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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한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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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직 작성일12-09-07 10:46 조회882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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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일등병시절이니까 아마도 74년도로 기억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38년 전입니다.
이중에는 벌써 이승에는 존재하지 않는 친구도 있습니다.
 
헤어진 무릎을 기워입은 하의
보이지 않지만 누더기 통일화
그리고 상하 색깔이 다른 물빠진 옷을 입은 행색이나
밥한 끼 얻어먹기 위해 손에든 반합이
장터에서 각설이타령 들어가기 전의 거지꼴 그대로입니다.
 
당시 국가를 지키는 병사의 역할보다는
난방용 땔감과 일상의 먹을 물의 확보가 가장 시급했고
또 북한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벙커 짖는 작업
즉 노가다가 하루의 일과 였습니다.
보초와 작업덕분에 제대할 때 까지 총검술도 할 줄 모르는 특혜? 를 누렸지만....
 
빽도없고, 못나고, 없는집 출신이라
최전방 막다른 골목에서 3년을 고생한 덕에
황량한 들판에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긴 합니다.
 
당시 있는 집 고위층 자제는 군대기피하고
3년간 고시공부해서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했습니다만
이제와 배 아프면 어쩌겠습니까
그게 운명이고 팔지지요.
 
저렇게 지겨운 군대를 왜 갔는지
아마도 그 하얀 머릿속에 국민의 4대 의무를 기억 했겠지요
그저 무조건 가야한다는...
 
현실도피란 말을 가끔 합니다.
어려운 형편에 학교는커녕 생활 전선에 뛰어든 몸이라
희망도 없고 앞길이 캄캄한 시절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문을 막아서는 어머님을 밀쳐내고
도망치듯 입대한 군대는
눈치 없다고 쥐어 터지고 매일 반복되는 노가다로 정말이지 지옥 같았습니다.
 
왜 그렇게 배는 고픈지....
사진에 가장 키 큰 친구는 중대본부 설거지통을 뒤져 먹었지만
나는 차마 그것까진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따듯한 품속과 가족의 사랑이 그리워
억울하고 속상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요즘 군대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불평이 많더군요
아마 요즘군대에서 저 시절 생활이 계속된다면
제대로 버틸 용사는 없으리라 단언 합니다.
 
뜬금없이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제 자리 찾느라 세상을 더럽히는 무리들을 보며
한심스럽단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2012년 9월 아침에....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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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문성재님의 댓글

문성재 작성일

빛 바랜 흑백사진을 보니
참 오랜 세월이였군요.
황량한 들판의 들풀처럼 모진세월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선장처럼 잘 헤쳐나오셨네요

임인범님의 댓글

임인범 작성일

그래도 오른쪽 2번째 일등병의 표정은 유난히 밝고 힘차보이는데요 ^^
74년도..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 군생활을 하셨네요..얼마나 현실이
힘겨웠길래 그걸 벗어나고자 그 당시 그 참혹한 군에 입대를 하셨다니
85년대에 군 생활을(예비군 조교..ㅠ) 한 저는 상상히 아니 갑니다..
아마 인생에서 그러한 고생이 경험하셨기에 지금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다양한 사람들을 찍고 봉사하시면서 그저 찍는 그 즐거움이 좋아
하루하루 건강하고 뿌듯하게 사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덕택에 저도 지나간 20대의 조또방위(^^)의 추억을 잠시 회상해 보면서
아~유수같은 세월에 그 때의 그리움을 잠시 되새겨봅니다..

이창규님의 댓글

이창규 작성일

전 80년 초에 입대했습니다. 기억하기 싫은 계엄군이었습니다. 춘천인근에서 탄약고를 지키면서 생활했지요.
지급된 워커는 관물대에 모셔놓고 헝겁통일화를 신고 작업했습니다.형의 시절처럼 먹는 것에 궁핍을 겪지는 않았네요.
그래도 일식삼찬이 지켜졌으니까요.입대전 충청도 시골에서 일상으로 먹던  음식보다 더 좋았습니다.
많은 동기들과 지낸 즐거웠던 기억을 더 생각하며 제대후에도 몆번인가 다시찿았습니다. 춘마에 참가한 뒤 시간을 냈지요.
어려웠던 시절 국방의 의무를 다한 선배 동료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몇해전 아들녀석의 면회를 가서는 피자를 배달시켰습니다. 금석지감 입니다.

최명일님의 댓글

최명일 작성일

저보다 10년 빠른  군번입니다.
금방 알아 보겠습니다.
그만큼 몸관리 잘 하셨다는 증거겠지요.
우리땐 기절할 정도로 맞은 적은 있지만 배 곯진
않았습니다.
휴가 나와 솔 한갑  윗주머니에 넣으면 참 행복했었는데.
아직도 종종 입대하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최병주님의 댓글

최병주 작성일

형님
하루종일 곡괭이 질 하시느라 고생 많았씨유
그시절 배 굶지 않았으면 키가 좀더 컸을텐데
아련한 군대생활 *뺑이치던 추억에 레코드판 틀어놓고
막걸리 한잔 할껴 오늘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몽이부대 벙개 함 때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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