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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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진 작성일04-10-27 10:19 조회4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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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나, 40 살 아줌마는 매일 아침 새벽 거의 정해진 시각에 어느 남자를 봅니다.
내가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햇수로 거의 2 년 여 가 넘습니다. 그 때는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도로에 수북이 쌓여 있던 낙엽들도 다 쓸어 걷어내어지고, 그 위에
찬 북쪽 바람이 맛보기로 휘이잉 ! 하고 한바탕씩 쓸고 지나가던 초겨울 쯤 이었습니다.
내 남편의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입어야 할 와이셔츠를 다려놓지 않고 어제 잠자리에
들었던 생각이 나서, 이른 새벽이지만 침대에서 내려와 겉옷을 걸치고 전기다리미를
찾아들고 거실로 나가, 베란다 구석에 세워 놓았던 다림질 판을 가져오기 위해 거실
미닫이 창문을 열었을 때 , 우리 집 유리 창 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아파트 단지 내의
조그만 소 도로에 시커면 움직이는 물체를 보았습니다. 그 움직이는 물체는 사람이었
습니다.
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그 남자의 입김인지, 콧김인지 모를 하얀 김이 달리는
앞으로 날숨 되어 뿌옇게 흐트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어느 한 남자의 새벽 운동
모습이었지요. 나는 그 남자의 모습이 단지 내 도로 끝까지 다 가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그 남자의 존재를 잊어 버렸습니다. 아니 잊어버린다는 상황 자체도
잊어 버렸습니다. 새벽 창문 너머로 보였던 어느 한 중년 남자의 아침 달리기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들썩거리는 압력 밥솥 뚜껑의
꼬다리처럼 잠깐 시선을 끌었다가 곧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평범한 일상이었으니까요.
처음 본 그 후로 두 어 달이 지났습니다.
나는 월요일 내 남편의 출근을 위해 또 다시 베란다 창고에서 다림이 판을 찾아 와이
셔츠 다림질을 하려고 졸린 눈을 부비며 무심코 창문 밖을 내다보았을 때, 나는 그
남자의 모습을 또 다시 보았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그 남자의 운동 복장은 바뀌었으나,
네 분명 저 모습은 바로 두 달 전 그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달리면서 내뿜는 날숨의 입김, 콧김은 두 달 전 보다 훨씬 더 진하고 선명해 졌습니다.
당연히 날씨 탓이겠지만 나는, 어쩌면 그동안 나와 마주치지 않았지만 그의 진지한
운동 자세로 보아 그 남자의 운동 강도가 더 세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 쪽으로 기울었
습니다. 두 어 달 전에 보았던 짧은 반바지 차림 밑으로 보였던 적당히 그을린 근육
뭉텅이의 두 다리는 긴 츄리닝 바지 속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방금 본 그 남자의 달리는
모습에서 긴 옷을 뚫고 두 어 달 전의 그 근육뭉치 다리통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그 남자는 또 그렇게 아파트 단지 내 소 도로 끝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남자를 따라가기에는 바깥이 너무 어두워서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 보다도, 더 진실을 이야기 하자면, 방금 전 나를 더듬고 탐했던 내
남편과의 새벽 어느 흔적, 헝클어진 내 머리칼이 그 남자에게 들킬까봐 그 남자에게
더 이상의 시선을 주는 것이 나 혼자서 괜스레 부담 되었습니다.
혼자 수줍어서 들고 있던 다림질 판을 철푸덕 ! 하고 방바닥에 내려놓고, 그 옆에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팔을 뻗어 소파 밑에 놓여 있던 분무기를 집어 들고서는 , 남편의
와이셔츠 위에 치익! 치익! 하고 뿌려 댔습니다. 내 쓸 데 없는 공상을 쫓아내려는 듯 ,
칙! 치칙! 하고 난폭하게 물을 뿌려 댔습니다. 그리고 또 그 남자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또 그 남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남자는 봄 , 여름, 가을 ,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그 시각, 그 장소를 지나가는 아주 특이하고도 보기 드문 끈기의 소유자인
것 같았습니다.
네, 마라토너.
그 남자는 지금에 와서 알았지만 마라토너이었나 봅니다.
그런 단어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마라토너, 이제 막 마흔이 된 주부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의 가슴에 민들레 홀씨처럼 살포시 들어와 자리한, 언제부터인가 내 소녀적 감성을
간지리는 그 남자가 동네에서 아파트 아줌마들 간에는 꽤 알려진 7 단지 마라토너 남자
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게 참 이상했습니다.
