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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저를 기억하시는 분! 도와 주십시요. 저는 박신석(해시계 였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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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신석 작성일14-08-21 17:16 조회1,523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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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싶고 살고싶습니다.
밤새 잠못 이루다 제 기억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서울마라톤클럽에 용기를 내어 저를 찿기로 했습니다.
 
자꾸 오타도 나고 컴퓨터도 오래돼서 문장작성이 오래걸리네요.
 
20여년전 저는 골치가 아픈 일을 겪으면 '신경과민'이다. 그렇게 견디다 정 견디기 힘들면 약국에서 진정제나 수면제를 사먹고는 했습니다.
 
먼저 인사가 늦었네요. 박영석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신선생(건축하시는 분이셨는 데 지금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김선생닌(?) 혹서기마라톤을 주관하시던 분도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가셨던 김윤회 선생님도 계셨지요.
제가 마라톤을 하면서 처음 만나셨던 분들, 친절하셨던 분들이 이 밤에 제일먼저 기억나는 것은 어쩌면 제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참, 조선일보마라톤대회를 이끄시던 주?선생닌, 또 섬진강마라톤대회도 기회가되면 해보시자시던 채? 부장닌, 선주성 기자님. 또 이름만 또 오르면 눈물이 쏟아지는 경상대 전차수 교수님. 아마 제가 정년퇴직하고 제일마지막으로 저를 찾아 대전까지 와주셨는 데 집으로 모시지도 못하고 밖에서 맛있는 장어덥밥에 아욱국을 사주시며 걱정스런 모습으로 돌아가셧던 모습도 이 새벽 선명이 떠오르네요.
 
제가 달리기를 시작했던 시기기 저희 집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했던 1996년 전년도 수능시험이 끝나고 부터였으니 시작은 이른 편인셈이지요.
 
이 새벽에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이 게시판에 글을 적는 것은 다시 살고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인 것 같습니다.
 
저는 1993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더군요. 그 당시는 정신과를 드나드는 것은 미친 사람들이 들나드는 생각으로 겨우 아내만 알고 직장에도 숨기고 주위에도 물론 친척에도 숨기고 도독질하듯 일주일에 버스를 타도 두번씩 정신과 개인병원(집에서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개인병원을 드나들었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잠을 못자는 것 때문인데 약을 먹으면 직장사무실에 문을 닫고 책상에 엎드려 종일 잠을 자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피하는 게 생활의 전부였읍니다. 실장이었던 저는 결제를 받으러 상사를 만나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었었지요. 그러기를 몇 달 이웃집 장로님부부가 운동이 도움이 될 거라며 격주마다 쉬는 토요일 전라도와 경상도로 등산도 여행을 다니다 보니 병이 나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운동삼아 신문배달도 하며 그 즈음부터 국내에 일기 시작했던 조선일보 마란톤 춘천 하프대회, 경주에서 개최되던 동아일보 마마톤대회 1999년 말에는 기회사 추천으로 석경중(백회마라톤?), 전차수교수부부 글고 아내와 처음으로 해외여행겸 호노룰루마라톤대회에 참가를 하고 기가 충천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정신과 의사에게 제 병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더니 주울증이었다고 하시더군요. 그게 글세 안좋을 땐 시름에 젖어있고 좋을 땐ㄴㄴ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정해 하는 병이라시더군요. 그래서 병원 다니기도 불편하고 신나게 마라톤도 하러다니고 하며 병원에 다니기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대전지역 마라톤동호인들과 어울리고 대전에서 전국대회도 주최하기도 했지만 워낙 천성적으로 조직의 운영에 미숙하던 저는 대전마라톤클럽 창립?멤버라고들 했지만 동호회 활동 특히 회비, 회식비에 관계하는 게 싫어서 슬슬 외면하여 가끔 주말에 서울에 가서 서울마라톤클럽 회원들과 훈련도 하고 목욕도 하며 가정사에 소홀하기 시작해ㅛ지요.
 
오늘 새벽에 가을비 같은 비가 내리내요. 어제 아내와 모처럼 즐거운대화를 넘겨 자정을 넘기고 약을 먹기는 했지만 2시간 정도 잤는데 어저 아침 조조할인 '명량'을 보고 (아바타 이후 처츰) 동춘장에 들러 아내가 먹고싶다는 탕수욕도 먹고 대전예술의 전당도 가서 노인이라 1000도 할인받은 피카소와 천재화가들 전시회를 보면서 아내에게 서픈짜리 대학강의 때 들은 신 모 홍일대교수님의 서양화 교양과목지직을총동원하며 인간수양을 했지요. 아니 아내를 수모를 주었지요. 인상파가 무엇이지? 모르지? 인상파란 말이야... 사람들이 우리 내외를 자꾸 처다보지만 저는 그냥 부족하지만 제 사양화 지식을 잘난척 떠들어 댔어요. '저 얼굴을 좀 길게 그리작가 이름이 모딜리안이야. 예수님 초상화를 보면 얼굴을 조금 길게 그린 것을 본 적이 있을거야. 사람이 얼굴이 길며 좀 선량해뵈잔아.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되. 그런에 조명이 어둡고 그림작가와 제목이 작아서 저도 아내도 다른 어린아이(어린아이는 시력이 좋다고들었기에) 넌 저 글씨 보이니 하니까. 잘 안보인에요.그래서 알바생에게 제목은 통제선 쪽으로 들어내 주던가 조명이 좀더 밝던가 글자가 좋았으면 칠선넘은 나 같은 사람은 고맙겠어. 그랬더니 아내가 제 팔을 낚아 채더군요. 주책부리지말래요. 그래서 아무말 못해고 그냥 다른 작품을 구경했앴어여. 그런데 전시회 제목이 '피카소와 천재화가들'이라지만 저는 아내에게 후기인상파 개성이 확들어나는 그림을 안내해 주고싶은데 피카소그럼은 몇점 없었던 것이 왠지 '삐끼'에ㅔ 속은 것 같았어요. 참 제가 미술전시회에서 아내게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아내는 수년전부터 '이명'이라며 딸이 사는 역삼동의 '하나안과'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그런데 불행스럽게 제가 이명이라는 게 무슨 질병인지 몰랏던거에요. 그런에 함께 병원에 몇차례 갔는데 '스테로이드주사'를 귀에도 놓은다는 것에요. 들은 소리는 있어사 그것 안좋다던데 의사가 치료한다니까 그냥 주사를 맟았어여. 딸이 휴가라 손주를 딸이 볼때는 대전에서 일부러 그 병원(역삼역에서 병원까지 환자를 실어나는 중형버스가 늘 있었고 병원 대합실에는 늘 환자가 많았고 진료실도 대여섯개는 되길래 치료되겠지 했는 데 영 아닌 것에요. 그래서 아 나이가 먹으면 나는 귀가 먹는 노화현상인가부다 했지요. 그런에 스테로이드주사를 대엿번 놓더니 이제 이 치료로는 더이상 효과가 없고 다는 대안이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제 보청기를끼는 마누라가 되버리는 구나 생각을 했어여 그런데 불연듯 생각이 난거에요. 여. 여러달 전부터 아내와 텔레비젼을 보면 볼륨을 높여 자주 다퉈고는 했던거에요. 안 내가 무지해서 아내를 병신을 맹들었구나. 그러고 딸이 둘째를 출산하며 직장을 그만두며 남매를 돌보라는 강력한 대치동 시댁을 하명도 있고 6년이 넘게 대전서 서울로 손주를 뒷바지하며 맞벌이하는 자식들가사가 힘들기도 하고 아내도 안스러워 2013년 2월부터 2006년부터 시작했던 손주 육아는 털었어여.
 
