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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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번석 작성일13-06-26 06:31 조회1,122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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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본래 놀이하는 지체를 즐긴다. 우리가 마라톤대회에 나가고 프로야구와 같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런 활동들이 놀이를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는 묘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마알간 소주를 탁 털어넣고, 속살을 안주삼았다. 술마시고 노래하며 방바닥을 나 뒹굴며 배를 깔고 엄지발가락으로 티이브이 리모콘을 꾹 누루면 아내의 단도직입적인 말이 귀지를 후빈다.
"놀고 있네!"
라는 말이 귓바퀴를 맴 돌았다. 머리에 충격이라는 주파수를 띄운다. 느닷없이 충격이라는 주파수에 맞춰진 내머리 속이 전기방전을 하며 혼선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힘주었던 엄지발가락을 숙연히 누루며 다짐박았다. 엄지발가락을 밖에서 땅을 박차고 뛰며 "공중부양하는데 사용하자고" 말이다.
아주 간편한 복장을 하고, 사뿐하고 쿠숀이 좋은 신을 신고 강변을 향한다. 동부간선도로가 지나가는 도끼굴을 지나야 한다. 터널안을 지나면서 쿵닥쿵닥 심장 뛰듯 들리는 러닝화의 쿵짝쿵짝 4분의 4박자 소리가 갖힌 공간에 공명되어 귀전을 맴도는 귀의 즐거움을 느낀다.
중랑천 생태공원의 강아지풀이 고개숙여 까딱까딱 인사를 나누고, 청계천의 너풀대는 초록색 풀잎은 바람결따라 휘어지며 일어서는 둥근곡선의 유연함을 장단지에 꿰맨다. 한강의 시원한 바람이 실크처럼 몸을 감싸고 땀을 말린다. 강변에 들어서면 여러가지 감각들로부터 관습적 상투적인 몫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달리기 세계에 던지는 시선의 진정한 변신이 가능하도록 하게 한다. 집에서 몇 발치만 벗어나면 나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해 준다.
그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청소해주고 내게보다 크게 생각할 수 있는 대담성을 부여해주고 존재들의 광대함속에 나를 던져넣어 내 기분 내키는대로 거리낌없이 그것들을 조합하고 선택하고 내것으로 만들수 있게 해준다. 또한 강물을 가리켜 "흐르는 것이 저와 같도다" 라고 한 공자님 말씀처럼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강물에 비유해왔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일까 라고 묻는다. 어느 심리학자는 이 질문에 대한 인생을 강변(江邊)따라 달리기에 비유하는 답을 내놓았다.
철 없이 한창 팔팔한 나이엔 누구나 천천히 흐르는 강물보다 더 빨리 달리며 깔깔거린다. 하지만 숱한 세월의 이슬에 젖어 머리가 하얘지면 강물보다 더 빨리 뛰기 힘드니,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렇듯 강물이 덧없는 세월의 진행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곳은 중랑천과 청계천이 한류와 난류가 교류하는 꼭지점처럼 만나서 한강으로 흘러가 합류하며 유속이 빠르지 않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데는 시계가 필요없다. 과천 혹서기대회가 그러하다. 손목시계의 시침(時針)이 날카로웁지 않다. 둔탁한 발놀림도 열정이라는 칩이 알을 부화하듯 알을 깨고 새생명과도 같은 완주메달을 잉태해 준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주는 혜택을 이용하는 것이다" 라고 충고한다. 앞만 보고 달리기가 미덕이지만 강물도 때로는 유속에 변화를 주듯 무제한의 완주시간을 되새겨 본다.
강변을 물결따라 달리는 것은 나의 삶과 계속 한몸을 이루고 사계절 변화하는 강변의 사물들과 육체적 접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흡족하다. 정신적 시련의 통과는 달리기라는 육체적 시련 속에서 효과적인 해독제를 발견한다.
주로와 나란히하는 강변북로를 질주하는 차량행열은 몸을 실어나르는 수많은 보조장치들의 문명의 혜택을 본다. 그 결과 몸은 정작 "삶"으로부터 소외되는 경향을 보인다. 티이브이 리모콘을 누루던 발로 강변을 달리며 즐길 수 있는 "놂"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게임이여,유희(遊戱)며, 놀이 이다. 잘 노는 것은 몸에 적당한 자극을 주며, 스트레스를 엄지발가락으로 떨구며 달리는 것으로 "놂은 삶"이라 할 수 있겠죠. 응원에 힘입어 땀을 떨구며 달리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지금도 말 할수 있을까 "놀고있네"
"놀고 있네!"
