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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광장

가을엔 늘 허기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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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복희 작성일04-10-25 11:12 조회7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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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한두번 하는 마라톤이 아니면서도 다음날 다가올 주로와의 만남은 매번 그랬던 거처럼 짜릿함에서 오는 약간의 카타르시스도 아닐텐데 그렇다고 생리적인 현상도 아니면서 인체의 미묘한 변화는 예고있는 협공으로 다가와 약간의 흔들림을 가져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는 거지요. 오래전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때 결핵은 예고없이 찾아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35년전 얘기가 되네요? 그때 당시를 가만 생각해 보니 한 동네에서 결핵환자가 많이 나와 흑사병 현상처럼 장례를 치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 모습은 제 자신의 새처럼 작은 몸뚱이 하나도 가마니떼기에 두루루 말려들어가는 모습이 가끔씩 눈앞에 아른 거릴때도 있었지요.

그때는 전염성이 강하다는 이유때문도 있겠지만 휴식을 취해야 하기도 했으므로 3학년 1학기를 집에서 보내야 하는 결론을 얻고 매일처럼 산등성에 올라 앉아서 언제쯤이면 친구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인가...산등선의 잡목 또는 소나무 그림자의 형세로 시간을 측정하며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완쾌가 되었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결과로 다시 2학기부터 학교생활은 시작 되었지만 체육시간만은 그늘아래 주리틀고 앉아서 구경하는것 외에는 함께하지 못해서 생기는 "그늘공주"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까지 하나 얻어야 했지요.

몇 년동안 학교생활은 유지가 되었고 그러다가 중1때 커다란 충격 하나를 안고 재발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그때 가정 형편상 절 어디 휴양소 또는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한다는 그런 형편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정기적으로 보건소에 가서 약을 가져와 복용하는거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 시골로 전학을 갈 도리밖엔 없었지요.

2년정도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며 약을 복용하면서(그당시 결핵약은 파스, 피리독신, 아이나 라고 기억이 듭니다) 한 주먹씩 복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싫어서 엄마 몰래 화장실에다 버리기도 하고 먹다가 모두 토해내기도 하고 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기도 했구요. 조금씩 철이 들어 가면서 이렇게 죽기는 싫다... 라는 생각이 들자 언제부터인지 스스로 보건소엘 찾아가 약을 가져와 복용을 게을리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을 앓고 약을 복용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약이 가져오는 약리적인 부작용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약이 너무 독해서 영양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특히 육식을 많이 했습니다) 한동안은 자다가도 온몸의 마비현상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입만 살아서 옆에서 주무시는 할머니를 께우면 할머니가 주무시다가 일어나셔서 제 온몸을 마비현상이 풀릴때까지 주무르느라 밤을 하얗게 지세기도 하셨지요. 혹여 사람들 있는 곳에서 각혈이라도 할까봐 사람있는 곳을 피할수 밖엔 다른 도리가 없기도 하구요.

다시 한동안 보건소에서 시키는 데로 약을 복용해서 몸은 환치가 되는듯 했습니다. 평화로운 제 육신은 한동안 유지가 되는듯 하다가 24살때쯤 되어서 직장생활중에 감기인줄 알고 며칠 지속되던 기침이 염려했던 결과를 다시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기침을 하던 중에 다시 각혈이 시작 되었던 거지요. 근처 종합병원엘 가서 검사를 하니 다시 결핵이 제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토록 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괴롭히지...? 하는 생각이 문득들자 이 병이 지겹도록 미웠습니다. 다시 한동안 보건소에가서 약을 타다가 반년이 넘게 복용을 하고 한동안의 시간이 흘러 이젠 이놈의 병도 내게 정이 붙었나 보다. 그래 너랑 나랑 우리 사이좋게 내 몸에서 공존해보자 라는 생각도 들어 가구요. 달래 보는 거지요뭐. 병을 달랜다니까 우습네요? 하지만 달래야 했습니다.

그리고 혼인을 해서 큰 아이를 낳고 이런저런 일로 다시 몸속에 화가 쌓이니 그동안 잠잠했던 그놈이 다시 감기인줄 알고 방심했던 사이를 뚫고 각혈로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징그럽게 나를 좋아할수 있을까... 싶더군요. 집근처 종합병원엘 가서 다시 검사를 하고 약을 복용 했지요. 정말 지겹도록 병과의 씨름이 이어지고... 그리고 시부모님과 남편 한테 제 몸이 이러하니 함께 생활하기 힘들것 같아 이혼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펼쩍 뛰는 시부모님은 빨리 건강을 회복하라는게 아니라 어떻게 그런 몸으로 우리아들과 혼인을 했느냐고 노발대발 하십니다.(시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친정부모님께 전화를 하셔서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혼인을 했느냐..? 별소릴 다하십니다. 친정부모님은 까닭없이(까닭이 있나..?) 시부모님 앞에서 죄인이 될수 밖에요. "친정 부모님이 하실수 있는 얘기는 단지 죄송 합니다. 혼인할 당시에는 그아이 병이 완쾌된 상태였습니다..."는 소리밖엔 달리 도리가 없기도 했구요.