처음에 대전 집으로 이제 가자니까 아내는 실성한 사람처럼 못간다고 울고 불며 소란을피웠어요.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24시간 산후조리사라 상주하는 지라 집도 비좁고 아내를 강제로 대전으로 연행해 왔지요. 몇주는 분위기기 무척 안좋았어여. 물론 서울에 6년 가까이 지내면서 선를역5번 출구밖의 정신과 치료를 아내와 저는 계속받고는 했지만 갈 때마마 적잖은 병원비가 백수 10년차에게는 나도아내도 부담이 되었어여.아무튼 25년 째 살던 대전집에오니 살 것 같았어여. 아내와 자전거로 왕복 10킬로 미어 갑천길도 다니며 영화도 보러다니며 모처럼 평화의 시간이 찿이온 것 같았어여. 아내는 딱 2개월 젇도는 그랬다고 몇 번이고 하더군요.
 
그런에 가정불화가 잦기 시작했어요. 61세까지 직장에 다녔고 국민연금도 타기시작했고 개인연금도 타기시작했는데 점점마아나스 통장의 금액이 커지기 시작하는 것에서 아파트 관리비는 해마다 인상이되고,가스비도, 주민세도,할인마트에 가면 물가인상을 물건내용을 보면상상을 할 수 없을만큼 올라가고 올라갈 예정이라는 소식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대인기피, 산책운동기피.외식중단,재래시장(결코싸지않은; 분량만 커보이지 쓰레기봉투 차기증가, 7월부터는 재산세, 재산세,자동차보험, 검사비용. 자가용운양 기름값을 한 달에 5만원이하로 줄였더니 버스비가 맞먹게 상승하는거에요. 10원 한장을 못쓰면서 신문을 하루에 10번이상 광고까지보고 종편텔레비죤을 2년넘게 보았더니 작가들의 작난질이 보이기 시작하니 텔레빚젼도 켜는 놓지만 내용은 들리지 않게되고 큰 화면이 있는 거실 텔레비젼의 리모콘 선택권은 아내에게 포기하고 10까ㅏ지 견디다 잠자리에 (각방, 섹스리스) 소리없이 헤어지는 일과가 반복되었ㅇ어여. 그런데 지난 겨울 한반중에 아내가 제방으로 건너오더니 악몽에 무섭다며 자기를 살려달래요. 요양원에 보내달래요. 귀가 안들린데요. 놀래서 자식(지인)이 잇는 대전대학원에 전화예약분의를 하니 2개월 이후에나 된데요. 아내는 나를 비난하며 병원에도 안보내줄련다고 원마ㅏㅇ이 동네가 시ㅣㅣ끄러울정도에요. 할 수없이 대전 서부지역 대학병원에 연락하니 30분 안에 오래요. 저희집에서 15킬로는 떨어져있는데 주섬주섬옷을 입고 처음가는 병원을 찿아갔ㅈ지묘. 종합병원시스템이 시골장에 나온 촌닭같은 기분이지만 원망스러워하ㅏ는 아내눈을 피하면서 호명하기를 기다렸지요. 한참만에 간호사가 좀 떨어진 진료실에서 가서 청력검사등을 하고 오라더군요. 그러고는 또 기다렸지요. 물론 둘다 아침인들 먹었겠어요. 한참만에 젊고 힌의사가운이 아니 패셔니스트 차림(내눈에는) 환자들어오라더니 검사결과를 모니터링하더니 간호사보고 지시하는게 전부더군요. 아마말도 못하고 또 다은 진찰실고 아내를 데리고 가더니 또 다른 간호사가 아내 귀에다 주사는 놓은데 30분 정도 시간이 걸린데요. 나중에 간호사에게 물러보니 '스테로이드'주사라더군요. 다음날 의사에게 스테로이드주사를 지나난 여름에 맞았는데 또 맍아도 됩니까. 물으니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다는군요,''문득 '이런 돌파XㅌX' 마음 속으로 온갖 저주를 하고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 들려 음식점에 들리니 시 외곽이라 그런지건물은 새건물인데 아내 입맛에맞는게 없어 컵라면 2개와 우유2개을 사서 집에 오며 몇 입 먹었지요.
 
이야기기 무척 길어지내요. 아직까지 읽으셨다면 고백성사는 하는신자의 이야기만을 들어주시는 혜량읇 베풀어주시면고맙게씁니다.
해결책을 부탁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하독 긴ㄴ 니용이라 죄송해서에요.
 
집에 온아내는 제게보기에는 이성이 잃고 제 정신이 아니것 같았어요.
아내는 서울에 있는 딸에게 연락해서 당상 서울 병원을 수소문 하라고 엄명을 하더군요.
저는 죄지은 죄인 모습으로 밥은 지었지만 아무도 먹지도 먹을 만한 찬도 ㅇㅂ성ㅆ지요.
 
