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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눈감고 귀막고 코막고 달려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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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강하 작성일02-01-18 12:24 조회6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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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고 귀막고 코막고 달려본 하루>

지난 주말 저녁,
유등천 26km 뛰는데 무지 힘들었다.
갈 때는 몰랐는데, 땀 흘리며 잘 달렸는데
돌아 올 때 맞 바람에 식은 땀이 체열을 앗아가 추워서 혼났다.
그 날은 너무 추웠다. 손, 발이 얼얼 얼었다. 손가락이 잘 펴지질 않았다.
즐달이고 나발이고 죽는 줄 알았다. 풀 코스 저리 가라 였다. 그런데도 감기 안 걸리길 천만다행이다.
다음부터 추운 날 뛸 때는 좀 둔탁할지라도 스키장갑에, 파카에 츄리닝바지까지 단단히 입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2002/1/15 저녁에 웬 떡인가?
이상 기온?
비 온 뒤의 포근한 날씨라니?
그래. 때가 왔다. 놓칠 수야 없지. 달려보자.
부슬부슬 내리는 는개비, 짙은 안개 속일지라도
이 포근한 날씨를 놓칠 수야 없지. 아암 그렇지 놓칠 수야 없지.
허리쉑에 귤 세 개, 500ml 보리차 넣고 폼나게 졸티에, 졸바지에, 빵모자 쓰고 집을 나서 본다. 밀린 숙제하듯이...
갑천까지 1km를 두 팔을 뻗어보며, 두 다리는 종종걸음으로 풀어주고
건널목 앞에서는 스트레칭으로 사지 육신을 고무줄처럼 당겨보며
천천히 달리며 아직은 느끼한 내 몸매, 자세를 반성하여 보며
구름다리를 건너니 갑천이다. 19:00
오면서 준비운동 끝.
만년교 깃점 2km이다.
나 혼자서
유성구청 앞길은 "갑천 좌안 대마클로"로,
이곳 월평동 쪽은 "갑천 우안 시민로"로 명명했다. 좋은 날씨인데 사람이 별로 없다.
양 쪽 다 100m마다 표시를 하여 놓아 달리기에 좋다. 그 많던 조깅 족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만년교를 향하여 가보니 비가 제법 오긴 온 모양이다.
알몸을 드러냈던 강바닥이 빗물로 흥건하다.

저 빗물처럼 한번 걸팡지게 달려나 볼까?
하늘은 이래서 공평한가? 가뭄에 단비이다.
도솔봉, 내원사, 마봉재, 두루봉, 승적고개, 서당골을 간직한 월평공원 아래
만년교에 다다르니 지하철 공사로 엉망이다.
이 조그만 도시에 지하철이 무슨 소용이람!
준공하고서도 수조 원의 빚더미에 앉아 여름철 견공(犬公)처럼 헉헉댈 지방행정,
앞이 보이는데는 무데뽀로 강행하는 우매한 인간들이여!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이 필요한 도시는 수도권과 부산 정도가 아닐까?
갑천대교를 지나 원점으로 돌아오니 4km.
도룡동 매봉산(144.8m), 우성이산(179.2m)바라보며
대덕대교, 엑스포 다리를 지나면서 보니 온화한 날씨에 그 많던 겨울 철새들도
벌써 북방으로 이동하였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갑천과 유등천이 합류하는 둔산대교(6.75km)
유등천 방향으로 돌아드니 약 200여m의 어수선한 맨땅이 나온다.
그러나 조금 가니 길바닥에 복수동 깃점 8.7km의 하얀 글씨가 반겨준다.
평송수련원, 샘머리를 지나니 한밭대교(8.7km)

다시 보라, 남선말을 지나니 용문교 숲밑들이다.(9.7km)
이쯤에 이르면 식장산, 보문산이 보여야하는데
짙은 안개에 도시의 가로등만 희부옇게 희부옇게 나의 벗이 되어 준다.

다시금 달리니 서부경찰서 앞 수침교(10.7km)
쓰레기를 뒤집어 쓴 유등천이 안타깝다.
쓰레기에 혹사당하여 중간중간 쌓여있는 모래들도 시커멓다.
이 길은 별로 달리고 싶지 않다.
오늘은 안개 속이라서 그냥 눈감고, 귀막고, 코막고 달려본다.

