여자고 남자고 담배를 피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객실 안이 완전히 담배 냄새로 꽉 차서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6.로렐라이 언덕. . .
*월*일.맑음
오늘 우리 가족은 기차로 라인 강변을 따라 로렐라이 언덕 쪽으로 갔다. 거에는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독일에는 주5일만 학교에 나간다 그리고 겨울 방학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있었다. 우리는 우선 안내 받는 곳에서 로렐라이 언덕쪽을 물어 보았다. 그래서 그 직원이 택시 하나를 불러 주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언덕으로 가서 구경을 하였다. 밑은 완전히 절벽이였다. 그 밑은 라인강이 물살도 세게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언덕을 한바퀴 돌고 나서 다시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갔다. 거기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부끄럼을 타서 멀리 떨어져 있고 엄마 아빠께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괴테의 집(민박집이 아니고 진짜 괴테의 집.)에 가보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테의 방과 책장과 할머니의 방, 난로 등 오래된 물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엄마의 요청에 따라 조그마한 괴테의 흉상을 샀다. 그 다음엔 거리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다가 다시 민박 집으로 돌아왔다. 쇼핑을 할 때는 친척들에게 선물할 초콜릿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과일을 많이 못 먹어서 과일 화채와 파인애플을 잘라 놓은 것도 샀다. 화채하고 파인애플을 먹는데 너무 달아서 입이 달려서 못 먹을 것 같다. 하지만 오랜만에 먹은 과일이라서 그런지 맛은 좋았
다.
7.마지막날. . .
*월.*일.맑음
오늘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마지막 날 이였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청을 둘러보았다. 시청의 조각은 정말 멋진 예술품이였다. 우리 나라는 조각이 거의 똑바르지만 여긴 옷이 바람에 휘날린다 던지. . . 어쨌든 옷의 주름을 보면 아주 세세하게 표현을 해놓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백화점에서 좀 더 구경을 하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 도착하니 너무 일찍 도착해서 이리저리 시간을 보냈다. 조금 있으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해서 우린 공항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는데 음식의 양이 너무 많아서 우리 가족은 끝에는 억지로 먹어야 했다. 우리 가족은 점심을 먹은 후 탑승구로 가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 .우리 가족은 비행기에 탔다. 우리 좌석은 1등석 칸이였다. 1층과는 달리 2층에 탔는데 여기서는 발 받침대도 있고 개인 모니터(영화나 어떤 프로그램을 볼 때...)도 있었다. 그래서 전혀 지겨움 없이 우리 나라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거기에서 아빠께서는 여수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헤어져야 했다. 우리는 울산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울산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리면서 재미있고도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감 한마디!
유럽 여행은 짧고도 긴 여행 같았다. 왜냐하면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3개국 여행을 끝냈기 때문이다. 본 것도 많고. . . 많이 힘이 들고, 괜히 왔나?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색다른 경험도 해 보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을 갈 때 필요한 준비물은 그 도시. 갈 곳의 지도가 필수 인 것같았다. 처음에 지도가 없어서 우리 가족은 꽤나 헤맸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리의 에펠탑은 제일 기억에 남는 장소이다. 왜냐하면 높아서 멋지다...라는 것보다는 좀 공포스럽다. 라는 느낌이 조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할 때는 갈 곳을 미리 공부를 해서 가는 것이 좋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현지에 가서 찾아갈 곳을 찾는 것보다는 미리 준비를 해서 하나라도 더 많이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영어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아빠의 유창한 영어 실력 덕분에 별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이처럼 나는 언어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영어 공부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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