아내는 딸에게 믿는 구석이 있는 걸 알고 있지요.
아내은 시골 출신 딸이 강남 대치동의 사돈댁의 인맥을 들은 풍월ㅇ; ㅇ;ㅛ어ㅛ던 거에요.
사위는 서울대학교 20대 공학박사로 '현X'에 부장급이고 큰딸은 외국계은행이사에 사위는 2급 재경부 고급공무원이고 둘쩨사위는 종합병원의사이고 딸은 강남 서울대학병원 의사이고, 막내사위는 한의사개업에 딸은 회계사인데 자식 뒷바라지르를 위해 고급공무원시험공부를 하는 그야말로 아내에게는 대단한 강남의대치동에 자랑스러운딸 시집잘보낸그런 친정엄마인 거에요.
딸에게 전화핝지 30분도 안돼서 서울 삼X병ㅇ워ㅓㄴ에 내일 9시 30분까지 내원하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흔히들 예전에는 이런말이 있었어요, ㄴ노인들이 병들어 자식들에게 대접받으며 가고싶은 1순윈 병원이라고,
 
그 날로 아내 혼자 서울 딸네도 올라갔어요. 왜냐구요. 저는 운전을 해서는 안되는 정신과 환자였고 심신이 위약해서 아내 혼자 서울로 보냈어여. 그런데 아내는 언제 아팠냐는ㄷ,ㅅ으;ㄱ;양양하게 서울에 갔어여.
 
그런데 아내는 이틑날 는지않은 오후에 풀이 죽어 집엥 왔어여.
의사 선생님이 이 돌발난청은 국내에서는 어는 곳에서는 다른 치료법이 ㅇㅄ답니다. 그러니 그냥 대전에서 치료받으라고권고하더라구요.사위는 그날 휴가를 내고 초등학교손녀는 안사돈이 등교를 대신해주어ㅛ고 작은 손자는 도움이 신세를 졌고요. 참 착한 사위고 사돈댁이라고생가기 들었어여.
 
그 이후로 대전 성X병원에 아들이 추천하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어요. 서울병원에도 다녀왔노라고 자랑을 했지요.
네. 환자는 난치환자의 5퍼세트에 해당하는 통계가 희박한 군에 속합니다. 간호사 스테로이드주사 놓아드리세요. 단지 6회가 치료의 전부입니다. 환자가 고통스ㅇ러워합니다. 보청긴는 보움이 안될까요. 아내가 보청기는 싫답니다. 여자라서인 모양입니다.국내에서 미국에서 하는 보청장치는 한 예가 없습니다. 불편한것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 습니다. 간호사 다음환자 들어오시라고해.
그 이후로 몇 차례 스테로이드 주사를 귀에다 몇차례 약 1년간 20회 정도 맞은 것에 돌발난청이 판정의 장애 안내와 사는 정상 청취기능이 있는 사람이 사는 생활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금도 걸핏하면 눈물이 납니다. 정신과 의사가 휴지를 꺼내주시며 자주 눈물을 흘리세요
묻더군요. 고개를 갸우뚱.(정도가 심한것 같은데)
 
나는 정신과에 1주일에 한 번씩 아내와 함
게 진료를 받습니다. 네게 약을 조금 올렸습니다. 아내는 더 안좋다는 것 아니야? 의사를 믿어야지. 우리가 무얼알아.
 
의사 선생님계 울면서 부탁을 했습니다. 저와 처음 만난게 21년 전입니다. 그 때는 정신과 미친사람이 다니는 곳이라고 생각ㅅ 했습니다. 다ㅏ른 병우ㅝㄴ에 가면 또 마땅히 받아야할 검사부터 시작하고 말 같지도않은 질문몇마디하고 1주일에서 하ㄴ번 또는 두번 오라며
. 저는 아들이 사무직원으로 다니는 종교대단대학병원에 다닙니다. 아들덕분에 진료비는 면제입니다. 백수에게 큰혜택입니다.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야라고 조송스럽게물으면 '늙어가면 인체는 다 고장나는 거니까 그렇게 여기고 사세요. 간호사다음환자 들어오라고해(의사들들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자기들이 갑중에 갑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더군요. 오죽하면개콘에서 박성광이가 그러겠어요.
또 있지요. 요즘에 태중에서부터 갑이라고 여기는 사랍들 같은 분들 . 낸 연금으로월급받고 연급받고ㅓ 대접받고, 피의자인데 재빨리 면직시켜주고, 면책원눌고 출판회로 탈세하는 도적X들.
 
아내가 자식들에게도 정신과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말라는 이야기를 70억 인구에게 까발리는 이유를.
마라논을 시작해서ㅓ 철인3종 킹코그를 65세에 15시간대에 완주하고 이제 겨워 70살인 ㄴ제가 어제 기쁜 일이 있었읍니다.
 
약 효과르를 보는지 마음을 다잡아서인지 벼;ㅇ원에 다녀오고 2틀간 기분이 좀 안정됐어요.
그래서 여보우리'명량'영화보러가자. 아내가 반색을 해요.마침 딸이 보내진 CGV무료권이 있어어요.
네이버에 들어가예약을 하려니 대전에 CGV가 없어요. 대신 롯데극장만있어여. 그래서 약도를 보니 전에 다녔더너 CGV와 같은 곳이더군요, 그런데 8월 20일이 병원 다녀온 다음날이라 예약을 하려니 매진이 되었대요. 아침 9시 20분 상영분잉네.그ㅡ런데 그다음부터거 문제였어요. 아이디를 묻고 비밀번호를 묻는데 저는 인터넷을 공과금을 내는 인터넷뱅킹만으로 사용하는데 전혀생소해요.
1588-XXXX로 연랋리거해서 연락하면 ARS음 몇 마디 후홈페이지로 직접문으하래여.
정신과치료를 받으며 휴대폰을 꺼놨어요. 신경이 과민해지더라고요.
아내보고 내가 인ㅌ넷으로 예약을 못하겟어. 예날하고는달라졌어. 아내의; 화가 치솟았어여. 약 3년만에 극장에 가는 건에 또 핑계를 대고 안가려는구나 생각이 들었나봐요. 그래서 안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그고멍하니ㅕㅁ
한참있더니 아내가 딸의 전화를 받으라더군요.
아빠, 대전에 CGV가 없어지고 롯데로 바뀌었어.
매진됏다고 그래도 아침 9시에 가면 볼 수 있어.
겨우 가정에 평화가 스며들기 시작했어여.
1주일에 샤워 한 번도 안 할 때도 있고 속옷도 안갈아 입던 제가 내일 극장에 가서 옆에 앉은사람에게 폐를 끼칠까봐 로즈마리 허브비누로 오전에 한번 그리고 당일 한번 이렇계 2번 샤월를했어요.
 
