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이스는 이제부터 - 송재익님과의 레이스를 마치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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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광호 작성일02-03-13 19:03 조회7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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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날과 당일 아침
토요일 오후 5시. 업무를 끝내고,
전문경영인으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친구와 미디어그룹을 꿈꾸는 사업가 친구와
종로5가의 기독교회관에서 만나 저녁을 들며 이런저런 사업 얘기를 나누었다.
11시가 다 되어 내일 마라톤을 할 예정이라고 상황을 설명하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오랜만의 만남이고 또 신세를 진 마당이라 거절할 수 없어 나는 맥주 두 잔을 마셨는데
오는 길에 음주측정을 당하였다.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있었다.
역시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잘못이 있으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집에 돌아와 내일 아침 가방을 챙겨두고 잠자리에 들며 자명종을 맞춘다.
5시 30분. 눈을 떴다.
밥 대신 라면을 끓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닌 곳은 전북 정읍 영원이라는 곳. 녹두장군 전봉준의 고부와 인접한 마을이다.
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정읍 읍내에서 아버님이 라면을 처음 사주셨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중학교 이후 줄곧 서울에 살면서도
당시의 라면에 대한 기억은 항상 기억의 창고 앞부분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7시 5분경에 반달장소에 도착하였다.
송장군의 첫 번째 전략 - 페이스 키퍼
많은 분들이 반갑게 아는 체를 해주신다. 고맙다.
'어? 이제 와요? 송재익씨가 찾던데?' 어느 분이 말씀해주신다.
아, 송장군이 날 찾다니... 긴장이 되긴 되는 모양이군.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의 차안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반팔 면티를 입었다.
하의는 중앙일보에서 받은 짧은 타이즈 위에 츄리닝을 입고 뛰기로 했다.
처음에는 마라톤반바지를 입고 뛸 것을 고려하기도 할만큼 그리 날씨는 춥지가 않았다.
어느 방송에서 나왔는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문정복 사장이 밝은 모습으로 신나게
예의 그 화사한 언사를 늘어놓고 있다.
인터뷰어 아가씨가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예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프팀들이 잠실방향으로 출발하고 우리는 여의도 방향으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다섯, 넷, 셋 둘, 하나...드디어 수십 명의 무리 속에 나도 휩쓸려 출발을 하였다.
김재남님과 발을 맞추었다. 송장군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달려서야 송장군을 만났다. 양편에 두 분의 페이스키퍼를 달고 달리고 있었다.
아마 이게 송장군이 준비한 첫 번째 무기인 듯했다.
실제로 이 두분들은 레이스가 거의 끝날 때까지 송장군을 도왔다.
그 바로 뒤를 따르며 약간의 환담을 나누었다.
김재남님과 송장군의 대화는 언제 들어도 유쾌하다.
'걸음걸이가 뭐 그래?'
'왜, 내가 뭐 어때서...'
'형편없잖아... 뒤에서 살살 약올리며 따라가야겠구만. 바짝 붙어가면 앞에 가는 사람 엄청 부담될꺼야...'
풍귀터널과 노량진까지 계속 뒤를 따라갔다. 아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결코 멀리 떨어지지 않게.
뒤에서 본 송장군의 달리는 모습은 다리를 약간 밖으로 벌린 모양이어서
그리 위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간 귀엽게 아장아장 걷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잘 달리는 사람들은 두 발을 평행되게 움직이는 것 같다는 게 내 상식이었기 때문에.
회장님의 따뜻한 격려 - 송장군의 두 번 째 전략
여의도에 도착하였다. 박영석 회장님께서 거의 동시에 들어오는 우리를 보고 환히 웃으신다.
송장군에게는 특별히 한 말씀을 해주신다.
'송재익씨, 나하고 약속한 거 있지 말아요, 광진교에 꼭 와야돼요?'
'예. 회장님. 꼭 가겠습니다.'
아마도 송장군은 우리의 결투를 대비하여 회장님의 마음의 성원을 지원요청하였고
회장님은 오랜 기간 송장군이 반달을 위하여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마음을 기울였나보다.
이게 송장군의 두 번째 카드인 셈이다.
그럼 나는?
송장군은 여기서 형언할 수 없이 큰, 마음의 힘을 얻었음에 틀림없다.
여의도를 출발하는 그의 발걸음이 너무나 가볍게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그를 따라붙었다. 약 2-300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갔다.
한강대교 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바짝 뒤에 붙을 수 있었다. 아마 1미터 뒤에.
그는 그런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했나보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광호... 어디... 오는가... 보여?'
오른쪽의 페이스키퍼에게 묻는, 나직하지만 다소 긴장된 목소리가 바람결에 띄엄띄엄 들려왔다.
그 순간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비겁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비겁하고 싶지 않았다.
작년 언젠가 방영되었던 아마추어 마라톤 취재기,
아마 '승부(?)'를 중심으로 편집해서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받았던 프로.
서로 맞바람을 받지 않으려고 앞에 가는 사람 뒤에 숨어서 따라가던.
그 프로를 보면서 비겁하다고 느꼈던 마음이 되살아나, 나는 앞으로 차고 나갔다.
첫 번째 송장군을 추월한 그 지점은 여의도 기점 3.5킬로,
즉 반달을 출발한지 10킬로를 약간 지난 지점이다.
