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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풍물에 빠진 뜀 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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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7-10-16 12:20 조회4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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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춘포, 박 복진입니다.

얼추 한 삼 십년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니, 제일 아쉽고 그립고 땡겨지는 게 우리 것입디다.
‘80 년 대 초던가요?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 귀국 비행기 기내의 VCR 무슨 프로그램에서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 녹화물을 처음 방영해 주는데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흐릅디다.
등에서는 짜르르르 전율이 일고요, 흐르는 눈물을 딲으려고 안경다리를 잡았지만 그 안경을 내 눈에서 뗄 수가 없습디다. 신발 팔러 댕기면서 이국에서 받은 설움이 그냥, 그냥 내
가슴 저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데, 정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디다. 내 옆에 앉아
있는 통로 쪽 코쟁이 할머니보고, 마담, 당신은 저 음악을 아시느냐고 묻는데 그냥, 그냥
콧물이 주르르 나와버립디다. 저것이... 저것이 어쩌자고 내 핏속에 들어와 지금까지
용케도 숨죽이고 살고 있었고나.. 저것이, 저 장단이.. 오메 환장하것는거...

작년,
세계 울트라 마라톤 연맹 100km 선수권대회가 경기도 하남, 미사리 조정 경기장에서 있었
습니다. 식전 행사의 한가지인 참가국들의 국기 행진이 대회 하루 전 잠실 올림픽 공원
평화의 광장 일원에서 있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제가 이 행사의 기획을 맡아 총괄하게
되었는데, 참가국 국기 행진 행사의 맨 앞에 길놀이격으로 우리의 풍물을 선정, 공연팀을
물색하다가 동네의 마을버스 정류장에 붙어있었던 풍물배우기 강습 안내 광고를 보고 그곳
을 찾아갔었습니다. 3 층짜리 단일 건물 지하에 있는 국악누리 라고 하는 곳, 계란 포장지
로 쓰이는 합지를 사방 벽과 천장에 빼곡히 붙이고, 노란 비닐 장판에 철부덕 앉아 장구를
두드리고 계시던 분들. 이 분들을 초청해서 국기 퍼레이드는 대성황으로 끝났습니다.
대회에 참가했던 40 여 개 국의 울트라 선수 임원들은 우리 가락의 흥에 어깨춤을 덩실,
덩실, 풍물패 주변에서 쭈삣대던 우리들을 무색하게 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이 분들
께 약속했습니다. 나도 배우고 싶어요. 진짜루다가 배우고 싶어요. 저도 가르쳐주세요.

그러나 등록을 미루고, 미루고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올 해 가을이 왔습니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여름의 태양이 구름 언저리에서 맥을 못 추던 지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이상하네요. 나이가 들어서인가요, 아니면 꼴에 가을을 타는 건가요?
그냥 허전하고, 무엇인가 빠진 것 같고, 괜시리 멍하니 맨 하늘을 바라보고...

그러던 어느 날 작심하고 책상을 뒤져 그 허름한 지하실에 있는 국악누리라는 풍물 교습소
전화번호를 찾아내서 당장 그리로 찾아갔습니다. 맘 변할 까봐 두 눈 감고 그냥 갔습니다.
지하실 불도 없는 좁은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서 두툼하게 합지로 차단된 출입문을 열자
쿵따 쿵따 쿵따 쿵! 따쿵궁따 쿵따 쿵! 요란한 장구소리가 내 온 몸을 확 덮어버렸습니다.
혹시나 들어왔다 다시 나가기나 할까봐 그러는지, 폭주족 오토바이를 덮치는 그물망처럼
요술같은 장구소리가 나를 단숨에 덮어버렸습니다. 나는 장구 가락 그물망에서 얼굴을
내밀어 수줍게 한 말씀드렸습니다. 저, 저...장구를 배우고 싶은데요.

그리고 오늘로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지나간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느냐고요? 장구와 살았습니다. 우리 가락에 미쳤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풍물 교습소를 나서며 집으로 향할 때, 조그만 가죽 가방에 지렁이 위
경련 해놓은 것 같은 장구 가락을 적은 노트를 들고 걸어갈 때, 나는 다시 태어났음을 느끼
었습니다. 왼손에는 궁채, 오른손에는 열채, 두 손은 걸으면서 연신 장단을 익히기에 바쁩니
다. 옛날에 사 놓고 좀처럼 듣지 않았던 휘모리, 오방진 등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다시
찾아 자동차 오디오에 꽂았습니다. 장구 가락을 익히려고 태평소나 가야금 연주 CD 를 사
내 귀를 열었습니다. 장구 한 벌 사서 여주 농막에 갖다놓고 주말 새벽에는 눈곱도 안 떼고
그리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종일 두둘겼습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곤지암 읍네
24 시간 김밥집에서 김밥 몇 줄 사가지고 농막에 쳐 박혀 장구를 두둘겼습니다. 이제사
장구 소리가 조금 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최소 석 달은 장구채 들고 쿵! 한 번 내려
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데, 이제서야 한 달이니 요원합니다만,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볼랍
니다. 친구들은 말합니다. 너 요즈음 장구치고 참 한가한 모양이구나!

그러나 나는 한가하지 않습니다.
내 사무실의 출근과 퇴근 시간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주말에 연습하는 장거리 마라톤,
빠뜨리지 않습니다. 매일하던 뜀질 시간 하나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합니다. 도시의 삶은
여전히 고단합니다. 달마다 쌓이는 청구서와 세금 고지서는 날 아주 질식 시키려듭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 해볼랍니다. 우리 풍물을 한 번 해볼랍니다. 그래서 빨강, 노랑, 하양,
풍물단복을 입고, 가능하면 상모를 돌리며 부포도 펄럭거려가면서 한 번 멋지게 풍물을
놀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해 볼랍니다. 그래서 외국에 출장을 가면, 상담을 하고나서
코쟁이 친구들에게 멋진 우리 가락을 한 번 선 보일랍니다. 아니, 식당 한 구석을 미리
예약해놓고 무대가 될 만한 단상 위에서 멋있게 한 번 해 볼랍니다. 공간이 좁으면 앉은반
공연, 무대가 크면 선반 공연을 해 보일랍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국내의 울트라 마라
톤 대회 현장에서 대회 시작 전 길굿도 한 번 멋지게 무료 봉사해 볼랍니다.

친애하는 선배, 고수, 마라톤 뜀 꾼 여러분,
우리 한 번 같이 풍물의 세계에 풍덩! 빠져봅시다. 풍물을 아시는 분 저 좀 가르쳐주세요.
풍물을 같이 배우실 분 연락 주세요. 왜냐면 풍물은 최소 4 분 이상이서 팀이 돼야 제격
이고 저 혼자는 안 되니까요. 아, 풍물, 풍물...
잡것! 다음 대회에는 한 번 열라 장구치면서 열라 뛰어볼까요??

춘포
박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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