영화표를 사러 걸어러2 KM 떨어진 극장에 가기위해 간단히 아내가해준 야채즙을 마신고 철인3종할 사용했던 가방에 우상을 2개 넎고 보온병에 커피를 타서 배낭에 담고 부슷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정말 평생 처음인 것 처럼 아내 손을 마주잡고 걸러갓지요.시간이 남아ㅏ 극장 인근에 새로 지은 성당에 제가 속한성당에가고싶지않은 땐 토요일 오후에 중고등힉생들과 미사를 보던 상가에 임시로 있던 성당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요즘 아내가 다시 성당에 다니며 마음이 안정을 찾아 감사하던 차이긴하지만 제가 성모상이나 종교행위는 마음이 허락되지않아ㅉ지만 제가 처음 통신교리고 영세를 빋고 삽질을하며지은성당에서 부활정과 성탄절에 라틴어로 드리던 대미사 생각에 내가 예날에 앉았던 테너 자리에않아서 고개를 묻고 잠시 가슴ㅇ,ㄹ 쓸어내리고는 아내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권유하는 것을 뿌리치고성당을 나왔어죠.
난 그런 사람이엇어요. 6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요 12살에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이신 송문호 선생님이 읽어주신 '산새는 산새라서'''물새는 물새라서'''라는 시를 들도 잠시 졸도한 적이 있던 적이 있다고 했더니 (이 병신) 아내는 절대로 병신이라곤는 하지않아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ㅈ젰짐ㅏ맘 저는 그녀의 몸짓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던ㄴ 기억이 새삼생각이 났어여.
 
성당에서 극장까진ㄴ 5분도 안돼는 거리여서 표를 사는 사람이 없길래 물어보니 아직 인터넷을연결하지않았으니 잠시기다리데요..
혹시애진돼지는 않았난요. 아뇨, 10장도 예매안됐오여. 마음에 맞는 자리를 고르세요. 그래서 시력도 청력도 안ㄷ종은데 하니까 e열17ㄴ번16번을 지정해주더군요. 연세가 어떻게돼세요. 제주미중ㅇㄹ 보여주며 1944년8우ㅓㄹ생인데요.금럼 5000원ㅆㄱ 1만원 입니다.
 
1만원 내게는 작은돈이 아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위해서 10원이라도 아껴써야한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종편 텔레비뵨에 나오는8순 9순 어르신들은 cgv기ㅣ 무엇인지 복합영화관이 무언지 몰라도 행복해 사신ㄴ 갓 같더ㅏ만 내만 속을끊이는 것 아닌가 문득 색각해ㅛ다.
 
시간이 많이 남아 워낙 주저부리를 좋아ㅏ는 아내 중자 팝콘을 하나샀다. 아내에게 건네주니 맛있게 먼는다. 입장하기 전게 혼자서 다 적엉ㅆ다.원나 주전부릴 안하기도 하지만 아내가 기분좋게 먹는 모습이 무척 흐믓했다. 그렇더니 영수증보더니 4500원이나 하네 .이걸 뭥하러 샀어. 배낭에서 ㅂ보온병애소 병뭉애ㅔ 탄 내개만ㄴ든아메리카를 건넸다. 이건 또 언제 챙겼어. 당신 샤와할때.
 
예전엔 이런 것 다 내가 준비했지. 지금은 내가 안돼서 미안해 .지금 약먹고 있고 오늘 잘하고 있잖아. 난 걱정안해.
 
영화를 보는 2시간이 넘는 시간에 내 눈에선는 눈물이 먼출줄을 몰랐다. 혹시나를 위해 손수건을 잘 챙겼다는 새각이 들ㅇㅆ다.
내 옆 좌석이 ㅈ젊고 건장한 청년도 간간히 감정을 추수르는지 얼굴로 손길이 자주올라갔다. 옆의 여자는 스트로가 2개인 커피?를 연신 마시느라 신경이 쓰였는데 남정네는 전혀 마시는 것 같지않았다.영화가 끝나ㄸ다. 여자는 크레딧이 시작되자마자 자리를, 일어ㅁ서싸. 남잔ㄴㅡㄴ 크레딧이 중간ㅈ잘를 떴다//
 
얼피ㄴㅅ 약20명이 앞 비상구로 퇴ㅣ장해ㅆ가.
 
아내가 눈치르를 주는데도 난 그레딧이 다 끝나도록 자리르르 지켞다.    마음을 더 추스리고 싶었다ㅏ.내 생전 크래딧을 마지막까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 내외는 화장실만 보이면 서로 화장실에 다녀오라고한다. 만약에 대비해서다.
 
가족들에는 낸 질병을 간간히 비친다.
지난 겨울부터 주간에는 모느끼던 이명이 잠자리엗들면 점점 크게 들려온다. 아내의 이명을 업수이 여겨 돌발난청은 만든 죄라고 자학을 즐긴다.
수년전부터 변비증세가빈번해지기 시작한다. 저음에는 탈장약을 한ㄴ 번 주입하면 몇 달은 잊고지앴다.
요즘에느심할 땐 10일 전후가 통변을 못하기도 한다. 그러니 먹는량을 줄이려고한다.
요실금을수년전부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바지가랭이를 적시기도했다. 대학병원의사는 절박뇨라며 늙은이 절반이상이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시란다. 내겐 인간모멸감이다. 환자의 이야기를 다른환자르르 지뇨하며 경청해주던 최우석의사성생이 그립다. 얼마전에 아버님인가가 돌아ㅏ가셨다는ㄴ  소싯을 아내로부터 전해들었는데 내가 사람 구실을ㅗ하고산다. 10년 전후쯤 그 어르신하고 설악산 대청봉등정도했던 정정하셨던 분인데. 최우석선생에게 죄를 많이 짔고말았다.
 
