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과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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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번석 작성일14-03-17 12:37 조회967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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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년 3월이면 경주를 찾았었다. 경주동아마라톤을 달린 것이다. 동아마라톤이 2000년 이전에 서울에서 경주를 오가며 드는 시간 소요되는 교통비와 숙박비, 식대비를 포함하면 비용이 만만찮았다. 그러다 2000년부터 서울로 대회를 옮기면서 광부가 금이 꽤 많이 들어 있는 광맥을 "먹을알"이라고 하듯이 청계천 주로옆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급물살을 타던 혈류의 요동이 졸졸졸흐르는 흥얼거림처럼 안온함으로 다가오며 주자들은 "먹을알"이 깔린듯 신이 난다. 경주로부터의 "쪽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주보다 쌀쌀한 날씨에 겉옷을 벗고 간소한 차림의 출발선의 주자들은 추위를 견디어내려는 몸안의 생리적인 현상으로 오줌보가 채워지자 누구라고 할것도없이 우루루 광화문 돌담가로 몰려가 C~8자를 그린다. 10메타에 한사람씩 경찰관이 서 있어도 그 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 들은 소피를 보고 하나같이 흔들지 않았다. 흔들고 "피박"쓸일이 뭐 있겠는가
대회를 달리기위한 준비과정으로 중랑천둔치를 수 없이 달렸다. 군자교(25km)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느덧 강변 둔치가 푸릇푸릇하다. 겨울동안 호호하하대며 뽀얀 입김으로 군불을 지피면 등따습고, 온 몸의 훈기로 집의 냉구들 방바닥보다 더 따스한 주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 강변에서 연습하는 과정에서 주력(走力)을 향상시키고 몸맨두리를 잘 만들 수 있었으므로 지금 포기한다 해도 "중박"은 될 수 있다는 느낌으로 간다.
27km부터 32km까지 성수동 집을 끼고 돌아간다. 송정동뚝방을 연습 주로로 달리면서 동아대횟날 뚝방아래 주로를 어떻게 달릴것인가가 수없이 뇌리를 스치곤 했다. 그것은 어쪄면 혹자들에 비하며 행복한 고민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마라톤을 하지 않고 일요일이면 늦잠에서 깨어 하루중 유일한 운동으로 방바닥을 나 뒹굴며 이리저리 뒹굴다가 엄지발가락 운동으로 리모콘을 꾹 눌러 티이브이를 본다면 그것은 시쳇말로"쪽박"일 것이다.
33km지점에서 10km주자들과 만난다. 그 젊은 주자들과의 합세는 반상(班常)에 얽매이지 않았고, 규범에 갇혀있지 않았다. 길은 그 길을 가는 사람의 "몫"이라 하듯이 청년도 가고 중장년도 가야 한다. 청년과 중장년이 항상적으로 조우할 수 있는 멍석이라야 한다. 내적인 갈망에 따라 달려야 한다. 내적인 욕망에 주의를 기울이며 젊은이들도 달리기 즉 마라톤을 즐길 수 있도록 마스터즈 주자들이 이끌고 품에 안아야 한다. 행여 서울에서 평양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 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40km를 지난다. 운동장 둥근아취가 빤히 보이자 다 왔다는 안도감에 달리고 싶은 의욕이 잠실벌의 들풀처럽 번졌다. 조각난 반상을 달려 두손을 추켜들며 훼니쉬라인을 밟는다. 요즈음의 화두는 "통일은 대박"이다. 라고 흔히들 말한다. 동마를 달리면서 잠실대교위 1.3km통과하며 저발치 내려다보이는 강물에 긴 낚시줄로 낚시꾼이 아스팔트위에서 월척을 하는 희열을 손 맛이 아닌 쿵쾅쿵쾅하는 발 맛으로 느꼈다.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구간으로 "대박"의 예감을 잠실대교에서 느꼈다.
