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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의 道(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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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번석 작성일14-12-30 05:00 조회58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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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완주한 러너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이 화장실에 있는 "거울"이라 일컫는다. 자기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게 완주하느라 고생했어 라는 한마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완주하면 세상이 달라보이고 거듭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하는 이야기는 두 가지로 부류할 수 있다. 자기 이야기를 하던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로 두 부류이다. 건강한 달리기와 건강하지 않은 달리기이다. 자신의 몸에 항상 귀기울이며 적당한 맞춤운동은 건강한 달리기이고, 남이 보라는듯 뜀욕이 과하여 부상을 달고 사는 과시욕이 심하면 후자이다.

나 보통사람은 자기를 알아차리기 가장 좋은 순간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 내면에서 격한 감정이 올라올 때이다. 우리는 내면을 보지 않고 내면을 회피하면서 타인과 상황을 탓하고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낸다. 화가 치밀면 가슴을 치며 내면을 잠재우기도 한다.

또 한 인간은 선 악이란 두 가지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양면성(兩面性)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나 스스로가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 결정돼 있는 게 아니라 선택과 결정의 순간마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선과 악이 충돌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마련이다. 더욱이 그렇게 선과 악이 충돌한 결과는 100 : 1이 아니라 51 : 49인 경우가 더 많다. 간발의 차이로 때로는 옳은 일을 하고 때로는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판단과 선택을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단언컨데 달리기는 자아를 내려놓고 때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실패를 통해 러너는 성찰한다. 자기 성찰로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며 추스르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러너는 최소한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마라톤은 체력이 바닥날수록 영혼이 육신을 홀대(忽待)한다. 끝까지 가겠다는 완주정신이 있어 육신을 더욱 홀대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달리는 동안 나 스스로를 비우고 내려놓으며 영혼과 육신이 조화롭게 타협한다. 홀대에 익숙해진다. "남이 나를 홀대한다 해서 내가 남을 홀대할 자격을 가진 건 아니라는" 말을 피끗피끗한 장단지에 꿰찬다. 남을 시기하거나, 배척하려는 마음은 호호하하대며 뽀얀 입김을 내뿜으며 달리면 대자연이란 이름의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여 희석되듯 사뭇없다. 나 스스로를 바닥까지 내려놓은 터라 최소한 남을 홀대하지 않으려는 심상(心相)이다.

인생을 가장 크게 결정하는 요소는 성명도 사주(四柱)도 관상도 아닌  심상(心相)이라고 역술가들은 말한다. 내가 배운 교양과 지식일 때도 있고, 때로는 종교나 사회적 규율과 시스템이다. 사회생활과 연관선에 있는 마라톤은 선을 따라 달리며 률을 지키고 빈 주로에 빈 손이다. 돈이 없고 능력이 없어도 한해를 마감하는 빈 해가 될지라도 그럭저럭 유쾌하게 살아가는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내가 나를 홀대하는 과정에서 절제를 배우고, 연습한 만큼의 노력의 댓가는 기록이 말해주는 겸손함의 극치(極値)로 겸양하며, 먼 길 광활한 대지처럼 관용할 수 있다. 응원을 보내는 이들로부터 배려를 느낀다. 이러한 구실로 나는 남을 최소한 홀대(忽待)하지 않겠다고 다짐 박는다. 그 다짐이 호호하하대는 뽀얀 입김처럼 하얀 구름속으로 사뭇없어도 괜찮다. 나를 조금씩 길들이며 수양할 수 있는 "러너의 道"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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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혜준님의 댓글

이혜준 작성일

잘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강번석님의 댓글

강번석 작성일

이혜준님!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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