극장을 나오니 정부2청사 주변의 점심시간이고 나는 모처럼 짠돌이 생색을내고싶었다 오늘은 그러고 싶었다.선사유적지근처의 동춘관ㄴ으로ㅓ 가잔다. 내가 직장생활 때도 한두차럐 가본 곳이고 아내가 원해서 망사림없이 5층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엘리베이버ㅓ버튼 옆에 ㅈㅈㅈㅈㅈ정부청사와셔틀버스시간이계시되어있었다. 10여년전에 와서 처음 먹었던딤섬이 있었지마 아나가 좋아하고주머니 생각을 하는 탕우육 중자를 시켰다. 아내에게 짬뽕을 ㅅ키려했더니 짜자ㅏㅇ명이면 충분하단다. 단무지와 김치도 나오고 공문원 참림의 단체 손ㅅㄴ들이 안쪽 별실쪽을 햐하다. 생각을 종합해보니 식다아 선택을 잘했다 싶은 생각인든디.
 
배달음식과 달리 탕수육이 머너 나놨다. 아내는 연신 역시 배달 음식이 아니라 참 맛잇다며 먹느다, 이 자자ㅕㄴ도 나와따. 아내는 모추럼 맛있고 기분좋게 먹은 모양이디.
 
그렇소 보니 칩거 3ㅕㄴ만의 외출인 세\ㅔㅁ이다. 멀정한ㄴ 사말도 정신병을 알을 수 이었지 안있르까
 
아내와 나느 손을 꼬옥잡고대전예수ㅜ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그즈엘갓다
추억의 징소다
어릴손녀오 유무를 태워 밤문했던 곳에 각스었ㄷ.
 
3살도 아됭 ㄴ살의 살의  욋ㄴ녀에게 좋ㅇㄴㄴㄴㄴㄴㄴ것을 보여주고싶었다.
 
피카소를 소개할떄 아내에게 면박을 주었다
 
'조수석에 앉아 세계 이주를 10번을해도 아마 도네 마트에 단온건지 아닌지 모를껄?
 
배시시
 
평소같으면 사람 무시한다고 난리를 쳤으  애는 여전히
 
배시시, 내손을 꼬 잡ㄱ, 배시시
 
저 발레 춤추는 그림 달력 ㄱ릴에서 본 생가ㅏ나? 응, 생가가나.
 
마음이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는 것으을 난 70살이 넘어 이생의 마지막에서야겨우 늒기시작하게됐나. ㅇ잃어버린 시간이 안타까보 후회슬다.
 
대전예술의전당을 나와 옆의 이응노미술관을밤문했다.
여기도 외소녀 수민이를유모차에 태오 왔던곳이다.
가자 좋으것을보여주고싶고 주고싶은 것은 본능일까 학습일까??
 
저건 제목ㅇ 무엇이지, 무엇을 그린거야?
 
그런생각맑고 그냥봐. 근사한데.그냥보다가 궁금하면 제목을 보기도하고 몇살때 겼낟알아보고 그걸 그렸ㅇㄹ 떄 시대적인 역사상화이나 문화적인상황도 알아보고....
 
저기 개미같이도학 사람 같기도 한 그림은 젬ㄱ이 멋이지 알아?
 
본 기억은 나는데...굳이 제목을 붙인다면,......'군상'일수도 일 건같은ㄷ데.... 
 
'군상이네. 어떻게 알았지?
그냥. 군상일 거  ㄱㅌ았어.
 
 
 
이응로화백전시관을 관람하는 시간내내 우리 내외 둘만이 전부였다.
 
여보, 내가 당신하고전세냈으니 아무도 입장시키지말라고 했거든
 
이히히+이히히
 
경로자라고 10원도 아내고 호사를 누렸다.
 
호사를 누렸다. 대통령골프 친격이다.
 
다시 진격
 
 
이응로화백전시간 옆 
여의도 516광장 넓은 곳. 한 때 마라톤대회 ㅊㅎㅎ발점이기도 했고 한 때 인라인스케이장과 자전거를 탔던 곳에약3츻 건물 높이의철물 공간이 눈에 거슬린ㄷ다. 트인 틈으로 들여다 보니무대가 보이고 대형모니터가보였다.
문득 시민세금으로 재임중에 제송덕비를 세우려는 짓으 아니기....하면서 제 재임중에 시공테이플를 끊고 준공테이프 끊은 종복은 ㄷㅐ학4년내 데모로 통금이 있던 시절신촌역과 이화여대사이로진압대의 돌팔매에 이마가깨져 피를 흘리며 쓸어진나를 대무 안으로 끌어 들이고 아까징끼(오도징끼, 빨간뭉약)을 발라주고 반차고도 아니고 붕대도 아니었덩 천으로치료를 해주고 집의 가장 깊숙항 곳에 숨겾 고 재워주 먹을것을 주고 아침통금해제가된 뒤 집 주위의 진압대가 철수한 것을 확인하고 신촌역을 경유하는 서울행 경의선열차를 타고 인천집까지잘가라고 배우해주던 그아주머니가 1960년대초반판자집에서 여자들을 서너명ㅆ 데리고 막걸장사를 하며 더러 통금에걸리던 가 여자가 피표한 학생이나 남자들에게 색주가인줄 후힐에야 알고 재학중 입대하거나 재대환영회를 할 때 우리는 그 당시 막걸리집에 에서 울분을 토했고 이층도 아닌 판자집 복층에서 막걸리 몇 주전자에 동정을 내던지는 것을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게 여길 마음에 여유를 거져 보지도 못했다. 종삼이나 청계천변 여인들의 집은 비싸게 치고 동대문 인근의 임성X약국의 비싼 경비를 치르기에는 주머니는 7원짜리 전차표값도 모자라 신촌에서 명동의 세시봉이나 청자다방까지 걸어다니기 즐거웠었고 데모데에 합류할 때는 선봉에 섰다가 진압대와 마주칠 땐 좌우로 피신하며 2진에 있는 동창들이 마포경찰서에 끌려간다는 지혜를 하도많은 데모를 통해 터득하곤는했다. 
 
