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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청명한 이 가을! 나도 한번 일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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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0-10-05 16:59 조회1,2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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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나는 새처럼 마라톤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새벽잠을 깨웠다.
새벽 06시에 휴대폰 알람을 맞춰 놓았으나,
마음은 이미 통일마라톤 대회장에 가 있었는지
새벽 05시에 자연스럽게 부릅떠진 눈이 잠을 멀리 보내 버렸다.
집안 식구들의 잠자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혼자 가만가만 마라톤 물품을 챙겼지만,
자꾸 들락거리는 문소리 때문에 일어난 아내가 아침밥을 챙겨 주었다.

과거 봉일천만 생각하고 차를 몰고 갔으나, 자유로에서 고양시로 접어들면서 부터
헤매기 시작한 길 때문에 차를 가져 온 것이 후회의 연속 이였다.
하프 출발점인 성호아파트 부근을 어렵게 찾아 주차하고 배번호를 수령했다.
대회 주최측에서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들이 눈에 들어 왔다.
먼저 진행요원들이 많았고, 그들은 친절한 안내로 편안한 대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출발선상에 선 주자들은 나부터 변함없이 앞자리에서 출발 총성을 듣고 싶어
앞으로 앞으로 밀려 나가자, 진행요원이 이를 저지하기에 바빴다.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이 조금 먼저면 어떻고, 조금 나중이면 어떤가?
질서 있고 성공적인 대회가 되려면, 먼저 나부터 충분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제 출발신호가 약간 늦어지자, 빨리 총을 쏘라며 아우성이였다.
기나긴 페이스를 달릴 사람들이 왜 이리 조급할까?

1200여명의 하프 주자들이 총성과 함께 달려나갔다.
각자 자신만의 사연을 안고 앞을 향해 힘찬 레이스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마라톤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듯 다짐한다.
먼저 무사히 완주할 수 있게 해주고
능력이 된다면 완주자 선두 10%이내에만 들게 해달라고...

출발 후, 500m 정도를 달려가고 있을 때, 낯익은 주자가 나를 추월해가고 있었다.
지난 8월 삼척대회에서 얼마간 함께 뛰다가 마지막 고개 7부능선에서
무더위를 이기지못해 쓰러져 나를 무척 당혹하게 했던 동두천여중학생 선수였다.
지난 하남마라톤대회에서도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달렸었는데,
다시 또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하남대회 당시 나는 그 어린 선수의 실력을 과소평가 했었다.
그것은 삼척대회 레이스 중간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였다.
하남대회 당시 초반부터 내가 가볍게 추월해 갈 수 있었으나,
5km 이후 다시 추월 당해 끝내 따라잡지 못하고 말았다. 나중에 기록을 보니,
그 학생이 여자부분 1위로 내기록 보다 3분여가 빨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골인지점까지 그 여중생의 페이스대로 따라 가기로 결심했다.
만만하지 않은 페이스였다. 그러나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듯 했다.
중간 중간에 힘이 남아 추월해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지만
중후반을 위해서 콱 누르고 그 여학생의 페이스대로만 달렸다.
먼저 물스펀지를 제공하는 곳이 보였다.
당연히 물스펀지를 사용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지나쳐 갔다.
하지만 난 물스펀지를 집어들고 달리면서 얼굴과 목, 그리고 다리를 적셨다.
그러자 그 여학생과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힘을 내 다시 따라 붙었다.
숏피치 주법으로 힘의 균형이 몸 전체에 정확히 안배되어 그냥 산책하듯 가볍게 달렸다.
언제라도 스퍼트 해서 나를 멀리 따돌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레이스가 계속될수록 뒤따르는 것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끝까지 따라가기로 작정하고 이를 악물었다.
첫 번째 급수대가 보였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스퍼트를 해서 물을 마시면서 달리자,
그 학생은 또다시 여유 있게 급수대를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닌가?
물론 이제껏 달려온 거리가 5km정도밖에 안되었지만, 내 눈이 둥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물스펀지 공급대 역시 유유자적하게 그냥 지나쳐 가고 있었다.
어거지로 그 여학생을 따라가고 있던 난, 다시 물스펀지 내 얼굴을 문질렀다.
실력도 없는 사람이 한참동안 자신을 페이스 메이커로 삼는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제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끝까지 따라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다시 이를 악물었다.
약 8km지점 두 번째 급수대가 보였다.
무리한 레이스 탓인지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퍼트를 해, 반갑게 물 한 컵을 먼저 받아 들고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그 여학생을 보았다.
도도한 마라톤 신선인지, 아니면 마라톤을 위해 잠시 땅에 내려온 선녀인지
급수대 물을 쳐다보지도 않고 스르르 미끄러지듯 그냥 달려가 버렸다.
기어코 따라가야겠다는 기(氣)마저 꺾여 버렸다.
하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함께 달려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10km주자들의 출발점이 보였다.
1m 간격을 유지하고 달렸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안간힘을 다해 다시 따라 붙여보려고 했으나
사뿐사뿐 달리는 그 여학생의 뒷모습을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심박측정계를 대여받을 생각 이였는데, 하프지점에는 대여하는 곳이 없었다.
시계마저 가져오지 않아 달린 거리를 시간으로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기를 쓰고 따랐던 페이스메이커마저 놓쳐버리고 묵묵히 달리자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 했다.
그래서 달리기에 집중했던 것을 눈을 들어 주변 경치로 옮겼다.
주로에 한들거리며 피여 있는 코스모스가
청명한 가을 하늘과 어울려 소담스런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황금 들판에는 추수를 기다리는 벼이삭들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싸늘해진 온도에 곱게 물들일 나뭇잎들은 살랑거리는 바람에 몸을 흔들면서
아름다운 이 가을을 노래하고 있었다.
달리는 주로에는 분단의 아픔을 안은 채, 민족통일을 기원해온 통일로가
가쁜 숨을 내쉬며 달리는 통일마라톤 주자들을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었다.

