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가방을 챙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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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1-02-22 12:26 조회91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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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旅行)이란 일상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체험하기 위해 어떤 곳으로 떠나는 것이지만
내게는 그것이 한 곳에 오래 머물어 있지 못 하는
방랑자적 기질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변해 있다.
그것은 단순히 떠돌기를 좋아하는 타고난 습성(習性) 때문인가?
아니면 거침없이 돌아 다녀야만 정신이 맑아지는 떠돌이 병인가?
여하튼 이곳을 가서 보면, 저곳이 궁금해지고
다시 저곳에 가서 보면, 또 다른 곳이 호기심으로 무장한 채 나를 유혹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그 호기심에 포로가 되어 이리저리 주유(周遊)할 수밖에 없다.
마라톤에 빠지기 전에도
나는 주말마다 배낭을 챙겨서 산으로 산으로 떠돌아 누볐다.
산이 있으매, 그대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곳으로 갔다.
가다가 길을 잃어 버려도 개의치 않고 숲속을 헤매며 다녔다.
어떨 땐, 길을 잃고 숲 덤불 속을 헤치다 보면 희미한 길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그것은 한없이 우거지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나 있을 때가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곳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을까?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길은 사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짐승들의 통로를 길로 착각하고 따라간 것이다.
산 속에서 그들도 그들만의 길을 가지고 있었다.
얼어붙은 냉전(冷戰)이 온화한 해빙(解氷)을 기다리고 있는지
몇 해 전부터 북한을 향하는 길들이 터지고 있다.
굳게 엉켜있는 철조망은 아직 여전하지만
뱃길을 따라 열려있는 금강산 길은
그 해빙의 훈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타고난 방랑자적 기질을 채우기 위해
마라톤을 핑계삼아 내일(2/23일)은 금강산으로 향하게 된다.
그 동안 수없이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곳 이였으나
단순히 관광을 위해 그곳을 찾는다는 것이 어쩐지 사치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라톤이 기획되어 있는 만큼
별 부담 없이 참가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라톤은 내게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함께 향유(享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마라톤은 산행(山行) 도중에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내게 길을 열어 준 동물들의 통로(通路)처럼
나와 금강산을 잇게 해주는 길이 되었다.
이제 준비할 것은 거의 다 챙겨서 넣어 둔 가방을
지금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가방!
내 어릴 적에 그것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몇 명정도만 가방을 메고 다녔고,
대부분의 애들은 보자기로 책을 싸 가지고 다녔다.
나 역시 보자기에다 책을 싸서 허리나 어깨춤에 비스듬히 묶어 뛰어 다니곤 했었다.
학교에 지각이라도 할 것 같으면, 제법 빠른 달리기로 달려가야 했었다.
그러면 양철로 된 필통 속의 연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박자를 맞춰 주었다.
그러나 그런 날,
수업 시간에 필통을 열어 연필을 꺼내보면, 대부분의 연필심들이 부러져 있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이로 연필 뚜껑을 만들어 씌워서 연필심을 보호해야 했었다.
그렇기에 책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애들이 한없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그것은 가방 가운데에 연필들을 안전하게 꼽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들고 다니는 애들은
책보자기를 메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모양새가 좋아 보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어머님에게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그러나 넉넉하지 못한 시절이라 500원 정도 하는 가방 값이 상당히 부담이 되었다.
당시 국민학교 1학기 기성회비가 300원 내외였던 것에 비하면
가방 값은 꽤 비싼 편에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큼 부유한 집의 애들 외에는
거의 대분분이 책을 보자기에 싸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가방을 들고 다니면 다른 애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당연했다.
나도 그것을 들고 다니고 싶었지만 3학년 때까지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선 지 그것을 들고 학교 가는 꿈을 자주 꾸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님께 그것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그러면 어머님은 "훗 장날 돈 생기면 사주마." 약속했다가 그냥 지나 치셨다.
또 다음 장날이 되었건만 그것은 내게 오지 않았다.
"가방 좀 사주랑께! 또 안 사와 부렀능가?"
"그란디 말다, 가방 장사가 죽어 불고 없드라! 후제, 다른 가방 장사가 오면 사 주마!"
