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림이 우주에 서다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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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4-02-03 16:57 조회3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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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림이 우주에 서다 ( 3 )
안녕하십니까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입니다
맞춤 양복집에서 바지 길이를 잴 때 양팔을 올리는 자세로 두 팔을 들어
내 몸 앞뒤로 흔들어 대며 잠을 쫒는 자세로 긴 복도를 따라 모텔의 일 층
접수대 까지 걸어서 내려 나왔습니다
새벽 세 시.
모텔 전체는 너무 조용합니다
현관 입구의 가로등만 제 보초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밝혀져 있을 뿐,
접수대의 모텔 직원 책상 위에 널려 있던 서류들도 어제 그대로 널부러져 있고,
그 어디를 휘둘러보아도 만일의 침입자를 위한 예비 방범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 뉴질랜드 사람들은 정말로 순진하며,
우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 같습니다
어제 모텔 일 층에서 저녁 식사에 반주로 곁들여 마신 포도주 값을 계산하려
계산대 앞에 섰을 때도 그 점원은 방긋 웃으며 묻습니다.
몇 잔 드셨냐고...
그리고 마셨다고 생각하는 숫자만큼 돈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들고 가는 병 숫자를 바를 정자로 써가며 관찰한다던가,
딴 병마개를 따로 보관해 놓고 만일의 시비에 대비하는 따위의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보통 평범한 우리네 시골집처럼
문을 죄 열어 놓고 동네 마실 나간 한 여름 날 농촌의 빈집처럼
모텔 입구의 사무실은 그냥 무방비 그 자체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 사회, 저에게는 이곳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모텔 객실 입구의 문을 밀치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입구 가로등 밑에서 간단히 몸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머리 위의 야간 산악 등반용 헤드 랜턴을 오른 쪽으로 비틀어
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뜀 질을 시작하며 주차장 쪽을 빠져 나와
도로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남반구는 우리와 정반대의 계절이라 이곳은 한 여름이지만
새벽 세 시 지금의 날씨는 우리의 초가을처럼 쌀쌀했습니다
멕킨지 산장 모텔, Mackenzie Country Inn , 이라고 커다란 통나무를 허공에
걸쳐서 세워 놓은 모텔 이름 입구를 뛰어 나와 본격적인 도로에 접어들었습니다
도로는 이곳 뉴질랜드 남 섬을 길게 종단하는 일 번 국도라고 하던가요 ?
크리이스트 처치에서 우리의 땅 끝 마을에 해당하는 인버카길까지 이어지는
국도라고 하는데 겨우 왕복 2 차선 정도밖에는 안됩니다
중앙선도 우리처럼 분리대나 노란 야광선도 아니고 그저 흔적만 있는
하얀 실선으로 되어 있군요. 차량이 오는 맞은 편 방향의 차로를 뛰다가
하얀 중앙선 쪽으로 이동하여 그 중앙선을 밟으며 어둠 속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온 천지를 둘러보아도 캄캄함뿐이고
달려오는 차량은 그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굳이 차로를 정해 뛸 필요가 없었지요
설혹 차량이 온다해도 지평선 끝 그 불빛을 보고 나서 내 앞에 다가올 때까지는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족히 걸릴 것 같았습니다
머리의 랜턴을 중앙선 하얀 실선에 맞추어 비추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들고 있던 호신용 재크나이프가 거추장스러워 하얀 면 장갑 속에 넣었다가
다시 끄집어내어 오른 손에 힘들여 거머쥐었습니다
이렇게 약 2 Km 정도 나아갔다고 생각되어지는 순간,
그 때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뭔지 모를 지독히 차가운 불안감에 나의 뜀 질이 서서히 멈춰지기 시작했습니다
본능적인 공포심이 나를 에워싸고 나의 전진을 막았습니다
모텔의 가로등 불빛이 가물가물 나의 시야에서 막 살아지기 시작하는
약 2 km 정도 뛰어 왔을 때의 일입니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휘발유가 떨어져서 푸더덕 거리다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뽑아서 태우고
최후에 엔진 숨을 거두는 자동차처럼 서서히, 정말 서서히
저의 뜀 질은 멈추어졌습니다.
주위가 너무 어두웠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살인적인 공포심이 저를 붙들어 메었습니다
저의 머리에 둘러 멘 야간 산악 등반용 렌턴은 1.5 볼트짜리 건전지 두 개가
겨우 저장되어 있지만 이 지독한 어둠에는 오히려 독서라도 가능할 정도의
상대적 밝기로 저의 앞을 비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느끼는 이 어둠은 단순한 밝기와 어둡기 차원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본능적으로 감지한 공포를 수반한 원초적 어둠인 것 같습니다
오늘 낮 오후, 이곳 트와질로 다섯 시간 내내 달려오며 보았던
메마른 건조지대, 뉴질랜드 남 섬, 켄터베리 평원의 끝없이 펼쳐진 황야,
보이는 것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 주는 두 줄 전깃줄과 그걸 지탱해 주는 전봇대뿐 ,
도대체 무서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던 이 길이었는데.... .
오 ! 오 !
이곳 세상의 어둠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문자 그대로 칠흑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공포를 수반한 어둠이었습니다. 저는 불안감에, 공포심에 더 이상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 자리에 섰습니다.
