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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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해균 작성일14-06-30 07:05 조회923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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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사대 문장가중 한 사람인 상촌(象村) 신흠(申欽)은 문밖을 나서 마음에 끌리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세가지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했다. 여름이야 말로 문밖을 나가 산수의 자연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즌이다.
인간이 자연과 거리가 멀어지면 가난하게 된다. 나는 내 피를 빨아 먹는 모기만 빼고 여름을 여유로운 계절이라고 부르고 싶다. 조선중기의 문신인 김정국(金正國)의 호는 팔여거사(八餘居士)즉 여덟 가지 여유를 누리는 사람 이다. 김정국의 호에 담긴 여덟 가지 여유를 살펴보면,
토란국과 보리밥은 배부르기에 넉넉하고
부들 자리와 따스한 온돌은 누워 자기에 넉넉하고
퐁퐁 솟는 맑은 샘물은 마시기에 넉넉하고
봄 꽃과 가을 달빛은 감상하기에 넉넉하고
서가에 가득한 책은 보기에 넉넉하고
새소리와 솔 바람소리는 듣기에 넉넉하고
눈 속의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는 향 맡기에 넉넉하고
이 일곱 가지 즐기기에 넉넉하다네
-팔여거사 자서(八餘居士自序) 중에서-
팔여거사 김정국이 꼽은 직접적인 여유의 요인은 일곱 가지 인데 그 중에 다섯 가지가 계절과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굳이 여름에 관련된 것을 헤아리면 세 가지쯤 된다.
내가 즐기는 여름 낭만은 이런 것이다. 우리 집(영동 3교 부근)에서 평일 오전 10시쯤 양재천을 따라 과천 쪽으로 걸으며 들꽃을 구경하고 운이 좋으면 양재천변 뽕나무 밑에 떨어진 까만 오디도 주워 먹으며 무지개 다리까지 올라간다(출발지점에서 약 3km지점). 거기서 숲이 울울창창한 양재 시민공원을 가로질러 화물터미널로 간다. 여기까지 걸어서 한 시간쯤 걸린다. 화물 터미널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림욕을 하면서 옥녀봉 까지 천천히 올라가는데 또 한 시간쯤 걸린다. 옥녀봉에서 기상이 늠름한 관악산을 조망하고 잠시 휴식한 후 진달래 능선을 거쳐 원터골까지 내려가는데 약 30분 남짓 소요된다. 이렇게 두 시간 반쯤 운동을 한 후 원터골 입구 식당에 12시 반쯤 도착한다. 그곳에서 보리밥과 쌈, 12가지 나물, 삼겹살 석쇠구이, 된장찌개로 구성된 석쇠구이 쌈 밥을 주문한 후 허리끈을 풀어 놓고 느긋하게 먹는다. 음식값은 만원이다. 만일 나물, 쌈, 된장찌개 만 먹으면 7000원이다. 돌아오는 길은 지하철 신분당선을 이용하여 시민의 숲 역에서 내린 후 양재시민의 숲을 거쳐 양재천 산책로를 따라 집으로 걸어오는데 약 30분 가량 걸린다. 일주일에 몇 번 가는 이 Picnic때 내가 먹는 토속 음식들은 한여름 일류 호텔에서 비싼 값에 제공하는 야외 바비큐 보다 훨씬 맛있고 경제적이며 덜 기름져 건강에도 좋다.
매일 같은 코스로 Picnic을 하면 실증이 나기 때문에 또 다른 세시간 짜리 조깅 프로그람을 개발 하였다. 우리 집 부근에 남부 수도 사업소가 있고 부근에 양재 천 도보교가 있다. 이 도보교 아래 양재천 산책로를 출발하여 탄천과 양재천 합류지점을 지나 한강고수부지 산책로를 따라 청담대교, 동호대교, 성수대교 를 거쳐 한남대교 까지 조깅 하는 코스이다. 양재천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강변으로 나가면 모타 보트에 매달려 물살을 가르며 질주하는 수상 스키어들이 보인다. 반대편에서 오는 동료 달림이 들과 격려 인사를 나누며 달리다 보면 몸은 벌써 한남대교 부근 수도 물 급수 대에 도달한다. 소요시간 약 한 시간 20분정도. 목을 축이고 한강공원 벤치에서 30분 정도 쉰 후 남부 수도 사업소까지 달려와 공용 음수 대에서 다시 수도 물을 마신다. 퐁퐁 솟는 맑은 샘물대신에 나는 음수 대에서 수도 물을 마시며 푸른 하늘을 쳐다 보는 여유를 즐긴다. 편리함 때문에 도시와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대자연의 품속에서 내 몸이 시키는 속도로 달린 후 목이 마른 상태에서 공용 음수 대에서 마시는 수도 물이 나에겐 팔여거사(八餘居士)가 말하는 퐁퐁 솟는 샘물이다. 약 세시간 가량 대지를 가르며 천하의 힘찬 기를 받은 후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면 기분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때만큼은 마치 신선이 속세로 파견 나와 임무를 마치고 승천을 기다리는 듯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
자연이 좋은 점은 사람들이 마음 내 킬 때 마다 아무리 자주 접촉해도 차별하거나 거부 하는 일이 없다.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이 말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세가지 즐거움 중에는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마음에 맞는 손님’이란 은연중에 차별을 내포하고 있다. 자연은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별을 하는 법이 없다. 내가 등산이나 달리기를 여름 낭만을 즐기는 여유로 내세우는 이유는 등산이나 달리기는 매우 자연 친화적이고 가난한 사람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이다. 비싼 돈 내고 회원으로 가입하여 헬스 클럽에 다닐 필요가 없다. 챙 넓은 모자, 운동화 한 켤레, 팬츠, 민 소매나 반소매 셔츠 한 벌이면 입장료 걱정하지 않고 무한정 개방된 대 자연으로 나가 친환경적이고 건전한 방법으로 여름을 즐길 수 있다.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나는 정말 싫어한다. 그러나 모기에게도 탐욕스런 인간들이 배울 점이 있다. D. H. Lawrence(1885-1930)의 The Mosquito Knows 라는 시를 살펴 보면:
The mosquito knows full well, small as he is he’s a beast of prey. But after all he only takes his
모기는 잘 알고 있다. 비록 작은 몸집이긴 하지만 자신이 맹수라는 사실을. 그렇지만 그는 자신
bellyful, he doesn’t put my blood in the bank.