그러면 나는 한 동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가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그것 때문에 다시 또 어머님을 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어머님은 소 풀을 잘 먹이고 돼지에게 줄 고마니떼를 매일 한 망태씩 베어오면
다음 장날, 그것을 사오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 가방을 들고 학교 갈 날만 기다리면서 힘든 줄도 모르고 풀을 베러 다녔고
감내로 가서 정성스럽게 소 풀도 먹였다.
그리고 5일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장날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지면서
손꼽아 그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 내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그것을 들고 학교에 가면, 다른 친구들이 보고 얼마나 놀랄 것인가?
그러면 나는 어느 정도 목에다 힘을 주고 으시대면서 걸어야 할 것인가?
그것을 들고 다닐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모든 친구들에게 내 가방에 대한 자랑도 미리 해놓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날이 돌아 왔고, 어머님은 약속대로 읍내에서 가방을 사오셨다.
그날 저녁 나는 그것에다 몇 번을 반복해서 책을 넣어 보았다.
그것이 내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새 누가 와서 그것을 가져가 버릴 것만 같아 불안하기까지 했었다.
잠자리 들면서 가방을 이블 속에다 가만히 숨겨 놓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들고 학교에 갈 생각 때문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워 그것만 만지작거리다 끝내 새벽 닭울음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챙겨 둔 가방을 보면서 나는, 이번 마라톤대회가 단순히
내 방랑자적 기질을 채워주기 위한 방편으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분단의 아픔을 넘어 통일의 길을 열어 줄 마라톤 여정(旅程)으로 여기고 싶다.
치열한 이념경쟁의 희생물로
우리 민족은 뼈아픈 전쟁의 상흔을 경험하며 방황해야 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념적 갈등에 불과 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상통(相通)할 수 있는 길을 잃고 서로가 헤매왔지만
이제 우연히 접하게 된 동물들의 통로처럼
마라톤이 민족의 비원(悲願)을 풀어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오늘 밤, 나는
설레는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다.
그 옛날 책가방을 만지작거리다 새벽 닭울음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송파세상 김현우
새로운 것을 체험하기 위해 어떤 곳으로 떠나는 것이지만
내게는 그것이 한 곳에 오래 머물어 있지 못 하는
방랑자적 기질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변해 있다.
그것은 단순히 떠돌기를 좋아하는 타고난 습성(習性) 때문인가?
아니면 거침없이 돌아 다녀야만 정신이 맑아지는 떠돌이 병인가?
여하튼 이곳을 가서 보면, 저곳이 궁금해지고
다시 저곳에 가서 보면, 또 다른 곳이 호기심으로 무장한 채 나를 유혹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그 호기심에 포로가 되어 이리저리 주유(周遊)할 수밖에 없다.
마라톤에 빠지기 전에도
나는 주말마다 배낭을 챙겨서 산으로 산으로 떠돌아 누볐다.
산이 있으매, 그대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곳으로 갔다.
가다가 길을 잃어 버려도 개의치 않고 숲속을 헤매며 다녔다.
어떨 땐, 길을 잃고 숲 덤불 속을 헤치다 보면 희미한 길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그것은 한없이 우거지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나 있을 때가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곳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을까?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길은 사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짐승들의 통로를 길로 착각하고 따라간 것이다.
산 속에서 그들도 그들만의 길을 가지고 있었다.
얼어붙은 냉전(冷戰)이 온화한 해빙(解氷)을 기다리고 있는지
몇 해 전부터 북한을 향하는 길들이 터지고 있다.
굳게 엉켜있는 철조망은 아직 여전하지만
뱃길을 따라 열려있는 금강산 길은
그 해빙의 훈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타고난 방랑자적 기질을 채우기 위해
마라톤을 핑계삼아 내일(2/23일)은 금강산으로 향하게 된다.
그 동안 수없이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곳 이였으나
단순히 관광을 위해 그곳을 찾는다는 것이 어쩐지 사치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라톤이 기획되어 있는 만큼
별 부담 없이 참가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라톤은 내게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함께 향유(享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마라톤은 산행(山行) 도중에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내게 길을 열어 준 동물들의 통로(通路)처럼
나와 금강산을 잇게 해주는 길이 되었다.
