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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욕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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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14-12-27 07:35 조회5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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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서                                   

 한 평 남짓 욕실 안에서, 가슴과 복부를 지나 두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비누거품을
봅니다.  박박 문질러대는 머리 위에서 생성된 하얀 비누거품이 요상한 형태로 눈두덩이
와 콧잔등 그리고 턱밑에 아무렇게나 매달려 있다가 쏟아지는 샤워 물방울에 밀리고
밀려 자꾸만 내 몸의 아래로 두 다리를 타고서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어제 눈이 많이 오고 나서 오늘 새벽은 더 추워졌습니다. 인색한 태양을 바라보고
벌러덩 드러누워 제 살 좀 녹여 달라 사정했지만, 짧은 겨울 해에 다시 추운 밤을 맞아
움푹 움푹 호랑가시나무 잎사귀처럼 얼음 되어 버린 남한강변 위의 눈. 사각 사각 뿌지직
뿌직! 눈 시체를 밟으며 조심조심 달려서 16km를 채우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추운 바깥
온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따뜻해진 욕실 안에 뿌연 김이 서려, 신문지 왼장 만 한 벽
거울이 벽 타일과 구분이 어렵게 하얘졌습니다. 거품 내던 한 손을 떼어내어 거울을 한
번 쓰윽 문지르니 방금 전 새벽 운동을 하고 들어 온 나의 나신이 깨져 있는 것 같은
거울 속에서 어렵게 나와 눈 마주침을 하고 있습니다. 목을 타고 흘러내리던 비누 거품이
짐짓 조금 더 어그적 거리다가 다시 주르르 내려가 허벅지와 무릎 팍 사이에 있습니다.
그 거품들이 더 밑으로 내려가니 허벅지와 무릎 사이의 낮과 밤 경계가 드러났습니다.
저는 이 경계선 내력을 압니다. 날 더웠던 올 해 여러 달, 쪼임 바지를 입고서 매일
뛰어대고 들어와 그 쪼임 바지를 벗고 이 욕실에 들어오면, 태양빛을 받은 아래와 받지
않은 위 허벅지, 엉덩이의 경계가 허벅지 아래의 다리 사이에 선명하니 나 있습니다.
태양의 음지와 양지 경계의 생성입니다.

지난 한 해 여름, 나의 달리기 외출은 화려했습니다. 태양쯤은 눈앞에서 알짱거리지도
못했습니다. 비는 나를 겁내 내 몸 밖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바람은 아예 나에게 깊이
안겨 항복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여름의 신에게 내 모든 것을 다 드러냈습니다.  
쪼임 바지 안의 허벅지와 국부만을 남기고 내 벌거벗은 나신 모든 것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면 태양은 나에게, 내 허벅지와 무릎팍 사이의 분명한 경계선을 그어줌으로써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여름이 가고 겨울을 맞으니 달림이의 훈장이라 일컫는 그 쪼임 바지 경계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화려했던 지난 여름의 달리기 추억이 다 지워져 갑니다. 있었던 쪼임
바지선의 그 자리, 태양이 점령하지 못한 그 표식이 부끄러웠나, 나 잠든 사이 태양은
그걸 몰래 감아쥐고 다른 데로 가져갔나봅니다. 내 년 봄, 긴 바지 아래로 내려갔던
태양이 다시 위로 치고 올라와 내 긴 트레이닝 바지를 벗겨낼 때 다시 오마! 하고 나갔나
봅니다. 희미해진 태양의 경계선 그곳에 비누 거품 한 무더기가 다시 걸려 뭉그적거리며
내려가길 주저합니다.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내는 달림이의 세월이 아쉬운 양, 거품은
잠시 더 미적거리며 그곳에 붙어 한 번 더 내 눈길을 원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금년
마지막 달, 마지막 주에  달림이의 달리기에 대한 단상을 청하며 조금은 더 오래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춘포

박복진
( faab  마라톤화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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