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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한여름밤의 닭서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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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1-02-06 02:28 조회556회 댓글0건

본문

*****서 론****
글 전개과정에서 비속어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곳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의를 달거나 비난하실 분들은 더이상 읽지 마시고
지금 빠져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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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의 집에선 마당에다 모깃불을 피워놓고 식구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우리는 밤이 더 깊어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새벽 2시!
풀벌레들마저 잠들어 버렸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작전 개시를 위해 마을 쪽으로 우리는 다시 서서히 다가갔다.
마을회관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도 이제 보이지 않아 마을 안은 정적(靜寂)에 빠져 있었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우리들의 발소리만 돌담에 부딪치고 있었다.
드디어 그의 집 앞에 도달했다.
몇 시간 전과 달리 마당의 모깃불은 꺼져 있었다.
누구 누구가 닭을 잡으러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재윤이야 자신이 직접 가서 잡기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선발되었지만
그를 보조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현우야! 니가 먼저 말했은 깨, 재윤이랑 같이 가부러야 쓰것다."
순간 나는 오금이 저려왔다.
만약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무서운 재윤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닭서리를 주창했던 내가 할 수 없이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은 밖에서 망을 보기로 하고
나와 그는 담쟁이 넝쿨이 무성하게 우거진 담을 넘어서 닭장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비록 안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할지라도
자꾸 얼굴이 확끈거리면서 등 가슴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철망으로 된 닭장 문을 열고 닭장 안으로 들어가자
닭들은 대나무로 된 받침대위에서 일렬로 나란히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다.
컴컴했지만 그는 어떤 것이 그 말썽을 일으키는 수탉인지 아는 듯 했다.
인기척을 알아차린 닭들이 가벼운 울음소리를 냈지만
소리가 별로 크지 않아 안채 까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발바닥이 간질거리면서 금방 소변이 나올 것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그가 덥석 닭 한 마리를 잡자, 모든 닭들이 놀라 움찔거리면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내 얼굴은 확 달아오르면서 모든 머리카락이 일시에 확 서는 것만 같았다.

"아야, 이거 잡고 있어야! 한 마리 더 잡아부러야 쓰것다."
"오매! 안 되야, 그냥 빨리 가장께!"
"아야 다섯 명이나 된디 어떻게 이거 한 마리 갖고 되것냐?"
"그래도!......"
그는 기어코 한 마리 더 잡아야 된다고 우기면서 다시 닭장 안을 헤집자
닭들이 이제 제법 큰 소리를 내며
우리가 이미 열어놓은 닭장문을 통해서 밖으로 도망쳐 버리고 있었다.
겁이 난 우리는 한 마리 더 잡는 것을 포기하고
대문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들고가던 덩치가 큰 장닭이 후닥닥하면서 날갯짓을 해버렸다.
깜짝 놀란 나는 순간적으로 닭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 수탉은 날개를 털면서 쏜살같이 멀리 도망쳐버렸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어이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재윤이는 다시 마당에 있는 다른 닭들을 잡으려 갔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먼 산 보듯이 가만히 있던 닭들도
잡으려 하면 휙 도망가버려서 쉽게 잡히지가 않았다.
개라면 개 이름이라도 불러서 달랠 수 있으련만
닭들은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당을 돌면서 닭 먹이 줄 때 부르는 소리로
"쭈주우 쭈주우......"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 나쁜 닭일지라도
한밤중에 먹이 주는 소리에 솔깃하지는 않았다.

그가 마당에서 닭 쫓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 나는 마음이 느긋해졌다.
설마 무서운 그의 아버지가 쫓아 나온다 할지라도
자기 아들이 닭을 부르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가 슬라이딩을 하면서 닭 한 마리를 낚아챘다.
날개를 심하게 파다닥 거리며 화급하게 울어댔다.
암탉인 것 같았다.
"누구야! 누구!"
무시무시한 그의 아버지 목소리 였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대문 쪽을 향해서 도망쳤다.
순간적으로 외등(外燈)이 환하게 켜지면서
"도... 도둑이야! 도둑! 도둑놈 잡아라!"
팬티차림으로 안방문을 박차고 토방 쪽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잡았던 닭을 던져버리고 대문 밖으로 내달음질 쳤다.
"도둑이야! 도둑! 도둑놈 잡아라!"
집안에서 그의 누나와 어머님이 함께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밖에서 망을 보고 있던 친구들은 벌써 어디로 도망쳐버리고 없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발이 땅에 닿는지 어쩐지 감각이 없었다.
등에다 불을 지펴놓은 것처럼 뜨거운 것이 느껴져와 숨을 내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헐떡거리기만 할뿐, 그 자리에서 뛰는 것만 같았다.
오줌과 변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처럼 밑이 무거우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우리 둘은 가까스로 마을을 벗어나 논둑길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갔다.
다행히 내가 조금 앞서고 그는 내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얼마 거리를 두지 않고, 우리 쪽을 향해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었다.
"저 놈들 잡아라! 저 도둑놈들!"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논인지 구분이 안되었다.
달리기 꼴등대장 우리 둘이 기를 쓰고 뛰어도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정신이 몽롱해진 상태에서 아무리 달려도 역부족인 것 같았다.
이제 화급해져 눈물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만약 저 으시시한 사람에게 잡히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눈앞이 아득하기만 했다.
순간! 이상하게 걸쭉한 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리 오기만 와 봐! 죽여버릴테닌까."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 앞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푹석 주저앉아 울어 버리고 싶었다.
"너, 이리 와! 죽여버릴테닌까."
상대를 위협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다시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재윤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곧 잡힐 것 같으닌까
몸을 뒤로 획 돌려 돌을 집어던지면서
걸쭉한 목소리로 변성(變聲)해서 그의 아버지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팬티 차림으로 우리를 향해 쫓아오다가
그가 협박하는 소리에 겁을 먹고 10여미터 전방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이리 와! 이리 오라닌까! 야! 칼 좀 이리 가져와라! 콱!......"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머뭇거리다가 이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기세가 등등하게 오른 그는 한 손에 주먹만한 돌을 들고서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가면서 더욱 걸쭉한 목소리로
"이리 와봐! 이리 안와!"
"오메! 알았당께라우! 나 시방 가요."
그의 아버지는 왔던 길로 슬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리 오라닌까! 이리 와! 죽고 싶으면 이리 와!"
"아이구메! 살려주시랑께라우! 나 지금 가분당께요."
팬티만 달랑 걸친 그의 아버지는 줄행랑쳐서 마을쪽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위험에서 벗어난 우리는
다시 감내다리를 향해 농로(農路)를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등을 두드리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침울해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 이슬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확성기(擴聲器)에서