통일이야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만
수십 년을 이산(離散)의 한을 안은 채 살아온 사람들에겐
통일보다 급한 게 헤어진 가족의 생사확인과 그들을 하루빨리 만나보는 것이 아닌가?
남북 양집권세력의 치적에 대한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언론매체통한
선전적인 만남이 아니라 서로가 충분히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조용하고 진실된 해후를 그들은 원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이산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장모님의 눈가에는 질곡된 역사로 얼룩진 눈물이 떠날 줄 모르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온한 가정에 위로 오빠 3명이 있었다.
큰 오빠는 일본 東京大를 갓 졸업하고, 둘째 오빠는 明治大 4학년에 재학중일 때,
6.25 한국전쟁이 발발되었다.
조국의 부름에 달려온 두 형제를, 큰 오빠는 지주의 아들이라며 저항 한번 못해보고
인민군에 의해 처형 당해 버렸고, 둘째 오빠는 인민군에 동조했다며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다음 날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셋째 오빠는 고등학교 졸업반 이였다.
스스로 국군에 지원 입대하여 철원전투에 투입되었나 행방불명 되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사선(死線)을 넘어 돌아온 국군포로들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함경북도 어디에 생존해 계신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전해듣게 되었다.
그러나 눈물로 안타까워 할 뿐, 만나볼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에 대해 이산가족으로 배려가 지금으로선 전혀 없기 때문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마라톤이라도 민초들의 이러한 아픈 사연을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어느 덧 임진각의 녹슬은 철마가 보였다.
골인지점에 많은 사람들이 양옆에 나열해서 들어오는 주자들을 보고 있었다.
순간 어떤 주자가 쏜살같이 나를 추월하여 골인점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주자는 어떤 마음에서 날 추월하고 싶었을까?
마지막에 한 주자라도 추월하여 이겼다는 승리감에 취하기 위해서 였을까?
그렇다면 얼마든지 추월해서 승리감에 도취해주기 바랄 뿐이다.
그러나 입상할 등수에 들지 못하고 어차피 서로가 힘든 레이스를 펼쳤다.
레이스 중도 아닌 결승점 2, 3m를 앞 둔 지점에서,
마지막 골인지점을 향해 황홀한 마음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자신의 욕심을 내세워 그 황홀한 기분을 상하게 해서야 되겠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상대를 충분히 배려해줄 수 있는 고운 심성을 가졌으면 한다.

골인지점에 있어야 할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끝내 내 기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할 뿐이였다.
진행요원에게 시간을 물어보니 11시 34분이라고 한다.
그것이 정확하다면 1시간 34분대일 것 같다.(공식기록 1:33:49초)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송버스에 올라탔다.
회송버스는 우리가 달렸던 역방향으로 삼송역까지 간다고 했다.
풀코스 주자들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의 모든 관심사가 풀코스 주자들에 있었다.
5km주자 출발점인 고가차도 밑에 이르렀을 때, 풀코스 1위 주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힘차게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온몸에 전율감마저 느껴졌다.
약 50m뒤에 2위주자가 보였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앞에서 이끌고 있는 대형 전자시계가 2시간 14분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거리가 5km!
2시간 40분 초반에 골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 안의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저건 인간이 아니야!"
선수도 아닌데, 풀코스를 2시간 40분대에 뛴다면 대단한 기록이 아닌가?
더구나 통일마라톤 구간이 구릉지가 많아 결코 쉬운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3위 주자는 약 1km 뒤에서 볼 수 있었다.
버스가 한참을 거슬러가자
중위권 주자들이 급수대에서 무엇을 먹으면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놀면서 달리는 구만!"
버스에 탄 사람들이 선두권을 볼 때와 달리 가벼운 대화로 이어졌다.

나도 10월22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선 생전 처음으로 풀코스를 뛸 예정인데,
어떻게 달려야 할 지 현제로선 난감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까지 달린 것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적어도 걷지는 않고
달리면서 완주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을 뿐이다.

청명한 이 가을! 나도 한번 일내보고 싶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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