이제 태평동 신흥 아파트 단지들이 주변의 나지막한 건물들과 대비되어
신흥 종교 교단처럼 깔끔함을 자랑하는 변동 가장교(11.7km)이다.
다시 도마동 태평교를 지나니(12.7km) 유등교가 보인다.

어릴 적, 대전 올 때면 으레이 거쳤던 서부 시외버스터미널이 보인다.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그 규모로 남아있고
주변의 건물들도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도마교(13.7km)를 지나니 호남선이 굉음을 내며 지나는 유등천교이다.

투수콘으로 깔끔히 정비된 주로는 달리기에 좋다.
상류를 향하여 계속 나아가니 물이 맑아져 공기조차 신선한 것 같다.
혜천대학 아래 버드내교에 이르니(14.7km) 깃점 600m를 남겨 놓고
주로가 막혀 있다. 하수구 공사인지, 뭔지로 가설 울타리가 앞을 막는다.
지난 번 추운 날 왔을 때는 상류 복수교 아래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왁자지껄하던 모습이 선하다.

여기서 귤 한 개, 물 한 모금 마시고 돌아선다.
오던 길도 좋다. 모처럼 흥건한 땀을 흘려 본다.
흥건한 땀이 마치 가뭄에 단비처럼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애증과, 갈등과 욕망을 배출하듯
모오든 더러움이 내 육신에서 빠져 나가듯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린다.
쉬엄쉬엄 돌아오니 21:25 도합 25.4km(2시간 25분 소요) 잘 달렸다.
저녁밥이 너무나 맛있다.
그러나 이 때 절제해야 한다. 소나기밥은 곧 살로우만으로 간다.
흐흠! 언제나 70kg 이하로 내려가나? 밥이 너무 맛있다.
동아 전까지 틀렸나? 그래도 해봐야지.


<귀향 그리고 슛도다나의 슬픔>

>나는 천안통으로 내다봤지.
>머언 미래에 미륵불이 도래하는 날,
>마하아카사파가 계족산을 열고 다시 나와
>미륵에게 부처의 가사를 전하는 모습을... 그 장엄한 모습을... 그 엄숙한 모습을...

- 아직 3겹의 꿈속에 있음 -

5. 교화 45년
그리고 나는
우파댜아야(和尙=성전을 가르쳐 주는 스승)로 하여금 구족계를 받기까지
범행기(梵行期, 브라흐마 차르하)를 거쳐
가주기(家住期)를 거쳐
임주기(林住期)를 거쳐
유행기(遊行期)를 거치게 하고
10계만을 지키는 사미(沙彌:시라마네라)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어 250계를 지키는 비구(比丘)가 되게 하여
출가수행자는 걸식(乞食)에 의하고
출가수행자는 분소의(糞掃衣)에 의하게 하고
출가수행자는 수하좌(樹下座)에 의하게 하고
출가수행자는 진기약(陳棄藥)에 의하게 하고
비가 오는 3-4개월 간 만물의 싹이 건강하게 자라나고
동물들도 힘을 비축하기위하여 꼼짝 않듯이
우안거(雨安居:바르샤)를 지키게 하였지.

그렇게 궁벽한 시골
카필라바스투에서 나와 대각한 후
아리아인종이 지배하는 마가다국과 코오살라국에서 교세를 확장한바
황인종의 아성 슈라바스티(舍衛城)에서 또 하나의 제자 수닷타(須達多:給孤獨長者)를 얻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제도(濟導)하기 위하여 갠지스 강 북쪽의 교두보,
기원정사(祈園精舍)를 일으켰지.


슛도다나 라아자(왕:Raja)의 사신
우다인의 간곡하다 못하여 간절한 요구로
궁벽한 고향을 떠나 부처가 된 내가 12년 만에 귀향하여
걸식의 탁발승(托鉢僧) 모습으로 나서니 나의 아버님은 만감이 교차하셨지.
하지만 따르는 구름같은 무리들을 보고 조금의 위안을 받았지만
모처럼 객지에서 돌아온 나의 다음 행동에 놀라셨지.
공자(孔子)가 보았다면 不孝라고 나무랐을 거야.
나의 택도 없는 행동에 놀라셨지.