그렇게 한일매판자보 반대데모롤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데모 때는 머리가 허연 국회의장(이름기넉아남)과의 노상토론 끝에 만세3창으로 해산하길 반복했었다.
 
4힉년 때는 입사시험준비를 한답시고 데모를 피해 아현고개를 넘어 서울역으로 기차를 타러가다가 마포경찰서에 연행된 적도 있었다.
조서작성중 몇학년이라기에 4학년이라니까 취직공부해야지 데모는 왜 하러다니냐고, 지나가다가 연행됐다고하니 수돗가에가서 최루까ㅏ스 씻고 어서 집에가.
 
이건 낭문도 아니고, 향수도 아니고, 추억도 아니다. 시대의 젊은 20대의 아품이려니했지
 
그래도 경인고속도로가 한 사람이 시작해서 개통하는 것도 경부고속도가 시작한이가 개통하는 것도 보았고 지하철도 그러한 것도 볼 수 있어 미웠지만 믿을 구석이라고는 당신(타계하신 조봉암, 신익희 광팬 아버지는 정사년 동갑내기라며 산전벽해를 한 것 그 사람 뿐이 없었다고 하시곤했다. 그래도 선거 때는 꼭 야당을
직었다.
 
왠 뜬금없는 이야기로 돌아가야지.
 
엑스포남문은 처음부터 왜색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런데 그 남문도 3년 잊은 사이에 철거되고 없었다. 세월이란 그런거려니 해야지.
 
한반수목원 동원.
 
이 곳도 어린손녀와 더러 산책다녔던 곳이다. 감회가 새롭다.
 
여보 당신은 여기 별로 못왓지. 그럴밖에. 당신은 집안일 해야하고 장보고 할 일이 많아서 올 수가 없었지.
 
여전히 나는 아내 손을 땀이 나도록잡고 있었자.
 
손녀와 왔던 자연사박물관은 한구석으로 밀려 있었고 식물원과 그리고 연정국악원 공사한다고 한장 가림막을 하고 있었다. 왠지 이러다 본ㄴ래부터 있었던 녹색 공간은 연출된 공간의 구석으로 밀려날 것 같았다.
 
직장시절 세월이 좋아 해외 출장시 보았던 공간이 생각났다. 런던의 하이파크. 뉴욕의 그 러브스토리에 나오는 공원.
조깅하고, 산책하고, 일광욕 즐기고...  왜 우리는 그게 안되지. 못하지, 안하지. 왜 뭉게지?
 
동문 언덕엔 소나무 한구루가 있다. 여기도 여기저기 끝없이 바뀌고 있네. 글세 좀 달라진 것 같아.
그래 누구나 왕년 이야기를 하지. 아무 의미도, 인정도 해주지않는 왕년. 잘 하자는 것이고 전문가들도 점점 많아질테니까.
 
터덜터덜내려와 엑스포 남문다리는 건넌다.
6시가 넘었네. 집에서 나와 구경하고 밥먹고 걸었는데 난 허리도 다리도 머리고 하나도 안아파. 약을 잘못 조제헸나. 좀 안좋다고 했더니 조증(+)약을 넣었나. 전문가야. 믿어. 다 내애기 듣고 처방해준거야. 지난 주하고 또 같이 처방했다고 했어.
 
사건이 있었다.
약 3주전 정신과 약사가 아침 7시에 전화를 주었다. 병원이 10부터 진료인데 너무 이른 것이 방정스러웠다.
저 혹시 어제 조제해가신 사모님약 드셨어요? 네 어제 점심하고 저녁 2번 먹었어요.
별일은 엾으셨어요. 네. 평소같았아요.
죄송하지만 퀵서비시를 보낼테니 약을 새로 지어보낸드리겠어요.
괜찮은 것 같은 데.
아네요. 제가 퀵서비시스 곧 보낼게요.
 
여보 어디서 온 전화야. 병원 약사인데 약 먹고 별 일 없었냐고 물길레 없다고 했어. 근데 약사가 그렇게 일직 출근하는지 모르겠어.
 
30분도 안돼서 현관에서 딩딩. 누구세요. 네 저에요. 모니터에 약사모습이다. 21년전부터 있었던 약사다. 그 때는 왜소한  간호조무사 같게 느꼤다.
 
여보 약사왔어. 다음주에 가면 될텐데 왜 왔을까. 약사는 아내와 서둘러 현관방으로 들어갔다 금방돌아갔다.
 
왠일로 왔데? 퀵 서비스 본낸대더니. 지금 시간대 이 동네 출근 교통체증이 심한데...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다. 약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자기가 착각하고 이전 처방대로 약을 조제했요.
정신과 약은 극약이라 일반약국에서는 조제도 하지않는다던데.
그런데 의사선생님에게 절대 말씀드리지 말라네.
여보 정말 괜찮은거지?  괜찮아. 그럼됐어
 
그날 저녘6시 30분경.딩동.
모니터에 약사와 또 한 여자.
정신과 진료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10킬로미터가 넘는다.
지금은 대덕대로 교통체증이 심하게 밀리는 시간대이다.
지방도시인데도 신호대기기 2,3 차례 하면 사람 짜증인 극에 달한다.
 
함께 온 여자는 여고생 같이 예쁘장하고 긴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옷차림이 변변치않아 안방으로 들러갔다.
간호사는 서둘러 돌아갔다.
대전 둔산동의 한 백화점에서 2박스를 묶어 파는 체리다.
정상가격이라면 2만원 이상일텐데, 아내 말이 1+1로 요즘 싸게 파는 모양이야.
대수롭지않다는 표정이다.
나는 기분이 개운치않았다.
체리는 한겨울에 대형마트에서 작은포장에 9900원대로 판매해서 손녀가 올 때가 아니면 살 염두도 안내는 식품이다.
도대체 간호사가 하룽에 3번씩 남에 집을 방문해야할까.
 
나는 속단했다.
의료사고다.
약조제가 잘못했다.
약 단위로 상위로 조제한 것이 점검에 들어난 것이다.
 
