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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설날이 내게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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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우 작성일02-02-12 00:03 조회6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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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은 호기심마저 무디게 만들어 버리기에
어릴 적, 설빔을 입기 위해 손꼽아 기다렸던 설날은 망각의 한편으로 접어들고
곳곳에 겉 인사치레 해야할 설날만 무덤덤하면서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그래도 부모님이 고향을 지키며 살아 계실 적이야
고속도로에 차가 밀려서 몇 시간이 지체되든 말든 기를 쓰고 찾아 가 뵈었지만
홀로 계시던 어머님마저 꿈속에서나 그릴 수 있는 회상으로 다가왔기에
추억 속의 그날들이 애 타는 가슴만 저밀게 한다.

어머님이 가시고 처음으로 맞이한 지난 추석 때,
금방이라도 방문을 열고 나오셔서 내 손을 잡아주실 것 같았는데
휑한 바람만 문설주를 스치면서 불현듯이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어 왔었다.
그래서 이제 웬만하면 고향을 찾지 않으리라!
미여질 것 같은 이 마음을 다시 달래기 싫어서라도 그저 서울에서 묵묵히 지내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그렇지만 막상 설날이 다가오자, 다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 3년을 입을 수 있을 것 같이 커다란 설빔 밑단을 바늘로 줄여주시던 어머님 모습이다.
그 때, 나는 왜 옷이 너무 크다고 어머님께 땡깡을 부렸어야 했는가?
좋다고 웃으면서 그냥 입을 수는 없었을까?
살아 계실 적에 몇 번이고 내 잘못들을 빌었어야 했는데
한없이 내 곁에 계셔서 언제라도 뵐 수 있을 것 같기에,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가셨기에, 내 가슴속의 상처만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

어릴 적, 설날이야 설빔을 곱게 입고
집안 어른들께 세배하고 나서 세뱃돈 타는 재미로 하루가 갔다.
어른들은 덕담이라며 우리들에게 한마디씩 했는데,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것은
"새해에는 몽니 부리지 말고......"로 시작되는 말이었다.
막내 이다 보니 형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몽니 뿐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무기로 자주 대들곤 하다가, 어쩌다 터무니없을 땐
실컷 얻어터지긴 했지만, 대체로 잘 통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뒷산의 꾀꼬리가 울 적에 "몽니쟁이야!"하고 운다고 아버님이 날 놀리시곤 했었다.

아버님은 유학자(儒學者) 이셨기에, 설날의 제례상에 아주 철저했었다.
검정색 두루마기를 걸치시고 제주(祭主)가 되어 제사를 모시는 모습은
지금도 선연하게 떠오르곤 한다.
장손(長孫)이셨기에 작은 할아버지댁 식구들까지 모여서 절을 올릴 때에는
대청마루가 부족해 우리는 토방에 서야만 했었다.
지금은 핵가족화니 산업화니 해서 많이 사라져 가는 모습들이지만
설날의 이런 정겨운 풍습들은 친척들까지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었다.

편리하다는 생각이 앞서면 우리의 사고 방식은 단순해진다.
조상을 모시는데 정성을 다했던 그 옛날과 달리
이제 설날이면, 며칠간 연휴인가를 따지면서 휴가를 생각하곤 한다.
나 자신도 시골에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이유도 있지만
서로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운 차례상 기피현상 때문에
서울에서 그 정겨웠던 설날을 약식으로 맞이하고 내 편한 대로 지내려 한다.
그런데 훗날에 내 자식들에게 설날은 어떤 모습으로 떠오를까? 이것이 걱정이다.

필요하면 시도 때도 없이 옷을 사주기에 설빔이라는 개념이 없다.
또한 설날을 휴가지에서 맞고, 처갓집에서도 모이기에 종갓집이라는 개념도 희박해졌다.
게다가 집안 어른들과 동네 어른들을 찾아 뵙고 세배를 올리던 풍습마저
핵가족화라는 미명으로 사라져 가기에,
친척과 동네라는 한 울타리 의식이 허물어진지 오래 이다.
그들에게 설날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로서
편하게 집에서 컴퓨터나 하고 노는 날로 기억될까?
아니면 본가(本家)가 아니고 외갓집에서 사촌들과 어울렸거나
휴가지에서 스키를 타고 놀았던 것으로 떠올려 질까?

그 옛날 아버님처럼 나도 어느 덧 세월의 흐름을 타버린 지금,
설날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내 아이들에게 정립해주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송파세상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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