이제 막 결혼하여 왕이 되려는 이복동생 난타(難陀)의 머리를 깍아주고
그리고 나의 외아들 라훌라마저 사미(沙彌)로 출가시키니
대를 이을 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아버지 슛도다나의
슬픔은 말할 수 없었지.
할 수 없이 생질 바드리카(跋提梨迦)에게
왕위를 물려준 서운함은 말할 수 없었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나중에는 그 바드리카왕마져 출가하고 말았지. 그야말로 풍비박산한 카필라바스투였지.
하지만 그 풍비박산은 세간의 안목에 의한 것이고 세상을 제도(濟度)하기 위한 발걸음이었지.
샤카족의 조그만 울타리를 벗고 세상을 품에 안으려고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었지.
샤카족의 조그만 힘이 나의 커다란 힘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되었지.

그러나 그 순간 만큼은
우리 가문에서 부처(Buddha)를 배출했다는 자랑도 잠시...
세상을 제도(濟度)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휘황찬란한 빛도 보이지 않는 듯...
가문의 파탄을 슬퍼한 아버지의 슬픔은 뭍 중생을 제도하는 설법으로도 위안이 되질 못했지.
호시탐탐 약소국 카필라를 노리는 코오살라국과 마가다국의 침략야욕을 느끼는
아버지에게 나의 설법은 위안이 되질 못하였지.
나는 불력으로나마 누르고져
석가족 청년 500인을 출가시키고 말았으니
나의 귀향은 부처(메시아:선지자)의 출현을 고대하던
궁벽한 시골에서 대대로 웅거하던 사람들에겐 대환영이었지만
급격한 변화의 바람을 두려워하고 전통적인 수행방법을 고수하는 그들에겐 배타적일 수 밖에 없었지.
일부에서는 끝내는 부처라고 인정해주지 않더군. 파계(破戒)를 말하며 나의 개혁을 인정해 주지 않더군.
대표적으로 사촌 데바닷다(堤派達多)를 비롯한 정통파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는데
데바닷다도 나를 따라 출가는 하였지만 끝내는 그러한 정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시대, 신사고의 조류(潮流)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영원히 뛰쳐나가고 말았지.
교단의 이단자가 되었지.

훗날의 이야기지만, 그 때 출가한 주요한 샤카족들의 족적(足跡)을 말하자면,
샤카족 동네 이발사 우팔리(優波離)는 후에 "律藏"을 結集하였고
사촌 형제 아니룻다(阿泥婁馱)는 천안통(天眼通)을 얻었고
바드리카(跋提梨迦)왕은 우안거에 삼명(三明)을 얻어
"아! 기쁘다, 아! 너무 너무 기쁘다"하였고
브리구(바구)는 아라한이 되었고
킹비라도 아라한이 되었고
常任侍者 아난타(阿難陀)는
예류과(預流果)로서 지내다 "經藏"을 結集하였고
데바닷타(提波達多)는 어느 것도 못 얻어 종국에는 나를 배반하게 되고
난디카(難提迦)도 신실한 아라한이 되었지. 사촌 아난타와 데바닷다는 한 형제였지.

그러한 한(恨)을 품고, 한(恨)을 가슴에 묻고
이승을 하직하려는 나의 아버지 슛도다나의 죽음 앞에 임종한 후
내가 관을 메고 다비(茶毘)를 위하여 화장장으로 가니 아버지는 정거천(淨居天)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지.

이어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손수 짠 금루황색의(金縷黃色衣)를 보시(布施)받으니
보시(布施)란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청정(淸淨)할 때
최고가 되는 법이라 하여
사양하니
이모님의 서운함이여!
그러나 마이트레야(彌勒)이란 비구(比丘)가 입고 거리에 나서니
나처럼 32相이 번쩍이며 제자로써 수행하다 바라나시에서 입멸(入滅)하여
도솔천에 올라가 훗날을 기약하며 보살로서 수행하다가 부처님으로 대각하여
이 세상을 구제하고자, 나를 이어 구제코자 기다리고 있지.
그 도솔천에서 정정하게 수행하며 이승에
내려오기만 기다리고 있지.

- 3겹의 꿈에 갇혀서 하염없이 달리다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2002/1/18 대전 월평동에서 이름 없는 풀뿌리 나강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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