라는 말이 귓바퀴를 맴 돌았다. 머리에 충격이라는 주파수를 띄운다. 느닷없이 충격이라는 주파수에 맞춰진 내머리 속이 전기방전을 하며 혼선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힘주었던 엄지발가락을 숙연히 누루며 다짐박았다. 엄지발가락을 밖에서 땅을 박차고 뛰며 "공중부양하는데 사용하자고" 말이다.
아주 간편한 복장을 하고, 사뿐하고 쿠숀이 좋은 신을 신고 강변을 향한다. 동부간선도로가 지나가는 도끼굴을 지나야 한다. 터널안을 지나면서 쿵닥쿵닥 심장 뛰듯 들리는 러닝화의 쿵짝쿵짝 4분의 4박자 소리가 갖힌 공간에 공명되어 귀전을 맴도는 귀의 즐거움을 느낀다.
중랑천 생태공원의 강아지풀이 고개숙여 까딱까딱 인사를 나누고, 청계천의 너풀대는 초록색 풀잎은 바람결따라 휘어지며 일어서는 둥근곡선의 유연함을 장단지에 꿰맨다. 한강의 시원한 바람이 실크처럼 몸을 감싸고 땀을 말린다. 강변에 들어서면 여러가지 감각들로부터 관습적 상투적인 몫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달리기 세계에 던지는 시선의 진정한 변신이 가능하도록 하게 한다. 집에서 몇 발치만 벗어나면 나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해 준다.
그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청소해주고 내게보다 크게 생각할 수 있는 대담성을 부여해주고 존재들의 광대함속에 나를 던져넣어 내 기분 내키는대로 거리낌없이 그것들을 조합하고 선택하고 내것으로 만들수 있게 해준다. 또한 강물을 가리켜 "흐르는 것이 저와 같도다" 라고 한 공자님 말씀처럼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강물에 비유해왔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일까 라고 묻는다. 어느 심리학자는 이 질문에 대한 인생을 강변(江邊)따라 달리기에 비유하는 답을 내놓았다.
철 없이 한창 팔팔한 나이엔 누구나 천천히 흐르는 강물보다 더 빨리 달리며 깔깔거린다. 하지만 숱한 세월의 이슬에 젖어 머리가 하얘지면 강물보다 더 빨리 뛰기 힘드니,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렇듯 강물이 덧없는 세월의 진행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곳은 중랑천과 청계천이 한류와 난류가 교류하는 꼭지점처럼 만나서 한강으로 흘러가 합류하며 유속이 빠르지 않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데는 시계가 필요없다. 과천 혹서기대회가 그러하다. 손목시계의 시침(時針)이 날카로웁지 않다. 둔탁한 발놀림도 열정이라는 칩이 알을 부화하듯 알을 깨고 새생명과도 같은 완주메달을 잉태해 준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주는 혜택을 이용하는 것이다" 라고 충고한다. 앞만 보고 달리기가 미덕이지만 강물도 때로는 유속에 변화를 주듯 무제한의 완주시간을 되새겨 본다.
강변을 물결따라 달리는 것은 나의 삶과 계속 한몸을 이루고 사계절 변화하는 강변의 사물들과 육체적 접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흡족하다. 정신적 시련의 통과는 달리기라는 육체적 시련 속에서 효과적인 해독제를 발견한다.
주로와 나란히하는 강변북로를 질주하는 차량행열은 몸을 실어나르는 수많은 보조장치들의 문명의 혜택을 본다. 그 결과 몸은 정작 "삶"으로부터 소외되는 경향을 보인다. 티이브이 리모콘을 누루던 발로 강변을 달리며 즐길 수 있는 "놂"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게임이여,유희(遊戱)며, 놀이 이다. 잘 노는 것은 몸에 적당한 자극을 주며, 스트레스를 엄지발가락으로 떨구며 달리는 것으로 "놂은 삶"이라 할 수 있겠죠. 응원에 힘입어 땀을 떨구며 달리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지금도 말 할수 있을까 "놀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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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장호님의 댓글
이장호 작성일
이제 시작입니다.
마라톤이라는 끈으로 만난 男女老少 모두가
청계산 자락의 그늘에서 한 바탕 질펀하게
하루 잘 노실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