의 배만 가득 채울 뿐 그는 내 피를 은행에 넣어 두지 않는다.
팔여거사 김정국이 즐기는 여유는 대부분 대가를 지불 하지 않아도 차별 없이 넉넉하게 제공하는 자연 속에서 얻은 무주물(無主物) 이다. 모든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은퇴한 후 전원생활로 돌아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주 만나는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 보면 설령 바깥양반이 전원생활을 원하더라도 편리한 도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결재권자인 안방 마님들은 좀처럼 도시를 떠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집안 식구와 분란을 일으키며 전원 생활을 고집하기 보다 도시에 살면서도 소비생활을 지양하고 물욕을 잠재우면 밝은 달이 뜨고 맑은 바람이 부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機息心淸 月到風來
욕심을 없애고 마음을 깨끗이 하면 달이 뜨고 바람도 불어온다.
-채근담-중에서
세익스피어는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라는 시로 그의 후원자였던 미남 귀족을 칭송하고 있다. 여름은 한국에서도 유유자적(悠悠自適)의 계절이다. 지구촌 곳곳에 이처럼 아름답고 유유자적한 계절 여름을 대자연과 물아 일치를 이루는 생활양식으로 아름답게 지내며 여유를 찾고 낭만을 즐기자.
계절의 수레바퀴는 쉴새 없이 굴러 지금 여름을 재촉하고 있다. 초여름의 유유자적을 느낄 수 있는 양만리(楊萬里)☜의 한시 한 수를 떠올리며 명상에 젖어 봅니다.
泉眼無聲惜細流,
아까운 듯 가늘고 소리 없이 솟아 나는 샘물
樹陰照水愛晴柔
물이 비친 나무 그늘엔 맑고 부드러운 바람이 좋구나
小荷才露尖尖角
어린 연 잎은 뾰족한 모서리를 드러내고
早有蜻蜓立上頭
잠자리가 일찌감치 그 위에 앉았네
☜양만리(1127-1206)는 길주 사람으로 남송때 시인. 범성대, 육유, 우무와 함께 남송 사대 시인으로 불린다. 시제 는 小池(작은 연못)이다.
부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멀리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여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나종남님의 댓글
나종남 작성일
여름을 즐기는 방법중 시골 원두막에서 자연을 벗삼아^^
수박&참외를 멋는맛 그 즐거움도^^
정해균 선생님 젏은이 못지않게 잘 뛰시는 모습 존경 스럽습니다.
더구나 여름을 즐기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정해균님의 댓글
정해균 작성일
나종남 인형,
오랫만입니다. 도심에 원두막은 없지만
양재천변에 돗자리하나 깔아 놓고 원추리 꽃을 벗삼아 막걸리 한잔 마시면
일여거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사는 동네 부근으로 오실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이번 여름이 가기전에 함께 일여거사가 되여 봅시다.
늘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박임순님의 댓글
박임순 작성일
와우!
어쩜 이리도 유식하신지요? 서울마라톤은 달리기모임인줄 알았더니, 각분야마다 조예가 깊은 분들이 많으시니 참 놀랍습니다.
팔여거사의 항목을 읽어보니 제게도 죄다 해당이 되니, 무척 여유를 엳은 것 같아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입니다.
언제나 선생님들의 가르침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인호님의 댓글
황인호 작성일
도시에서 전원생활 멋을 즐기는
정해균 선생님이야말로
팔여거사 보다 윗길입니다...
정해균 선생님과 2;10대열에서 달린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해균님의 댓글
정해균 작성일
박임순씨, 황인호씨
내것과 네것을 구분하지 않고 편애 함이 없는 대자연의 섭리속에서 정서적인 풍요로음과 더불어 사는 실마리를
찾아 보려고 시도한 글입니다. 바쁘신 가운데도 부족한 글을 읽고 공감을 표시하신 두분께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