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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별장에서의 달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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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2-12-31 14:16 조회5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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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별장에서의 달리기 (2)

허허 벌판, 주위에는 겨울에도 파란 영국 특유의 잔디와 커다란 고목과 아직
걷히지 않은 아침 안개뿐인 홀로 떨어진, 이름 없는 한 지방 귀족의
허름하니 퇴색한 별장.

문을 열어 달라고 현관문을 밀어보고, 땡겨도 보고, 발로 차도보고,
땅 바닥의 돌멩이를 집어 창문을 향해 던져도 보았지만 허사이고,
한 시간 여의 달리기 끝에 땀에 흠뻑 젖은 옷은 더욱 차갑게 얼어져만 가고....

지독한 추위로 턱, 이빨은 따다다다다닥 , 다리는 후둘, 후둘.
최악의 상황이 이제 반시간 여 계속 되고 있다

어찌된 것일까 ?
불길한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간밤에 호텔 종업원 모두가 급사한 것일까 ?
조금 있으면 검정 경찰 투구에 긴 망토를 걸친 형사대가 들이닥치고,
나는 참고인, 아니면 살인 혐의자로 경찰서 취조실로 끌려가는 건 아닐까 ?

이런 한가로운 생각도 잠시,
얇은 면 셔츠에 홑겹 츄리잉 바지 하나 달랑 입고 뛴
나의 온몸이 꽁꽁 얼어 가는데 이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어 갔다.

나의 무뎌진 머리는 이제 생존을 위한 생각 말고는 달리 다른 것을 생각
한다는 게 사치가 될 것이다. 방금 뛰어 갔다온 마을 쪽을 다시 가늠해 보았다
다시 그곳으로 뛰어 가서 아무 집이나 뛰어 들어가 도움을 청해 볼까 ?

우선, 나는 선의의 여행자, 귀 영국에 아무런 피해를 안 끼친 여행자입니다
마라톤을 너무 사랑하여 아침 새벽 달리기하려고 호텔을 나왔다가
닫힌 호텔 문을 열지 못해 반시간 여 바깥에서 떨다 이제 한계 상황에
이르러 도움을 청하오니 우선 따뜻한 커피 한잔을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가능하시면 간밤에 저 위쪽 언덕의 별장 호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봐 줄 수 있는지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해 볼까 ?

그러나 섣불리 그럴 수는 없다. 아직은 망설여진다
아침 새벽 남의 집에 가서 실례하는 것은 최후 마지막 단계다
확증 없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진 않다

더 한참을 망설이며 시간이 얼마만큼 더 흘러갔다
혹시나 하고 다시 현관문에 달려 있는 코뚜레 문고리를 탕 ! 탕 !
다시 두드리어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언 몸에 다시 열을 지피기 위해 그 별장 주위를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른 수가 없을 듯, 아침 8 시 45 분에 나를 데리러 오게 돼있는 나의 파트너,
피터 후드스피드만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정장하고 상담을 준비 해야할 내가 면 티셔츠에 츄리닝 달랑 입고
땀에 젖은 산발 머리를 하고 이 앞에 서 있는걸 보면 그의 반응이
어떨까 ?

어떤 상황에서도 유모어를 잊지 않는 영국인 특유의 기질을 살려서
어쩌면 이런 농담을 할지도 모른다.

" 핼로우, 당신은 오늘 아침 모든 게 몹시 부족하고 행색이 평소의
당신과 같지 않게 보이는군요. 오늘 세무서 소득세과 나리하고 약속 있나요 ? "

이런 생각을 하며 별장 뒤를 돌아 다시 앞 현관 쪽으로 코너를 막 꺽어 돌아선
나의 두 눈에 누군가가 마을 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쪽 언덕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뛰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도 나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몹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한편으로는
부자유스런 기색도 보였다. 자전거의 핸들이 좌우로 몹시 흔들렸다.

그가 타고 오던 자전거에서 내려 바로 내 앞으로 가까이 오자 나는 그가
어제 밤 나를 맞이해 준 호텔의 주인 그 노인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아직 상황 판단이 인된 듯, 말을 아끼고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눈이 덜덜덜 떨고 있는 나의 행색을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당연히 인내심이 부족한 내가 먼저 얼어붙은 턱을 힘들여 움직여서 말을 했다.

