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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한반도단독횡단(6) 포기는 한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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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식 작성일00-10-09 11:34 조회1,1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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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횡성경찰서

횡성읍내에 들어서면서 병원을 찾으려 했다. 재발한 발목 부상보다도 새로운 무릎통증으로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듯 했다. 삼거리가 나왔다. 왼편으로는 병원이 보였고, 오른편으로는 둔내로 가는 횡성경찰서방향이었다. 좌회전하려는 순간 정해성님의 전화가 왔었다. 나 이제 포기하겠노라고 했더니, 어떻게 마련된 기회인데 약한 소리하지말고 끝까지 완주하라는 질책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평소에 약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이번에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준비한 소염진통제를 4알을 삼켰다. 그리고 소염진통로션을 하체 구석구석에 발랐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보는거야! 아래입술을 깨물고는 일어섰다. 뛰지 못한다면 속보라도 걸어가자고 했다.

09:00 둔내/새말IC 갈림길

다 죽어갈 것만 같았던 몸에서 소생의 힘이 나와서 무척 빨리 걸어나갔다. 가랑비 빗방울이 커져 제법 굵어졌다. 배가 매우 고팠다. 음식점은 따로 없었다. 둔내/새말IC 갈림길앞에 매점이 있어서 쵸코파이 6개를 샀다. 4개를 요기하려고 먹어치웠다.

10:00 둔내-19KM

갈림길에서 기나긴 오르막이 다시 나왔다. 내리막을 내려오자 작은 마을 거치면서 나아갔다. 잠이 쏟아졌다. 길가에 있는 버스정류소 가건축물에서 앉아서 졸았다. 무슨 소리가 들려서 깨보니 할아버지 한분이 옆에 앉아서 나를 불쌍한 듯이 쳐다보고 계셨다. 민망하여 벌떡 일어나 고개 한번 숙이고 황망히 나섰다.

11:00 황재산 입구

또 졸음이 쏟아졌다. 걸으면서도 졸다가 지나쳐오는 차량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어느 농가의 허름한 창고에 들어가 쪼그려 앉아 잠시 졸았다. 다시 일어나 길을 재촉했다. 59분에 조영관님의 안부전화가 있었다. 이제 졸음은 사라졌고 기분도 상쾌하여 자신있게 완주하겠노라고 말씀드렸다. 드디어 황재산 입구였다.

12:00 둔내-12KM

끝없는 구비구비의 가파른 산이었다. 저 구비만 돌면 정상일 것이라 생각하면, 올라온만큼의 구비가 또 있고.....낮인데도 오가는 차량이 매우 드물었다. 가끔씩 마주치는 것은 갑작스런 사람의 출현에 놀란 뀡가족들의 혼비백산하는 소리뿐...이제 올라올만큼 왔으리라는 표시의 둔내-12KM는 겨우 중턱을 가르킬 뿐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때의 실망감.....

13:00 황재산 정상 (둔내-8KM)

정말 끝없는 구비길의 연속이었다. 점점 내자신이 미쳐가는 듯한 착각에 접어들었다. 꾸역꾸역 다올라서서 내리막길이 보여 이게 정상이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시는 것도 잠시, 다시 오르막 구비구비가 5~6개가 더 나왔다. 진정 '황당한 산'이었다. 그러나 시간과 두 발걸음으로 정상에 다다랐다. 여기는 횡성과 둔내의 경계라는 표시가 있었다. 윤장웅님의 현재 위치확인전화가 있었다.

14:00 둔내-3KM

이제는 정말 오래간만에 맛보는 내리막다운 내리막이었다. 가랑비가 그쳐 가는 듯 하더니 이내 햇빛이 쨍쨍 비추기 시작했다. 다시 졸음이 쏟아졌다. 버스정류소 간이건축물에서 여느 때와 같이 앉아서 잠시 졸았다.

15:00 둔내면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완전히 잠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했지만,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태기산(1261M)을 넘어야하기에 다시 일어섰다. 겨우 둔내면에 도착했다.