언뜻 본 그의 표정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어, 먼저 가...'
나는 의기양양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스피드를 조금 높였다.
그리고 이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나 명상의 시간은 길지 못했다.
불과 반달 지점을 500미터 남겨두고 송장군이 다시 따라 붙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1미터정도를 사이에 두고 반달에 도착하였다.
1시간 12분이 지나고 있었다.
간단히 음료를 마시고 바로 출발하였다.
더 떨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송장군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는 100미터로 벌어졌으며 잠시 후에는 200미터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황한 나는 여러 번 간격을 재어보았다.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우선 송장군이 먼저 현재 어디를 지나는지를 본다.
그런 다음에 그가 현재 있는 곳을 확인한 후 그 순간부터 내 발걸음 수를 센다.
이전에도 적었었지만 내 발걸음은 정확히 1미터씩이다.
즉, 내가 송장군이 지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한 지점에 도착했을 때까지 센 걸음수가
180이면 180미터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그는 일정하게 200미터 정도를 앞에 갔다. 아장아장 대는 모습으로.
동호대교를 지날 때쯤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 탄천 지점이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갈 때는 탄천교가 정확히 21키로 지점이 되고 올 때는 33-34킬로 지점이니까 매우 힘든 곳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승부를 걸자. 즉
반환점을 지나올 때까지는 2-300미터정도를 더 떨어지지 말고 붙어오다가
탄천에서 100미터 이내로 붙은 다음에 청담교에서 부터 따라붙는다... 머 이런 작전까지도 세웠다.
그런데 이제 탄천을 지났는데 작전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을 놓쳐버린 것이다.
성수대교에서 200미터이던 거리가 청담교에서는 300미터로 벌어지더니 탄천교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그 이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급수대에 이르니 그는 벌써 출발하고 없다.
글자그대로 죽기살기로 따라가도 그가 입은 반포달리기 노란 유니폼은 보이지 않는다.
달리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자문했다.
승부인가?
대답은 다행히 '아니다' 였다.
애시당초 내가 도전을 할 때 무엇인가 훈련을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가 될 계기를 만들고 싶었고,
무엇보다 무덤덤한 분위기에서 나 혼자만이라도 벗어날 신선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으며
나의 이런 시도를 귀엽게 보아 응해준 송장군이 고맙기 때문이다.
드디어 반환점이 보인다.
여기까지는 하프 플러스 6.7킬로니까 28킬로, 거의 30킬로를 달린 셈이다. 많이 왔다.
송장군은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그가 말한다.
'머 이리 빨러?'
그는 전에도 그랬다. 그가 하는 말, 소위 십팔번이다. 머 이리 빨러?
여전히 그의 곁에는 두 명의 페이스키퍼가 있다. 부러웠다.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보였다.
하지만 나는 태생이 후리(free)한 성격이다.
아마도 열을 맞추어 달리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종국에는 무리에서 빠져 나올 것이다.
즉 페이스 키퍼는 적성에 맞지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적어도 신동희님을 만나기 전 까지는
비는 내리고
반환점에서 신동희씨가 말했었다.
'내가 송재익이 잡게 해줄께.'
'좋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하고 지나왔던 기억이 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 그를 잡게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인가?
가능할까. 마라톤에서 남을 도와준다는 것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달리는데 4시간 페이스메이커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시야에 어른거리다가 얼마 후에는 사라져갔다. 물론 전방으로...
다시 급수대가 나왔다. 송장군이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물을 다 마시고 출발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는 물을 마시지 않고 내쳐 달리면
거의 같은 페이스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 희망이 깨져 실망이 되었다.
아니, 이 사람이 어딜 갔다는 것일까, 보이질 않다니... 하는 불안감마저 들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가 젖어서 제법 빗물이 흘러내린다.
이런 때는「비와 나」라는 노래가 제격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내가 이 빗속에 서있었을까
노을에 물들은 구름처럼 꿈 많은 소녀
꿈 따라 꿈을 찾아 저 멀리 떠나버렸네
태양을 보며 약속했었지
언제까지나 길 동무 되자고
눈물처럼 내 뺨엔 빗물이 흘러내리고
내가 왜 혼자서 이 빗속에 울고있을까'
슬픈 노래다. 나는 슬픈 노래가 더 좋다.
가끔 노래방에라도 갈라치면 고민이 많다.
다들 흥겹게 춤곡들을 부르는데 난 그런 노래들이 별로 내키질 않는다.
발라드가 좋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이라든가 김현식의 노래, 변진섭이라든가... 뭐 이런 식이다.
우스운 얘기하나.
어느 날 아내의 친구들 몇과 부부간에 노래방엘 갔다.
잘 놀고 왔는데 며칠 후에 아내가 실실 웃으며 한 말이...친구들이
'야, 니 남편 노래 죽이더라...'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면 됐지 왜 웃어? 했더니 뒤에 한 마디 사족을 덧붙이더라는 것이다.
근데 눈을 감고 들어야 하겠더라...라는 말이다.
배 나온 40대가 한껏 무드잡고 발라드를 부르는 것은
노래솜씨가 좋기는 하더라도 뭐 그리 보기가 썩 아름답지는 않더라는 얘기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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