94년에 강변이 옆에있는 동네로 이사를 오게되자 갑자기 이러면 내가 뭐가 되는 거지? 이토록 힘든데 이사람들은 가족이 아니라 단지 내 병명 하나 가지고 당신 아들 옮길까봐 걱정만 한들 제겐 아무 도움이 안됀다는걸 께달았습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뒷따라 오자 생각을 정리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공원에나가 밤길을 걷기 시작 했지요. 걷다가 걷다가 지치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잔듸밭에 누워서 별을 경계삼아 어제는 저쪽을 샀으니 오늘은 이쪽을 살까...? 욕심부리지 않고 사기도 하고 빨리 걷다가 20~30m정도 달리다가 헥헥거리고 숨이 차오르면 다시 상체를 숙여서 차오르는 숨을 가다듬기도 하고... 난 이젠 지기는 싫어... 이길수는 없더라도 지길 싫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20~30m 달리던 길이가 하루하루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남들은 3~4개월 정도 달리면 하프 또는 풀을 완주 한다고 나중에야 들었지만 전 말그대로 동네 달리기였고 풀을 뛰기까지는 아이 걸음마 하듯 5~6년이 걸렸으니까요. 20~30m도 달리지를 못하던 사람이 풀을 완주했다고 하니 친정 식구들도 믿지를 않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풀코스가 그렇게 긴 코스인지 42,195라는 그 긴 거리를 제대로 인식을 못하는 아둔한 머리와 가슴을 지니고 뛰었다고 해야 옳을듯 싶습니다. 2001년 3월3일 서울마라톤 절름발이 완주를 하고나니 전 세상 모두를 얻은것 같았고, 세상 모두가 제것 인것 같았고, 세상 모든 사람이 절 위해 존재하는듯 했습니다. 저외에 다른 사람은 모두 엑스트라로 보였으니 말입니다.

완주하자마자 친정에 전화해서 "엄마, 언니 나 완주 먹었어~!" 였습니다. 친정식구들은 완주라는 말 자체를 무슨뜻인지 한참을 설명하 뒤에야 "그래 너는 인간 승리다.." 라는 말로 대신 해 주었지요. 완주가 저를 기다린게 아니라 제가 완주를 먹어버린 것이었지요.

그리고 달리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일년 360일은 뛰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점점 제 자신의 몸에 대해서 자신이 생겼고 1~2년에 한번씩 하는 건강진단에서는 모든게 완벽하리만큼 건강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메달을 헤아려 보니 8개가 되네요. 전 메달에도 욕심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거리에도 욕심나지 않고 시간단축에도 욕심내지 않습니다. 작년에 무심코 달려본 울트라에서도 전 자신을 다시한번 확인 할수가 있었지요. 단지 달릴수 있는 제 의지만 있고 제 몸이 허락만 한다면 욕심없이 달릴거라구요. 전 두발로 땅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게 이토록 큰 기쁨을 가져오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던 일입니다.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걷거나 느리게 뛰었을 때 만이 옆에있는 생면부지 억새풀의 의미도 느낄 수 있고, 야생초들의 흐드러짐 에서 오는 곱살스런 미소도 받을수 있고, 또 발끝에 차이는 풀 한포기, 돌맹이 하나에서도 우주를 생각할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무아이고 무념의 상태에서 오로지 두발로만 땅을 짚고 나아 간다는 것에서 인간의 진정성과 존재의 의미를 절감할 수 있겠지요. 그래야 명상도 할수있고 오래 그리고 멀리 갈 수 있을테니깐요. 멀리 그리고 한참을 나아가도 그 끝이 어딘지를 모르고 과연 끝이라는게 있기나 한 걸까 하며 회의하고 방황하는게 인생살이 이겠지요.

차를 타고 쏜살같이 간다면 차창넘어 보는 풍경은 어쩜 박제된 아름다움에 불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 풍경만 그러겠어요? 어쩌면 인생을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인생을 백미터 달리기 하듯이 사력을 다하여 가야 한다면 우리네 인생은 얼마나 비참할 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 느리게 가야 하는 지 달리는 내내 그 생각만 저를 붙잡습니다. 느리게 간다고 해서 힘이 안드는 건 아니겠지요. 힘이 들더라도 목적지 까지 빠르게 쏜살같이 갈 수만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 겁니다. 오히려 느리게 가는 것이 더 힘이 들고 고통스럽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목적지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더 어려울 테지요. 두발로만 외롭게 가야하지만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나 스스로 누구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데서 그 외로움도 절절 하겠지요.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인생에 있어서 스스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처럼 들립니다.


4시간 55분만에 걷지않고 천천히 뒤면서 들어왔습니다.


*******

서울마라톤이 친정 같지만(처음 풀코스 완주한 곳이라) 한번도 함께 하질 못했는데
박희숙님과 동행으로 봅게된 회장님 이하 모든분들 감사 합니다. 서울 마라톤 안살림을 도맡아 하신다는분도 그 찰밥과 무우나물, 콩나물맛 잊지 못할것입니다.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이래서 친정 나들이가 좋은가봐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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