" 아니 , 시방 이 무슨 이상한 일이요 ? 왜 호텔 안에서 아무도 나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거요. 종업원은 전부 귀머거리요 ?
아침 마라톤 나가는 투숙객은 모두 얼어 뒈지게 바깥에
세워 놨다가 들어 보내는 게 당신 호텔의 전통이요, 뭐요 ?? "

그러자 볼과 턱에 수염이 많은 50 대 중반으로 보이는 호텔 주인은 몹시 미안한
표정을 보이며, 우선 타고 온 자전거를 현관 입구에 받치고, 자기 주머니에서
묵직한 구식 열쇠 꾸러미를 꺼내 현관문을 열어 나를 서둘러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몹시 두꺼운 목재 현관문 귀퉁이에서 내 주먹 반쪽 만한 나무 쐐기토막을 집어들어
나에게 보이며 입을 열었다.

" 미안합니다. 나의 실수입니다. 당신이 어제 투숙객이 알아야 할 사항을 다 안다고
해서 더 이상 설명을 안한 게 저의 실수입니다. 당신은 어제 몹시 피곤해 보여 내가
오늘 아침 출근해서 아침 조반을 준비하기 전에는 호텔 바깥을 나가지 않을 것 같아
설명을 안 해드린 나의 실수입니다. 손님께서는 현관문을 나가실 때 이 나무 조각
쐐기로 문을 살짝 고여놓고 나가시어 다시 들어오실 때는 다 닫히지 않은 그 문을
손님 스스로 열고 들어 오셔야됩니다. 전 에는 현관 열쇠가 두 개 이어서 하나를
이곳에 걸어 놓고 밖에 나가는 손님이 사용했다 하는데 그게 없어져서, 아주 오래
전 일이지요. 한 30 년 됐지요. 이제 이것 하나로 사용합니다.
낮에는 제가 있으니 제가 열어 주면 되고 밤에는 손님에게 특별히 외출 계획이
있냐고 물어서 나간다고 하면 이 나무 쐐기 사용법을 알려 주지요.
그걸 어제 설명 안 드린 게 저의 실수입니다.

이 별장은 나의 소유고 저 혼자 꾸려 나가고 있으며, 나의 집은 저 아래 동네에
있어 저는 자전거로 출퇴근합니다. 밤 10 시에 내가 퇴근하면 사전에 부탁해서
예약되지 않은 호텔 서비스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어제는 투숙객이 손님 한 분
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투숙객의 도움으로 문을 열 수 없었던 것 같군요.
굉장한 유감입니다. 손님의 그 화가 오래가지 않고 곧 잊혀지기 바랍니다 ... "

이곳 현지인이 아님을 알고 일부러 그러는지 그는 비교적 말을 천천히 해 주어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알아들었다. 아주 친절한 설명이었다. 이제 상황이
다 파악되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호텔에다 대고 문을 열어 달라고 거의 한 시간
동안 온갖 쑈를 벌린 내 모습, 본 사람이 없어 무척 다행이었다. 그러나 한가지가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게 있다. 어제 접수 본 이 노인 말고, 내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기 직전, 아침 식사는 드실 건지 물어 봤던, 주방장 모자 쓴
다른 한 나이 많은 분도 있었던 것 같았는데... 외투를 벗어 걸며 접수대에서
막 일을 시작하려는 주인 노인에게 물어봤다. 어제 주방장 모자 쓰고 나에게
아침 식사 메뉴를 물어 보았던 그 노인도 밤에 이곳에서 자지 않고 출, 퇴근 하는가
하고... 그러자 그 주인 노인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덤덤히 대답한다.

" 아까 말씀 드렸죠 ? 이 호텔은 내가 주인이고 저 혼자 꾸려 나갑니다.
저는 투숙객 접수 일을 볼 때는 이 모자를 쓰고, 주방에서 손님의 커피나 아침
식사를 준비 할 때는 주방 모자로 바꿔 씁니다. 손님 중에는 주방 모자를
쓰지 않은 주방장으로부터 식사 서비스를 받는걸 아주 싫어하는 손님이 있어
그렇게 하지요. 같은 이론으로 주방 모자를 쓰고 접수받는걸 아주 싫어하는
손님도 있어 그 때는 이 접수 모자를 쓰지요. "

" .............. "

" 그건 그렇고, 손님 아침 메뉴는 오랜지 쥬스 하나, 한쪽만 익힌 계란 써니 싸이드
엎 두 개, 중간치로 익힌 토스트 두 쪽, 베이컨 그리고 커피, 맞지요 ??
옷 갈아입으시고 내려오시는 동안 준비 해 드리겠습니다 "

서울
고덕 달림이
박복진

+ 이 이야기는 3 년 전의 일입니다. 지난 일요일 한참을 뛰고 집에돌아오니 아파트 문이
굳게 잠겨 있고, 집안에 아무도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위의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토스트에 발라먹으려고 오뚜기 잼을 사러
갔던 아내가 금방 들어와 다행이었지요.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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