이제 준비할 것은 거의 다 챙겨서 넣어 둔 가방을
지금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가방!
내 어릴 적에 그것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몇 명정도만 가방을 메고 다녔고,
대부분의 애들은 보자기로 책을 싸 가지고 다녔다.
나 역시 보자기에다 책을 싸서 허리나 어깨춤에 비스듬히 묶어 뛰어 다니곤 했었다.
학교에 지각이라도 할 것 같으면, 제법 빠른 달리기로 달려가야 했었다.
그러면 양철로 된 필통 속의 연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박자를 맞춰 주었다.
그러나 그런 날,
수업 시간에 필통을 열어 연필을 꺼내보면, 대부분의 연필심들이 부러져 있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이로 연필 뚜껑을 만들어 씌워서 연필심을 보호해야 했었다.
그렇기에 책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애들이 한없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그것은 가방 가운데에 연필들을 안전하게 꼽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들고 다니는 애들은
책보자기를 메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모양새가 좋아 보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어머님에게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그러나 넉넉하지 못한 시절이라 500원 정도 하는 가방 값이 상당히 부담이 되었다.
당시 국민학교 1학기 기성회비가 300원 내외였던 것에 비하면
가방 값은 꽤 비싼 편에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큼 부유한 집의 애들 외에는
거의 대분분이 책을 보자기에 싸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가방을 들고 다니면 다른 애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당연했다.
나도 그것을 들고 다니고 싶었지만 3학년 때까지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선 지 그것을 들고 학교 가는 꿈을 자주 꾸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님께 그것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그러면 어머님은 "훗 장날 돈 생기면 사주마." 약속했다가 그냥 지나 치셨다.
또 다음 장날이 되었건만 그것은 내게 오지 않았다.
"가방 좀 사주랑께! 또 안 사와 부렀능가?"
"그란디 말다, 가방 장사가 죽어 불고 없드라! 후제, 다른 가방 장사가 오면 사 주마!"
그러면 나는 한 동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가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그것 때문에 다시 또 어머님을 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어머님은 소 풀을 잘 먹이고 돼지에게 줄 고마니떼를 매일 한 망태씩 베어오면
다음 장날, 그것을 사오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 가방을 들고 학교 갈 날만 기다리면서 힘든 줄도 모르고 풀을 베러 다녔고
감내로 가서 정성스럽게 소 풀도 먹였다.
그리고 5일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장날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지면서
손꼽아 그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 내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그것을 들고 학교에 가면, 다른 친구들이 보고 얼마나 놀랄 것인가?
그러면 나는 어느 정도 목에다 힘을 주고 으시대면서 걸어야 할 것인가?
그것을 들고 다닐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모든 친구들에게 내 가방에 대한 자랑도 미리 해놓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날이 돌아 왔고, 어머님은 약속대로 읍내에서 가방을 사오셨다.
그날 저녁 나는 그것에다 몇 번을 반복해서 책을 넣어 보았다.
그것이 내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새 누가 와서 그것을 가져가 버릴 것만 같아 불안하기까지 했었다.
잠자리 들면서 가방을 이블 속에다 가만히 숨겨 놓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들고 학교에 갈 생각 때문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워 그것만 만지작거리다 끝내 새벽 닭울음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챙겨 둔 가방을 보면서 나는, 이번 마라톤대회가 단순히
내 방랑자적 기질을 채워주기 위한 방편으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분단의 아픔을 넘어 통일의 길을 열어 줄 마라톤 여정(旅程)으로 여기고 싶다.
치열한 이념경쟁의 희생물로
우리 민족은 뼈아픈 전쟁의 상흔을 경험하며 방황해야 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념적 갈등에 불과 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상통(相通)할 수 있는 길을 잃고 서로가 헤매왔지만
이제 우연히 접하게 된 동물들의 통로처럼
마라톤이 민족의 비원(悲願)을 풀어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오늘 밤, 나는
설레는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다.
그 옛날 책가방을 만지작거리다 새벽 닭울음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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