아내는 ㅇ쨌거나 내가 괜찮으니가 없던일로 할거야.
 
정신과 약은극약이라고 들었다.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나고 있구나.
그리고 책임자인 의사의 눈과 귀를 가리고 간호사가 전결로 처리하는구나.
차라리 사과를 하고, 이상이 잇으면 어떤 조치를 하셔야합니다.
의사선생님께도 보고 드렸습니다.
 
당장 의사에게 사실 확인해!!
에이 그럴거까지 없어. 간호사도 애를 낳서 고등학고 다니는 딸이 있는 데 잘못되면 좋겠어.....
 
최근 신문 컬럼 이야기.
'예전에는 지금보다 군대생활이엉망이었어도 잘 견뎠는데.
'글세나 말이야. 요즘 애들은 걱정이야'
옆에 있던 젊은이가,
'그렇니까 몇 십년이 지나도 요모양 요꼴이지요'
컬럼은 이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내가 21년쩨, 지금은 아내도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게 내 별난 성격탓일까?
 
나는 세월호 뉴스를열심히 보다가 지금은 중단했다. 눈물이 나서 견디기가 힘들다.
나는 이상병, 임병장 뉴스를 열심히 보다가 중단했다. 눈물이 난서 견디기 힘들다. 어디서부터 꼬리를 자른는 것 같다. 아랬사람 책임으로 돌리고 자기는 죽으면 비석에 '장군,장관'이런 관칭에, 연금에 물가상승률에, 장군명예수당에...
나는 40대 판검사들에게 '영감님 영감님 하는 소리를 직접 들은 기억이 있다. 나이든 분들이.
여동생 시아버지는 지방 판사로 군사정권 때 부정선거를 ㄱㅁ싸ㅏ지 않나 사표처리하시고 60대에 타계하셨자. 40년 전에도 올곧은 분들이 국민의 사표이던 시절이 있었었나본데...
유병헌 뉴스를 보면 자살인지 사살인지 이제 의심이 간다.
피의자는 의원면직시키는 법무부는 안된다는 여검사 기사를 보았다.
출판기념회 모금 비리, 끝없는 위정자들의 허언의 반복...
 
 
70살인 네게 수년전까지는 진보니 좌파니 보수니, 우파니를 몰라도 먹고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번 한 쪽이면 죽을 때 까지 그 쪽이다.
 
이제 부터 정말 내겐 좋은이야기, 일어둔 이야기를 하고 새벽 2시부터 일어나 야채즙 한잔과 살은 달걀 하나로 요기하고 소변 한 숱깔ㅇ 먹고 벌린 작폐를 끝내야 겠다.
 
수년전 8월의 한 여름 밤 내 생일이라며 딸 내외와 손녀 아내 아들이 엑스포 과학공원 분수대 앞 에서 분수공연과 브라질 민속공연으로 내 생일축하하기 위해 모였었다. 온 식구가 신나서 무대에 불려나가 삼바춤도 추고 맥주도 마시고... 그러데 여기도 쇠잔해가고 있었다. 날씨가 우천이라 분수 공연은 취소란다. 야외 파라솔도 예전의 반도 안됀다 공연무대도 없어졌다. 서너군데 음식코너도 공연이 없어 텅빈채다 아내 와ㅏ 나는 손을 꼭잡고 우리 몇년전에 여기와서 신나게 놀다 간 기어나지 하며 걷는데 거의 12시간을 헤멘 아내가 야외 비치파라솔아래에서잠시 쉬잔다.
그런데 테이블 2개쯤 떨어진 곳에 여학생 2명과 남학생3명이 담소를 하고 있었다. 나ㅃ쁘게 보면 불량청소년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내보다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자부한다.
여보 나는 요즘 저런 애들이 보면 참 보기 좋더라 남여 학생(중고교샌)반바지 차림으로 어깨동무하고 다니는 것보면 너무 좋아보이더라.
아내의 눈빛이 경계가 역역했다. 그런데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않는데 동남아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들렸다.
여보 월남이나 중국애들같애. 다문화 아이들인가봐. 요즘은 다문화라는 말도 좀더 긍정적인 말로 바꿔야한다는 운동도 있던데.
그런데 다섯명의 학생들이 우리가 앉은 방향으로 지나가길래 용기를 내서 물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고 영어로 야기해보 눈치보일 일도 없도,
 
만만한 말로
Where are you from. We? From Thailand. Middle Thiland.
이제부터 서로 아는 영어와(부족한) 한국어의 대화로 소개하겠다.
몇 살이냐? 24-25" 난 중고등학생인줄 알았다.
대학원생으로 한국에 세미나차 왔다.
인근의 기숙사에서 지내느냐. 아니란다.
카이슽에 았냐 아니란다.
영어가 짧은 게 부끄럽지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어를 조금 사용하는 여학생이 말하길 세미나 다음주에
끝나 금요일에 귀국하기 때문에 목요일에 서울로 간단다.
아내는 한국말로 아들같고 딸같이 예쁘고 사랑스럽다며 수선을 떤다.
나도 한학생씩 께 안아주며 건강하고,부모님게 효도하고,할머니할아벚지께도 효도하고 형제끼리 우애있게 지내라고 건방진 당부를 했다.
아내가 남편이 정신과 치료를 받아 집으로 초청을 못해 미안하다 다음기회가 되면 꼭 초청하고싶다. 이곳에서 1킬로미터로 가까고 이곳에서 30년 넘게 살아 주변 관광을 시켜줄 것을 약속했다.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비행기삮ㅆ이 비싸요. 휴대번화 번호를 적어주는데 이번호를 걸면 전화요금이 비싸요. 드물게 보는검약한 청년들로 보였다.나는 다시 한명시씩 안아주며 내가 작은 아들을 얻은 것 같아 기쁘다. 내 자시들은 싿동이로 37살인에 아들이아직 결혼은안해 아내가 걱저안다고 했다.
 
