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 아이를 업고 달린 젊은 처녀같은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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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희영 작성일02-05-06 01:24 조회6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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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8시 안양쪽 관악산 자락에 섰다. 3일만의 달리기이다.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시든 것은 아니고 나도 모르게 찾아온 왼쪽 무릎 부상 때문에 지난 3월의 동아대회 이후 이렇게 달리고 있다. 부상의 원인을 나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달리기에 관한 한 나는 참 보수적이다. 이를테면, 달리기 신발을 신지 않은 상태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아무리 급해도 걸어간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손가락이 생명인 피아니스트는 가방을 들지 않는다고. 기록과는 무관하게 나는 다리를 끔찍히 아끼는 유명한 마라토너이고 싶었다. 식사가 우리 생활의 일부이듯 마라톤도 나에게 생활이고 취미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무릎 부상은 조금은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13킬로 이상의 거리를 달린 적이 없건만, 달리고 나면 여전히 무릎은 아프다. 걷기가 불편할 정도이다. 특히 계단을 내려오는 동작이 너무 힘들다. 그러다가도 2,3일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조금 천천히 달리면 회복속도가 빠른 것 같아 요즘에는 달리는 속도에 신경을 쓴다.
처음 1킬로를 5분 20초에 달렸다.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달리다가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킬로 지점을 4분 51초 40에 통과한다. 아직 무릎은 어떤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그래도 행여나 해서 속도를 줄인다.
개구리 소리는 사라지고 차량들의 엔진소리만 요란해진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 달린다. 다가오는 불빛들을 보며 허리를 바로 세우고 얼굴 표정도 더 편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혹시 아랴, 차 속의 분 중에 누군가가 나의 달리는 모습에 반해 집에 가자마자 운동화를 신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3킬로 5분 4초 68에 통과.
다시 개구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부대앞을 지나간다. 아직도 내 무릎은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순간적이긴 했지만, 무릎 부상으로 달리기를 그만 두어야 한다면 어쩔까 하니 가슴이 답답해진 적이 있었다. 달리기는 나에게 육체적 건강 이외에 정신적 건강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달리며 만남의광장에 올릴 소재를 궁리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마음이 참 편해짐을 자주 느낀다. 오늘도 그랬다.
엘리트! 권력, 부 또는 명예 중에 하나는 가져야 성공한 삶이다. 그런 사람들이 선택받은 자, 즉 엘리트라고 한단다. 고교시절 들은 이야기다. 철이 없던 나에게는 부담스럽고 속물적인 단어였었다.
그래서였을까, 무정한 세월은 나를 그 세 가지 다에게 접근 금지시켰다. 그것들이 멀어질수록 엘리트라는 단어를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게 되었고. 특히 마라톤을 만나고부터는 더욱 그러했다. 엘리트 마라토너! 달리는 분들 모두가 되었으면 하고 개인적으로 바라는 단어이다.
달리다 보면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다. 작년 동아대회에서의 일이었다. 앞서 달리던 분이 길가의 시민들에게 박수를 요구했다.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힘들게 달리는데, 당연히 박수를 쳐야 되는게 아니냐는 아주 강압적인 어투로 내게 들렸다. 백오리 길이 그렇게 대단할까?
한강변을 벗어나 처음으로 참가한 대회였던 2000년 9월 하남대회에서의 일이다. 결승점이 거의 다 온 지점에서 경찰이 차량 통과를 위해 하프 참가자 중 중간 정도의 주자들에게 잠시 정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앞서 가던 주자들이 강력하게 항의를 한다. 마라톤의 마자도 모르는 경찰이라고. 정말 그럴까? 우리는 도로교통의 도자는 알고 있을까?
가능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면서 나는 엘리트 마라토너라고 스스로 오만을 했었다. 때로는 마라톤이 나의 취미라고 자랑도 했었다. 적어도 양경석님의 글을 보기 전에는.
양경석님이 4월 29일에 올리신 [페이스메이커하신 분들 고생 너무 많이 하셨습니다] 중에서 :
" ...... 하프 반환점을 돌아서 오는데, 좁은 시골길 아스팔트길에서 젊은 처녀같은 아주머니가 갓난아이를 등에 포대기로 꾸려 업고서 길을 가고 있었다. 옆을 스치는 나에게 등뒤의 아기에게 땡볕을 가리게 모자를 좀 씌워 달란다.
잠자는 아기의 머리에 모자챙이 해를 가릴 수 있도록 조심스레 모자를 씌워 주고는 "마라톤 때문에 길이 막혀서 걸어나가시는 모양이지요" 하니 버스도 막히고, 승용차 편도 막히고 하여서 걸어나간단다. 곱상한 처녀같은 얼굴에 짜증스런 기색 한 점 없다.
'잘 뛰지도 못하는 처지에 미안하기만 합니다' 하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후에 게시판에 들어가보니 그 부근 주민들은 버스가 없어서 3-4시간을 걸어서 나왔단다. ......"
양경석님이 4월 22일 올리신 [좋은 인생과 취미] 중에서 :
" ........ 바람직한 취미라면 나만이 즐기기보다 고결한 인품을 키우고 생의 의미를 깊게 하여,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 - 법정(法頂)의《무소유》중에서 - ........."
나는 마라톤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고 있을까?
과연 마라톤이 나의 취미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끝없이 인내하고 있는걸까?
11킬로를 56분여에 걸쳐 달리며 줄곧 나에게 던진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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