느끼었던, 안 느끼었던 마흔 살 아줌마인 나의 마음에 동네 마라토너 그 남자의 존재는
조금씩, 조금씩 정으로 쪼아져 각인되어 가고 있었나 봅니다. 이러다가 무슨 일이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짜릿한 위기의식을 넘나들며 동네 마라토너 그 남자를 향한 나의 마음은
자꾸만, 자꾸만 기울어져 갔습니다. 이제 새벽 그 시간,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나가는 그
남자의 모습을 기다릴 때도 있었습니다. 단지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그 남자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 거려보는 용기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 ! 망측해라 ! 마흔 살 아줌마, 내가 이름 모를 어느 중년 마라토너와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40 여 년을 살아온 나의 지난 세월이 분리수거 하는 날, 다락방
에서 삘건 프라스틱 노끈으로 묶이어 나오는 한 해 묵은 실전 수능 문제집 다발같이
그냥 내 던져지기 시작하는 운명이 나도 모르게 다가 선 것입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앉아서 옷고름 돌돌 말며 기다리는 수줍은 아낙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아끼던 빠알간 립스틱을 바르고 단지 내 도로 골목 굽은 곳에서 그 남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운명을 내 치마폭에 다 담아 낼 요량으로, 앞 뒤
분간 없이 덥썩 포옹하려는 자세로, 달려오던 그 남자 앞을 막고 섰습니다.
“ ...........!!!! ”
“ 아, 왜 그렇게 놀래 서 있어요? 뛰어 왔으면 어서 빨리 씻고 밥 먹고 출근 할 생각은
안하고!! 토스트 잼이 떨어져서 사러 나왔어요. 어서 먼저 들어가요. 나 사가지고 바로
들어 갈 테니까요. 당신 이 꼭두새벽에 뛰어 오면서 꼭 무슨 좋은 일 생각하며 오는
것 같대요. 뭐, 좋은 일 있었어요 ? “
정신없이 쓸 데 없는 공상을 하고 달리던 내 앞에 터억 버티고 섰던 사람은,
내가 맞아 뒈지기 전에 있었던 진실을 죄다 털어놓고 이야기 하자면,
평소 내가 그냥 보기만을 좋아하던 동네의 그 이쁘장한 아줌마, 가끔씩 내가 단지 내
새벽 도로를 뛰어 갈 때 내가 안보는 척 하며 남의 집 베란다 창문 너머로 흘깃흘깃
바라보던 그 아줌마가 아니라,
나의 아침 식사를 위해 떨어진 딸기 잼을 사러 나온,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스런 바로 내 아내이었습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나, 40 살 아줌마는 매일 아침 새벽 거의 정해진 시각에 어느 남자를 봅니다.
내가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햇수로 거의 2 년 여 가 넘습니다. 그 때는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도로에 수북이 쌓여 있던 낙엽들도 다 쓸어 걷어내어지고, 그 위에
찬 북쪽 바람이 맛보기로 휘이잉 ! 하고 한바탕씩 쓸고 지나가던 초겨울 쯤 이었습니다.
내 남편의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입어야 할 와이셔츠를 다려놓지 않고 어제 잠자리에
들었던 생각이 나서, 이른 새벽이지만 침대에서 내려와 겉옷을 걸치고 전기다리미를
찾아들고 거실로 나가, 베란다 구석에 세워 놓았던 다림질 판을 가져오기 위해 거실
미닫이 창문을 열었을 때 , 우리 집 유리 창 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아파트 단지 내의
조그만 소 도로에 시커면 움직이는 물체를 보았습니다. 그 움직이는 물체는 사람이었
습니다.
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그 남자의 입김인지, 콧김인지 모를 하얀 김이 달리는
앞으로 날숨 되어 뿌옇게 흐트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어느 한 남자의 새벽 운동
모습이었지요. 나는 그 남자의 모습이 단지 내 도로 끝까지 다 가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그 남자의 존재를 잊어 버렸습니다. 아니 잊어버린다는 상황 자체도
잊어 버렸습니다. 새벽 창문 너머로 보였던 어느 한 중년 남자의 아침 달리기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들썩거리는 압력 밥솥 뚜껑의
꼬다리처럼 잠깐 시선을 끌었다가 곧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평범한 일상이었으니까요.
처음 본 그 후로 두 어 달이 지났습니다.
나는 월요일 내 남편의 출근을 위해 또 다시 베란다 창고에서 다림이 판을 찾아 와이
셔츠 다림질을 하려고 졸린 눈을 부비며 무심코 창문 밖을 내다보았을 때, 나는 그
남자의 모습을 또 다시 보았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그 남자의 운동 복장은 바뀌었으나,
네 분명 저 모습은 바로 두 달 전 그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달리면서 내뿜는 날숨의 입김, 콧김은 두 달 전 보다 훨씬 더 진하고 선명해 졌습니다.