아쉬움을 재촉하며 디카이 휴대폰 이메일을 교환했지만 나는 현재 모든 것을 중단하고 잠수중이라 막마ㅏㄱ해따.태국 다큐멘타리를 즐겨본다니 매우 기뻐했다. 특히 태국의불교기 이채롭고 선하게 사는 모습을 지향하는 게 좋아보였다. 세상 모든 종교가 선하게 살자는 것이니 더욱그렇지 않느냐며한 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
 
아내는 즉시 오늘 초청할 그랬다는 둥 아쉬움에 수선을 딸아싿
 
이부자리도 잠자리도 생각보다 불펴할지도 또 내가 어떻게 변덕을 부릴지 모르자며 수선을 떨다보니 자정을 넘겼다.
 
그리고 2시에 일어나서 지금껏 잘 보이지도 않고 엉망인 내용을 마치려니 어쩌 면 시작이며 마지막일지도 모를 나를 기억하는 친구득에게 아쉬움이 끝치없다.
 
나는 지금 10세 이전의 지적능력인 같다. 체력도 민첩성도 균현성도 10세 이전 같다. 그렇지만 그간 내게 고마움을 베풀어주시 분들게 감사를 보내야한ㄴ데 이름더ㅏ 질 ㄱ;악읺니거...
 
생각나는대로 무순위로 마지막 작별ㅇ의 인사를 고해야겟다.
 
박영석회장님. 회장님 80회 부부동반 춘천마랕통대회 때 한 약속 어려울 것 같습니다. 회장님 90회 마라돝 동반주. 지송합니다.
전차수 교수님. 58년 개띠도 아니며 잘 챙겨주시고 하와이 마라톤 대회 때 제참가번호 챙겨주시것 감사못갚을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마랕톤 주최측 선생님들 성함이 생각나지않습니다. 초창기에 채팅으로 속썩여들여 죄송합니다.용서못받고 작별할 것 같습니다.
최우석선생님. 부친 조의 표하지 못한죄 용서못받고 갈 것 같습니다.
철인3종 고회장님. 부고를 못전해들은죄 용서못받고 갑니다. 금감산 의무실 서울대의해 고회장님 선배님도 건강하시ㄷ강뉴라시아ㅏㅏㅏ
뉴라이시아 종단 삼성의료원참가자 의료진 서생님 존함이 생각나지 않네요.
김대익씨. 내 아들 동갑내기.내 애마 야퀴 사장님. 지금쯤 아빠가 됏을뗀데. 후배 부인과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석경증 선생님. 1999년 호놀룰루 마라톤대회가 첫 해외 참가가 못모셔서 죄송합니다. 건강이 안좋아지ㅕㅆ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부끄럽게 나를 통해 마랕톤이나 철인3종을 하신 분들 저에 대한 좋은기억있의면 간직해주세요.
대전마라톤클럽회원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간 공개되지않은 정신과 환자 땜ㄴㄴ에 많이 속상하셨을 분들께 용솔ㄹ 밥나더,
철인3종대회에서 노익장을 자랑하시던 제 연배분들 죄송합니다. 잘날척하고 지적질해서
국토종단을 함께 시작하고 달리셨던 모든 분들 건강하십시요.
일일히 기억이 안나네요.
모습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생각안나고 성은 기억나는 데이음은 ㅈㄹ몫 기억하긷도 하고,,
 
저느느 현재는 1990년대 아나로그시대에서 정지되어있읍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무덤을 제가 챙겨주어야하는데. 마음이 여린 여자인데.
 
다 시 ㅎㄴ ㅂㄴ 다른 기회가 없을 것 같아 행여 궁금하셧던 분들께 인사들입ㄴ다.
그간 제가 알게 모르게 지은 모진 말 용서해주시고 오래올 건강하세요.
 
또 생각나시는 분들이 있네요. 미국이 양현목선생님,은퇴하시고프로리다고 가셨다는 쵲종식 선생님.은혜를 못갚고 인사드립ㄴ니다.
 
마지마가으로 모자 탈자가 제 정신ㅅㅇ태 입다. 너그럽게 용서해줏;요.
차라리 잘난척하던 ㅈ절 기억하시며, 까불더만 나이값도 못하고 가는군ㄴ요.
 
누가 압니까. 제가 박영석회장님과 100세 동밙주를 함께 하게 될지를.
욕심이겠지만.
감사합ㄴ니다. 난독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ㅅㄱ
 
 
 
 
ㅅ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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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양영우님의 댓글

양영우 작성일

박선생님
긴글 잘읽었습니다.

1. 필요한 생활비 자식들에게 용기있게 요구하세요. 
  한달에 필요한 금액을 넉넉하게 제시하시고 나누어 내도록 하세요.
  자녀들은 충분히 생활비 드릴 여력이 있어 보입니다.

2. 멘토를 소개합니다. : 즉문즉설의 법륜스님
  삶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사모님과 함께 그분의 모든 동영상을 보세요.
  아침점심저녁 듣고 또 듣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며 마음이 편해집니다. 
  두분 모두 심신의 건강을 찾게 될 것입니다 .
 
건강하세요.,

김명회님의 댓글

김명회 작성일

박신석님 !
 글 재미있게 쓰셨어요

저와 비슷한  연령인것 같습니다
구반달때 본듯한 느낌이 들어요
저는 요즘 반달찍로 하루를 보냅니다

 세상에는  잘난분  못난분 
                부자도  가난뱅이도
                없어요

 과거에 잘났다는  생각에  젖는 바보들 엄청 많아요
 세상에 태여나.....평생토록 장애자로 사시는 분들도
 보고 듣고 느끼는것 똑같애요

 대학갈때  수학문제 하나
                영어문제  하나
 더 맞추어 이름있는 대학을 나왔다는
나만의  망상에서 벗어나세요

 매일 매일 동네청소를 숨이차도록
 2시간이상 해보세요

 처음에는 나만하는줄 느끼지만
 나보다 먼저 두부부가 함께 휴지줍는
 분들이 있어요

황인호님의 댓글

황인호 작성일

아직 힘이 있으시네요...
지금부터가 인생 최고의 순간입니다
1. 윗글 양영우 선생님 말씀에 절대 동감합니다...

2. 틈날때마다
  여기 서울마라톤에 글 올려 주세요...
  서로 소통하다보면 길이 열리지 않겠나요...
  스스로 엉킨 실타래가 풀어질 것입니다...

용기있는 고백, 감동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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