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결백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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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경석 작성일02-06-15 12:24 조회9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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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묵특 선우의 잔인성
흉노족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기원후 1세기 말까지
몽고 고원과 만리장성 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유목 기마민족이다.
진(秦)시황이 통일국가 형성할 무렵,
흉노의 두만 선우가 몽고 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아들 묵특이
자기 부친을 죽이고 스스로 선우가 되었다.
아들 묵특은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자신이 왕(선우)가 되기 위하여, 부하들을 훈련시겼다.
그 훈련방법이 독특하였다.
그는 활솜씨가 뛰어난 99명의 궁수를 뽑아서 훈련을 시켰다.
그가 활을 들면 동시에 활을 들고 시위를 당기면
똑같은 방향으로 활을 쏘도록 끈임없이 훈련을 시켰다.
어느날, 그는 자기 부하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마당에서 꽃을 돌보고 있는 자신의 애첩을 향해서 갑자기
활을 겨눴다.
주위에 있던 부하들이 동시에 활을 겨누었고, 묵특이 애첩을
향해 화살을 당기자, 같이 활을 당겼다.
애첩은 고슴도치가 되어 죽고 말았다.
그런데, 부하 중 한명이 머뭇거리며 활을 쏘지 않은 것을 안
묵특은 그 부하를 명령불복종으로 죽여 버렸다.
이후부터 부하들은 종전과는 달리 무조건 충실하게 명령에 복종하게 되었다.
묵특이 가리키는 대상이 그 어떤 것이라도
거리낌 없이 주저함이 없이 따를 태세가 되었다.
그제서야 묵특은 부하들을 데리고 아버지 두만선우에게 갔다.
아들 묵특이 왕에게 화살을 겨누고 시위를 당기자마자
부하들도 모두 두만선우에게 화살을 날렸다.
묵특은 그렇게 아버지를 비정하게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선우가 되었다.
그런 무자비하고 비정한 선우에 의하여,
흉노족이 강성하게 되자,
진시황의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쌓다가 망하였고,
한나라는 흉노족을 정벌하느라고, 엉청난 국력을 낭비하였다.
여름 초원의 풀을 먹고
흉노 말이 살찌는 하늘 높은 가을이 되면,
흉노족이 처들어 오니 조심하여야 하다는 데서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도 생겨났다.
水至淸則無漁(수지청즉무어),
人至察則無徒(인지찰즉무도):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결백하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
후한 시대 초엽, 한서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동생에
반초(班超)라는 무장이 있었다.
반초는 2대 황제인 명제때 지금의 신강성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누란)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으로 4대 화제때인 기원후 AD 91년
지금의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에 설치되었던
서역도호부의 도호(총독)가 되어 정원후에 봉해졌다.
도호의 직책은 한나라의 도읍 낙양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복속을 맹세한 서역 50여 나라를 감독 사찰하여 이반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AD 102년 반초가 대과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반초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水淸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임상은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은 반초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 때인 AD 107년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이반하고 말았다.
따라서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다.
흉노족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기원후 1세기 말까지
몽고 고원과 만리장성 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유목 기마민족이다.
진(秦)시황이 통일국가 형성할 무렵,
흉노의 두만 선우가 몽고 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아들 묵특이
자기 부친을 죽이고 스스로 선우가 되었다.
아들 묵특은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자신이 왕(선우)가 되기 위하여, 부하들을 훈련시겼다.
그 훈련방법이 독특하였다.
그는 활솜씨가 뛰어난 99명의 궁수를 뽑아서 훈련을 시켰다.
그가 활을 들면 동시에 활을 들고 시위를 당기면
똑같은 방향으로 활을 쏘도록 끈임없이 훈련을 시켰다.
어느날, 그는 자기 부하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마당에서 꽃을 돌보고 있는 자신의 애첩을 향해서 갑자기
활을 겨눴다.
주위에 있던 부하들이 동시에 활을 겨누었고, 묵특이 애첩을
향해 화살을 당기자, 같이 활을 당겼다.
애첩은 고슴도치가 되어 죽고 말았다.
그런데, 부하 중 한명이 머뭇거리며 활을 쏘지 않은 것을 안
묵특은 그 부하를 명령불복종으로 죽여 버렸다.
이후부터 부하들은 종전과는 달리 무조건 충실하게 명령에 복종하게 되었다.
묵특이 가리키는 대상이 그 어떤 것이라도
거리낌 없이 주저함이 없이 따를 태세가 되었다.
그제서야 묵특은 부하들을 데리고 아버지 두만선우에게 갔다.
아들 묵특이 왕에게 화살을 겨누고 시위를 당기자마자
부하들도 모두 두만선우에게 화살을 날렸다.
묵특은 그렇게 아버지를 비정하게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선우가 되었다.
그런 무자비하고 비정한 선우에 의하여,
흉노족이 강성하게 되자,
진시황의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쌓다가 망하였고,
한나라는 흉노족을 정벌하느라고, 엉청난 국력을 낭비하였다.
여름 초원의 풀을 먹고
흉노 말이 살찌는 하늘 높은 가을이 되면,
흉노족이 처들어 오니 조심하여야 하다는 데서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도 생겨났다.
水至淸則無漁(수지청즉무어),
人至察則無徒(인지찰즉무도):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결백하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
후한 시대 초엽, 한서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동생에
반초(班超)라는 무장이 있었다.
반초는 2대 황제인 명제때 지금의 신강성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누란)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으로 4대 화제때인 기원후 AD 91년
지금의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에 설치되었던
서역도호부의 도호(총독)가 되어 정원후에 봉해졌다.
도호의 직책은 한나라의 도읍 낙양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복속을 맹세한 서역 50여 나라를 감독 사찰하여 이반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AD 102년 반초가 대과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반초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水淸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임상은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은 반초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 때인 AD 107년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이반하고 말았다.
따라서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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