"예,,, 부락민 여러분께, 이 늦은 밤중에 한 말씀 알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마을에 칼을 든 떼도둑놈들이 들어와서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는 문단속을 잘하시고
남자들은 각자 몽둥이와 식칼을 하나씩 들고 동각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재윤이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옴메! 이게 뭔 소리 다냐?"
"떼도둑 놈이라니, 아 시방 우리한테 하는 소리여?"
"아, 그래!"
"아니, 닭도 못 가져오고 던져 부렀는디, 무신 떼도둑 놈에, 칼은 또 무슨 놈에 칼이 당가!"
"아, 내가 알어!"
그러나 또다시 화급한 목소리로 같은 내용이 확성기를 통해서 계속 반복 방송되고 있었다.
"아야, 안되것다 빨리 튀자 튀어!"
한밤중이라 유난히도 크게 들리는 확성기 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정신없이 감내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재윤이와 나는 맨 뒤로 쳐져서 달려가고 있었다.
뒤에서 금방 누가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 누구를 협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빨리 이 농로(農路)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핑 달아나 버린 다른 애들과 달리, 그와 나는 뒤쳐져서 계속 헤매기만 했다.
그럴수록 온몸에 소름이 끼쳐와 발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다리마저 후들후들 떨려서 이제 곧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저 앞에서 서치라이트를 켠 차가 우리 마을 농로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순간! 신고를 받은 경찰 차량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엎드려 통곡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벼가 심어진 논으로 뛰어들어 고개를 처박고 엎드려 버렸다.
깜짝 놀란 개구리가 얼굴에다 오줌을 핑키고 달아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 가슴은 곧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고, 달아오른 얼굴은 욱신거리기만 했다.
그 때,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심하게 뛰고 있는 내 심장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차량이 휙 지나 가버린 소리가 들려오자,
슬며시 고개를 들어 보았다.
어둠 속에서 선을 그리며 한가하게 날고있는 반딧불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감내 다리에 이르자, 멀리 동네 쪽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많은 후레쉬 불빛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환하게 서치라이트를 켠 경찰차가 골목마다 휘젓고 있었다.

우리는 겁이 나서 다시 동네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뽕나무밭에 숨어서 한여름의 사나운 모기와 싸우면서 밤을 지샐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터벅터벅 걸어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이르자, 큰 형수님과 아랫집에 작은 형수님이 놀란 눈으로 내게 다가오시더니
"도련님! 어젯밤에 어디에 계셨소?"
순간, 가슴이 뜩끔해왔지만 고개를 숙이면서 태연하게
"예, 읍내 친구들 집에서 놀았어요."
"아이구메 다행이네!"
"왜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말도 말아 부시오, 어젯저녁에 동네 집집마다 도둑이 들어갔고 난리가 나부렀어라우!"
"오매매! 무서워서 우리 죽는 줄 알아 당께!"
작은 형수님이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송내양반(재윤이 아버님 택호(宅號)임) 집에 소도둑이 들어갔고 쫓아간께로
도둑놈들이 겁나게 큰 식칼을 들고 댐벼부러서 혼나부렀다고 안하요안."
"그래요! 누구 다친 사람은 없었어요?"
"말도 마시오, 동네 사람들이 몽뎅이에다 식칼을 묶어 갖고 그 놈들을 쫓아부러서 다행이
지......"
그러자 옆에 서 계시던 작은 형수님은
"읍내에서 경찰차까지 와서 동네를 뒤져부렀당께요! 옴메! 우리는 하두 무서워서 잠자다
말고 큰집으로 피난와부렀서라우."
그 때 작은 방문이 열리면서
"아야, 내가 몽뎅이를 들고 그 도둑놈들을 잡으러 갔는디 말이여,
도망가불고 없드라야."
흥분된 큰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도 그날 밤에 우리가 저질렀던 떼도둑 소동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빠져 있다.
아마, 공소시효(公訴時效)는 이미 지났을 텐데......

오늘 아침 재윤이 아버지인 송내양반의 부음(訃音)을 알리는 전화 연락을 받고
지금은 마을 이장(里長)이 된 그의 모습이
생생한 영상이 되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인생은 한번 왔다 가면 잊혀지게 마련이지만
그와의 아름다운 우정은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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