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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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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13-12-11 16:23 조회93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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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는 이른 새벽 눈뜨기 직전, 의식이 돌아온 그 순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만 귀를 기울여 또 하루가 밝아오는 침실의 창문,
커튼 바깥세상을 궁금해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새 같은 겨울 날, 두툼한 이불의 무게가 내 온 몸에 주는 안락함을
좋아하며, 이불을 살며시 걷고, 맨 다리를 침대 아래 방 바닥에 착지
시킬 때의 그 첫 느낌을 좋아합니다.  간밤의 수면 중 무의식에서,
이제 살아야하는 오늘 하루, 의식 세계로의 귀환을 좋아합니다.

나는 우리 집 커튼의 달팽이 무늬와 그 색깔을 좋아합니다. 이
커튼을 장만 할 때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상가 커튼 집에서 만났던
대구 섬유 공장 사모님의 탁월하신 미적 센스를 좋아합니다.

앉아있었던 팔걸이의자에, 꽉 찬 밀가루 푸대가 구겨져 들어간 것
같은 뚱뚱한 하체를 가진 그 거대 몸집에서 어떻게 그렇게 섬세한
감각이  내재되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 사모님의 센스가
담긴 작품, 우리 집 커튼의 무늬와 색의 배분을 좋아합니다.

나는 그 커튼을 열어젖히는 순간, 커튼을 매달고 있는 가는
플라스틱 바퀴가 알루미늄 홈을 타고 또르르 굴러가는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합니다.  이 소리는 남해의 거제도 홍포에서 들었던
둥그런 자갈, 몽돌의 소리와 비슷해서 좋아합니다.

나는 열어젖힌 커튼 바깥세상에서 갑자기 밀려들어오는 새벽의
희뿌연 밝음을 좋아합니다. 이 희뿌연함이 매 초 매 분 점점
밝아지면서, 사물의 형체가 내 두 눈 속에 하나 둘 자리하는 하루의
시작, 새벽의 그 순간을 좋아합니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고 새벽 뜀질을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 때 욱 ! 하고 오래 기다렸다는 듯 내 얼굴에 푹 안기는 새벽의
공기를 좋아합니다. 운동화를 신어 끈을 조이고, 발바닥이 신발
안창에 잘 안착되었는지 확인하려 발을 나무 데크에 탁! 탁! 내려쳐
보일 때, 지면과 떨어져있는 그 나무 데크가 만들어 내는 둔탁한 울림
소리도 좋아합니다.

그 소리를 신호로, 나랑 같이 새벽 달리기 나가려고 몸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뒷다리를 허공에 대고 몸풀기 동작을 취하는 눈치 빠른
우리 집 개의 영리함도좋아합니다.

나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길 좋아합니다. 어떤 큰
일로 마음이 안정되지 못 할 때 나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거나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끄집어내길 좋아합니다.
그럴 시간이 없거나 그럴 심적 여유가 없을 때는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곤 합니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용수철 튕김 같은 즉흥적 반응보다는
이렇게 반걸음 뒤로 물러서서 잠깐의 시간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길 좋아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이곳 시골 양평 땅에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하며 생긴 것들인데, 나는 이렇게 느린 생각이 가능한 시골
생활을 좋아합니다.

춘포
박복진
( faab  마라톤화 대표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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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풀뿌리달리미님의 댓글

풀뿌리달리미 작성일

짝짝짝!
아주 멋진 수필한 편, 잘 읽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밝으실까요! 우울증에 고통받는 분과는 차암 반대의 정서가 무척 부럽습니다.
추천 꾸욱, 눌러드리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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