마치 우주 공간의 한 가운데에 내 동댕이쳐진 것 같았습니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르 황, 어떻게 우리의 선조는 하늘이 검은 걸 알았을까요
지독한 공포심에 숨이 멎을 것 같아, 어둠이 뻗쳐나간 도로의 저 쪽 끝을 노려보았습니다
쥐고 있던 호신용 재크나이프를 다시 고쳐 잡았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다시 한번 더 둘러보며 심호흡을 해보았습니다
그래도 저의 공포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공포심에 멈춰 선 그 자리는 이제 더 큰 공포심을 유발시켰습니다
슬금슬금 뒤 돌아서서, 다시 모텔의 불 빛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머리 위의 랜턴 불빛은 뛰는 동작으로 앞, 뒤 좌, 우로 불안하게 흔들렸는데
그 불빛이 만들어내는 흔들거림이 저를 더 큰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아, 무엇이 그리 무서웠을까요 ?
미국의 아리조나나 멕시코 광야의 한 가운데 같은 이곳 캔터베리 평원 중간 휴게소,
황야를 어슬렁거리는 야생의 맹수 때문이었을까요 ?
메마른 건초 수풀 더미에 숨어 있다가 움직이는 물체에 벼락같이 기어 엉겨붙는
맹독의 방울뱀 때문일까요 ?
아니면 혹시나도 있을지 모를 이곳 외국 관광객을 노리는 떼강도일까요 ?
어이없는 매복 공격을 당해 부하 전체를 잃고 패주하는 장수처럼 허겁지겁
다시 모텔의 불빛이 보이는 지점까지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힘없이, 쳐진 어깨로 불빛 가로등이 있는 마을 큰길로만 뛰어야했습니다
뛰어도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저 길을 뛰어보려고 큰맘을 먹고 ,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온갖 장구를
다 갖추었는데, 그리고 이렇게 길을 나서 저만큼 까지 갔었는데,
어둠이, 어둠이 주는 공포가 저를 막아버렸습니다
저기 저 만큼에서 버티고 있는 어둠이....
저의 유 소년 시절 처음 맞닥뜨린 시골 동네 사진관 암실에서 보았던 그 어둠이...
도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마을 큰길을 몇 바퀴 돌다가 다시 도로로 나아가
또 다시 2 - 3 Km 를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뒤돌아 서서 뛰었습니다
모텔 입구 가로등 불빛 품속, 원점으로 다시 기어들어 왔습니다
그리곤 다시 동네 큰길을 돌면서 정신 무장을 시도해 보았으나
승산이 없었습니다. 이곳의 어둠은 태고적 정적과 천지 창조 이전의 그 어둠
바로 그 자체이었고, 세속에 길든 저는 그 무서움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맹수에 씹힌 저의 육신과 함께 " 한국 관광객 뉴질랜드에서 새벽 마라톤 중
맹수에게 공격당해 .. " 라는 타이틀의 국내 조간 신문이 자꾸만 연상되었습니다.
많이 아쉽고,
정말로 부족한 저의 용기에 참담했지만 뜻을 접었습니다
동네 길만 두 시간 여 달리고 나서 가만히 내 방으로 향했습니다
방문을 두드리니 졸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직도 새벽 다섯 시, 어둠은 걷히질 않았고요, 방문을 따주고는 아내는
곧바로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고 저는 샤워실로 들어갔습니다
샤워를 끝내고 저는 그냥 그대로 침대 끝에 걸터앉아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한참을 더 지나고, 커튼 사이로 환한 새벽 기운이 보이자 아내도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침대 끝에 푹 꺼진 푸대 자루처럼 걸터 앉아있는 저를 보더니 아내가 말합니다
" 왜 그러고 있어요 ? 새벽에 뛴다고 나가는 것 같더니...
벌써 갔다왔어요 ? 얼마나 뛰었어요 ? 몇 시 에요 , 지금 ?? "
저는 말합니다
" 뛰기는 뛰었는데, 내가 어제 뛰려고 한 그 호수까지는 못 뛰었어 !
바깥이 너무 캄캄해서 무서워서 못 뛰었어 .
이렇게 캄캄한 세상은 처음이야.. 어쩜 그렇게 밤이 캄캄할 수가 있는지...
이곳은 우리 나라 청학동 그믐날 밤보다 더 어두워..
저기 저 입구의 라다니아 소나무가 한 그루도 안 보였어...
그리고 무섭기는 또 오그라지게 무서웠어. 맹수도 무섭고.. 독충도 무섭고..
뱀도 나올 것 같았고.... 내 지금껏 살면서 이토록 지독한 어둠과 무서움은 처음이야
그리고 이처럼 맹수를 무섭게 느껴 보기도 처음이야 "
그러자 아내는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뒤퉁수를 한 대
얻어맞는 충격을 느꼈습니다. 어째서 저는 그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지금도
불가사의합니다 저도 익히 알고 있었던 상식이었는데 말입니다. 도시에 살면서
약을대로 약아진 전형적인 소시민 , 내 스스로의 못된 선입감 때문에 스스로 굴레를
짊어진 불쌍한 소시민. 왜 그런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못하고 스스로 무서움 속에서
혼자 끙끙대었는지 겁쟁이 저는, 지금도 아리송할 뿐입니다
" 얼레 ? 이 이 보아 ! 여기 뉴질랜드에는 맹수가 없다고 했잖아요 !
맹수가 없으니 새나 포유류도 도망 갈 필요가 없어서 비대해 지고
아, 그래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날지 못하는 새, 키위가 사는 곳도 이곳이고...
북 섬은 화산지대이니 땅속이 뜨거워 못 살고, 남 섬에는 낮 밤 일교차가
너무 커서 뱀이 못 사는 게 이곳이라 잖아요 !!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그래요 ?
그리고 이곳은 일년 내내 절도, 강도도 없다 쟎아요 !!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데요 ? 절대로 안 빼먹는 새벽 마라톤을 못 할 정도로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데요 ??? "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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