16:00 둔내면

배도 고프고, 무릎과 발목 부상뿐만 아니라 사타구니 부근의 피부가 마찰로 인하여 허물어져 너무 아팠다. 안흥찐방집에서 찐빵 10개를 구입하고 즉석에서 4개를 해치웠다. 나머지는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약국으로 갔다. 소염파스, 진통제, 그리고 연고를 구입했다.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파스로 하체를 도배하고, 진통제를 4알 삼키고, 그리고 연고를 발랐다. 서경석님이 전화로 무사완주를 기원해 주셨다. 둔내를 박차고 일어섰다.

17:00 봉평-23KM

평탄한 길의 연속이었다. 조금은 지루했다. 가도가도 태기산은 나타나지 않아 초조해져갔다. 지난번 한반도횡단팀원들이 마을사람들로부터 이 산의 소문(산짐승, 무장공비의 출몰 등으로 낮에도 오르기 꺼린다는 것...)을 들은지라 해가 떨어지기 전에 넘고 싶었지만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8:00 화동리 (태기산입구)

해는 점점 뉘웃뉘웃 산자락 뒤편으로 떨어져 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는 할 수가 없었다. 어제밤처럼 정면돌파를 각오했다. 산입구에서 헤드랜튼용 건전지를 구입하여 새로 교체하였다. 두손을 불끈 쥐었다.

19:00 태기산 중턱

초승달이 처연하게 떠 있었지만 태기산의 어둠에 가려 이내 사라졌다. 순식간에 어둠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부지런히 땀을 흘리며 쉴새없이 기어 올랐다. 강원도는 저녁 이후만 되면 오가는 차량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뚝 끊어져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별로 두려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이 어둠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어떠한 형상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시작되는 듯하다. 귀신, 도깨비, 괴물 등의 형상을 보이는 것도 자세히 보면 어둠에 의한 일종의 착시현상일 뿐이다. 즉 모든 것은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음을 자연과 합일하듯 편안히 가지면 두려움은 이내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어둠이 만든 아름다운 모습에 점점 매료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20:00 태기산 너머 중턱(봉평-12KM)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하더니 가끔은 무리를 지어 내 얼굴로 몰아치기도 했다. 두려움 대신에 오히려 양팔을 벌리고 긴숨을 들이켰다. 구비구비 계속 올라갔다. 멀리 불빛 하나가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궁금하여 계속 올라가니 이내 태기산 정상이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것 같았다. 그 불빛은 소형트럭에 음식을 판매하는 일종의 포장마차인데, 한남자가 혼자서 손님도 없고 하니 소주에 안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그와 나는 한번씩 힐끔 쳐다봤을 뿐 각자의 행동을 계속했다. 정해성님에게 태기산정상에 도착했다는 음성메세지를 남겼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을 가다가 다시 오르막, 그리고 기나긴 내리막을 터벅터벅 내려갔다.

21:00 봉평-8KM

어쨌던 태기산을 야밤에 혼자서 무사히 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뿌듯했다. 44분에 봉평-8KM 표시를 보았다. 이제 태기산밑의 동네 불빛이 꽤나 밝아보였다. 곧 시멘트공장의 작업장 불빛도 휘영찬란하였다. 조금 더 걸어내려가니 이제 산끝자락이 나왔다. 정해성님과 전화하니 채흔호님이 직접 차를 몰고 현재 둔내에서 태기산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곧 만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러면 식당앞에서 기다릴테니 오면 같이 저녁을 하자고 말씀 전해라고 부탁했다.

22:00 태기산 밑 식당

식당앞에서 잠시 기다리니, 채흔호님게서 오셨다. 너무나 고마웠다. 휴일을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였다.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맛있게 함께 했다. 태기산을 넘을 때 차안에 있어도 안개 때문에 섬뜩했는데 어떻게 혼자서 넘어왔는지 신기해 하셨다. 이런저런 소담을 나누고, 내가 진통제가 떨어진 것을 알고는 먼저 봉평에 있는 약국에서 구입해주겠다고 먼저 차를 몰고 나가셨다. 나도 뒤따라서 식당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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