당연히 날씨 탓이겠지만 나는, 어쩌면 그동안 나와 마주치지 않았지만 그의 진지한
운동 자세로 보아 그 남자의 운동 강도가 더 세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 쪽으로 기울었
습니다. 두 어 달 전에 보았던 짧은 반바지 차림 밑으로 보였던 적당히 그을린 근육
뭉텅이의 두 다리는 긴 츄리닝 바지 속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방금 본 그 남자의 달리는
모습에서 긴 옷을 뚫고 두 어 달 전의 그 근육뭉치 다리통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그 남자는 또 그렇게 아파트 단지 내 소 도로 끝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남자를 따라가기에는 바깥이 너무 어두워서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 보다도, 더 진실을 이야기 하자면, 방금 전 나를 더듬고 탐했던 내
남편과의 새벽 어느 흔적, 헝클어진 내 머리칼이 그 남자에게 들킬까봐 그 남자에게
더 이상의 시선을 주는 것이 나 혼자서 괜스레 부담 되었습니다.
혼자 수줍어서 들고 있던 다림질 판을 철푸덕 ! 하고 방바닥에 내려놓고, 그 옆에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팔을 뻗어 소파 밑에 놓여 있던 분무기를 집어 들고서는 , 남편의
와이셔츠 위에 치익! 치익! 하고 뿌려 댔습니다. 내 쓸 데 없는 공상을 쫓아내려는 듯 ,
칙! 치칙! 하고 난폭하게 물을 뿌려 댔습니다. 그리고 또 그 남자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또 그 남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남자는 봄 , 여름, 가을 ,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그 시각, 그 장소를 지나가는 아주 특이하고도 보기 드문 끈기의 소유자인
것 같았습니다.
네, 마라토너.
그 남자는 지금에 와서 알았지만 마라토너이었나 봅니다.
그런 단어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마라토너, 이제 막 마흔이 된 주부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의 가슴에 민들레 홀씨처럼 살포시 들어와 자리한, 언제부터인가 내 소녀적 감성을
간지리는 그 남자가 동네에서 아파트 아줌마들 간에는 꽤 알려진 7 단지 마라토너 남자
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게 참 이상했습니다.
느끼었던, 안 느끼었던 마흔 살 아줌마인 나의 마음에 동네 마라토너 그 남자의 존재는
조금씩, 조금씩 정으로 쪼아져 각인되어 가고 있었나 봅니다. 이러다가 무슨 일이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짜릿한 위기의식을 넘나들며 동네 마라토너 그 남자를 향한 나의 마음은
자꾸만, 자꾸만 기울어져 갔습니다. 이제 새벽 그 시간,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나가는 그
남자의 모습을 기다릴 때도 있었습니다. 단지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그 남자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 거려보는 용기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 ! 망측해라 ! 마흔 살 아줌마, 내가 이름 모를 어느 중년 마라토너와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40 여 년을 살아온 나의 지난 세월이 분리수거 하는 날, 다락방
에서 삘건 프라스틱 노끈으로 묶이어 나오는 한 해 묵은 실전 수능 문제집 다발같이
그냥 내 던져지기 시작하는 운명이 나도 모르게 다가 선 것입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앉아서 옷고름 돌돌 말며 기다리는 수줍은 아낙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아끼던 빠알간 립스틱을 바르고 단지 내 도로 골목 굽은 곳에서 그 남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운명을 내 치마폭에 다 담아 낼 요량으로, 앞 뒤
분간 없이 덥썩 포옹하려는 자세로, 달려오던 그 남자 앞을 막고 섰습니다.
“ ...........!!!! ”
“ 아, 왜 그렇게 놀래 서 있어요? 뛰어 왔으면 어서 빨리 씻고 밥 먹고 출근 할 생각은
안하고!! 토스트 잼이 떨어져서 사러 나왔어요. 어서 먼저 들어가요. 나 사가지고 바로
들어 갈 테니까요. 당신 이 꼭두새벽에 뛰어 오면서 꼭 무슨 좋은 일 생각하며 오는
것 같대요. 뭐, 좋은 일 있었어요 ? “
정신없이 쓸 데 없는 공상을 하고 달리던 내 앞에 터억 버티고 섰던 사람은,
내가 맞아 뒈지기 전에 있었던 진실을 죄다 털어놓고 이야기 하자면,
평소 내가 그냥 보기만을 좋아하던 동네의 그 이쁘장한 아줌마, 가끔씩 내가 단지 내
새벽 도로를 뛰어 갈 때 내가 안보는 척 하며 남의 집 베란다 창문 너머로 흘깃흘깃
바라보던 그 아줌마가 아니라,
나의 아침 식사를 위해 떨어진 딸기 잼을 사러 나온,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스런 바로 내 아내이었습니다.
서울
고덕 달림이
박 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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