통일이 될 려면 남,북이 잠실대교를 건너듯 오가야 한다. 서울에서 평양을 향해 달리고, 평양에서 서울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대회를 격 년 제로 개최하여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고 뛰어 넘어 아무런 조건과 스스럼없이 그 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달려야한다. 남 북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수단이다. 대횟날 서울시장후보들이 여러명 나와 단상 높은 곳에 설 줄 만 알았지 남,북이 함께 달릴 수 있게 만들것입니다. 여러분! 라는 멘토가 없었다. 그곳 광화문광장에 선 주자들의 한결같은 바램 통일로를 따라 달려 DMZ를 넘어 평양으로 달리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겠죠. 그 바램이 이루어 질 때 "마라톤은 대박"이여 "통일은 대박"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1995 ~ 2014년)
경주보다 쌀쌀한 날씨에 겉옷을 벗고 간소한 차림의 출발선의 주자들은 추위를 견디어내려는 몸안의 생리적인 현상으로 오줌보가 채워지자 누구라고 할것도없이 우루루 광화문 돌담가로 몰려가 C~8자를 그린다. 10메타에 한사람씩 경찰관이 서 있어도 그 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 들은 소피를 보고 하나같이 흔들지 않았다. 흔들고 "피박"쓸일이 뭐 있겠는가
대회를 달리기위한 준비과정으로 중랑천둔치를 수 없이 달렸다. 군자교(25km)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느덧 강변 둔치가 푸릇푸릇하다. 겨울동안 호호하하대며 뽀얀 입김으로 군불을 지피면 등따습고, 온 몸의 훈기로 집의 냉구들 방바닥보다 더 따스한 주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 강변에서 연습하는 과정에서 주력(走力)을 향상시키고 몸맨두리를 잘 만들 수 있었으므로 지금 포기한다 해도 "중박"은 될 수 있다는 느낌으로 간다.
27km부터 32km까지 성수동 집을 끼고 돌아간다. 송정동뚝방을 연습 주로로 달리면서 동아대횟날 뚝방아래 주로를 어떻게 달릴것인가가 수없이 뇌리를 스치곤 했다. 그것은 어쪄면 혹자들에 비하며 행복한 고민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마라톤을 하지 않고 일요일이면 늦잠에서 깨어 하루중 유일한 운동으로 방바닥을 나 뒹굴며 이리저리 뒹굴다가 엄지발가락 운동으로 리모콘을 꾹 눌러 티이브이를 본다면 그것은 시쳇말로"쪽박"일 것이다.
33km지점에서 10km주자들과 만난다. 그 젊은 주자들과의 합세는 반상(班常)에 얽매이지 않았고, 규범에 갇혀있지 않았다. 길은 그 길을 가는 사람의 "몫"이라 하듯이 청년도 가고 중장년도 가야 한다. 청년과 중장년이 항상적으로 조우할 수 있는 멍석이라야 한다. 내적인 갈망에 따라 달려야 한다. 내적인 욕망에 주의를 기울이며 젊은이들도 달리기 즉 마라톤을 즐길 수 있도록 마스터즈 주자들이 이끌고 품에 안아야 한다. 행여 서울에서 평양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 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40km를 지난다. 운동장 둥근아취가 빤히 보이자 다 왔다는 안도감에 달리고 싶은 의욕이 잠실벌의 들풀처럽 번졌다. 조각난 반상을 달려 두손을 추켜들며 훼니쉬라인을 밟는다. 요즈음의 화두는 "통일은 대박"이다. 라고 흔히들 말한다. 동마를 달리면서 잠실대교위 1.3km통과하며 저발치 내려다보이는 강물에 긴 낚시줄로 낚시꾼이 아스팔트위에서 월척을 하는 희열을 손 맛이 아닌 쿵쾅쿵쾅하는 발 맛으로 느꼈다.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구간으로 "대박"의 예감을 잠실대교에서 느꼈다.
통일이 될 려면 남,북이 잠실대교를 건너듯 오가야 한다. 서울에서 평양을 향해 달리고, 평양에서 서울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대회를 격 년 제로 개최하여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고 뛰어 넘어 아무런 조건과 스스럼없이 그 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달려야한다. 남 북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수단이다. 대횟날 서울시장후보들이 여러명 나와 단상 높은 곳에 설 줄 만 알았지 남,북이 함께 달릴 수 있게 만들것입니다. 여러분! 라는 멘토가 없었다. 그곳 광화문광장에 선 주자들의 한결같은 바램 통일로를 따라 달려 DMZ를 넘어 평양으로 달리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겠죠. 그 바램이 이루어 질 때 "마라톤은 대박"이여 "통일은 대박"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1995 ~ 2014년)
추천 1
댓글목록
정연욱님의 댓글
정연욱 작성일
강자문위원님,
1995년부터 2014년까지의 동마 출전 20주년을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달리기와 함께 내내 건강 유지하시고, 행복한 삶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강번석님의 댓글
강번석 작성일
정연욱님 반갑습니다.
격려에 감사합니다. 대회를 달리며 봄을 활짝연 활기찬 그 느낌으로 봄을 맞이 하서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