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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의 꼴찌, 베를린마라톤 완주하다(완주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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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청자 작성일07-10-28 19:44 조회1,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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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의 꼴찌’가 지구력하나만 믿고 제 34회 베를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완주했습니다. 더구나 베를린마라톤을 포함한 네 번의 풀코스완주(2006년 서울마라톤, 2006년 춘천마라톤, 2007년 서울마라톤) 중 가장 좋은 기록이 나와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2007년 4월 16일 인터넷으로 베를린마라톤에 참가신청한 후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독립군’ 출전이라서 더욱 그랬습니다. 8월 하순경 참가증명서 및 안내 책자를 받고나서 걱정은 배가되었습니다. 출국 전 헬스장 밖에서 한번이라도 연습할 요량으로 8월 26일 서울마라톤 반달모임에 참가하여 또 ‘영광의 꼴찌’를 기록했지요. 그래도 베를린날씨가 더울 경우에 대비한 의미 있는 훈련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철저하게 사전준비도 하고, 직장과 관련된 자료준비도 할 겸 일찌감치 독일로 향했습니다. 9월 중순 베를린에 도착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지하철및 버스 회수권을 구입한 것이었고, 다음날부터 지하철, 국철을 이용하여 시내 지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2층 시내버스를 타고 마라톤이 열리는 출발점, 도착점을 답사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숙소에서 출발점으로 가는 길을 익혀두었으며, 세 번째로는 지하철을 타고 출발점으로 가서 국회의사당 등 출발지점 부근의 중요한 건물들을 새겨두었습니다. 뒤 이어 도보로 출발점, 도착점을 답사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출발 및 도착지점의 6차선의 넓은 도로에 압도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양쪽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생겼을 정도로 약 2주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출발점, 도착점을 확인, 또 확인했습니다. 어느 날 “만보계” 숫자를 확인해보니 하루에 10킬로미터를 걸은 것입니다.

연습은 저녁에 숙소부근의 운하를 따라 10-13킬로미터 정도를 뛰었습니다. 어느날 달리다가 하늘을 쳐다보니 아 보름달! 그날이 추석임을 알았습니다. 대회일이 다가올수록 달리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큰 키에, 긴 다리, 그 보폭을 보고 있노라니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1936년 일제하에 베를린마라톤에서 우승한 한국의 손기정 선생과, 이봉주, 황영조 선수, 그리고 서브스리를 달성한 수많은 마스터스들을 떠올리며 마라톤은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각인시켰습니다. 안내책자도 밑줄을 그어가며 두어 번 더 읽었습니다. 이때 제한시간(6시간 15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를린, 뉴욕마라톤대회는 제한시간이 없다고 들었는데... 저의 최고기록은 올 3월 서울마라톤에서 세운 6시간 17분, 여기서 2분을 단축시켜야한다니 고민이 또 하나 생긴 것입니다. 아무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완주를 목표로 뛰자고 다짐하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9월 27일~29일 까지 마라톤엑스포 행사가 열렸습니다. 첫 날 미리 답사해둔 마라톤엑스포장에 가서 배번호, 칩, 기념품을 받았습니다. 우선 엑스포장의 큰 규모에 또 놀랐습니다. 행사장에는 일찍 도착한 수많은 선수들로 붐벼 이미 마라톤대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옆에 앉은 노신사부부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많이 걱정된다고 했더니 완주만 하면 된다고, 즐기면서 뛰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고등학교교사로 정년퇴직했다는 남자분은 11월 4일 뉴욕마라톤에도 참가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다음 해외 마라톤목표인데...”라고 생각하며 내심 부러웠습니다.

제 34회 베를린마라톤 행사는 이틀에 걸쳐 치뤄졌습니다. 첫날 9월 29일엔 맨 먼저 오전 9시 30분 마라토너들을 위한 “조찬달리기(펀런)”가 있었습니다. 샬롯텐부르크성 근처에서 출발하여 올림픽스타디움까지 약 6킬로미터를 주최 측의 슬로건대로 “아주 천천히” 달리는 행사였습니다. 14:00시; 만 10세 미만 어린이들의 500/1000미터 달리기, 16:25분; 올해 처음으로 개설된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주 학생들을 위한 미니마라톤대회(4, 2195킬로미터), 16:45; 인라인 스케이팅마라톤, 저녁엔 교회의 저녁기도, 스케이터들을 위한 파티가 열리는 등 다양한 행사들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날 9월 30일 프로그램은 8:35; 휠체어선수 출발, 8:45; 핸드바이커선수 출발, 그리고 9:00시에 마라톤/파워워커 출발, 14:00부터 18:00까지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시상식 및 송별파티, 20:00부터 마라톤주자들을 위한 파티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9월 29일, 펀런 참가여부를 놓고 오랫동안 고심했습니다. 잘 달리지 못하기 때문에 평소에 마라톤 참가 전날은 푹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해오던 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기예보에 의하면 날씨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펀런에 비를 맞고 달리면 본 경기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고심 끝에 두 가지 이유에서 참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조찬달리기가 열리는 넓은 도로에서 한번 뛰어봄으로써 넓은 도로에 대한 감각을 익혀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 또 다른 이유는 한국 마라토너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먼저 재미있는 복장으로 단장한 달리미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오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대같이 큰 사람들 틈에서 동양인들을 발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행사장을 두어 바퀴 돌다가 대형태극기를 발견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그룹이었습니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던 중 또 다른 쪽에서 한 젊은 청년이 다가왔습니다. 그도 역시 “독립군‘ 이었습니다. 이들과 일행이 되어 올림픽스타디움을 향해 달렸습니다. 아무 부담 없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는데, 아침식사로 받은 빵이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빗줄기가 꽤 굵어졌습니다. 손기정 선수를 비롯한 육상 우승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손기정 선생의 국적은 여전히 Japan으로 쓰여 있어 가슴이 아팠습니다. 집으로 오는 도중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져서, 내일 날씨가 몹시 걱정되었습니다.

내일 입을 복장에 번호표 달고, 신발에 칩 달아놓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을 청했습니다. 마라톤을 앞에 두고 늘 그러하듯 떨림, 설레임으로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시계를 4시에 맞춰놨습니다. 9월 30일 새벽 4시.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네 시간 정도 잤으니 컨디션은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날씨가 문제였습니다. 라디오를 켰습니다. 뉴스 끝자락 일기예보는 다행히 흐리겠다는 예보였습니다. 전날 행사 때는 비가 많이 와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올 3월 서울마라톤에서 궂은 날씨 속에서도 완주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날씨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독일에 왔으니 아침식사는 독일식으로 흑빵에 쏘시지, 햄, 치즈를 넣어 커피 한잔과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06:15분에 집에서 나와 행사장에 도착하니 06시 50분인데, 정각 7시에 문을 연다고 했습니다. 행사장 주변의 교통통제는 물론 일반인의 출입이 모두 통제되고 오직 배번호를 제시해야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출입구도 여러 군데로 자기의 배번호와 가까운 곳으로 찾아가야 되었습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사전에 답사해두었습니다. 정각 07시가 되자 문이 열렸습니다.

참가번호에 따라 미리 정해준 물품보관소를 찾아가는데도 10분 이상이 걸렸습니다. 주위를 전부 막아놓아서 미리 답사해 둔 장소와 다르게 느껴져 잠시 혼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탈의실과 물품보관소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바로 물품보관소로 가서 물품을 맡겼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 가볍게 움직이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여자선수들의 복장, 표정 등을 눈여겨봤습니다. 모두 자신감에 넘쳐있었고, 체격도 거의 남성수준에 가까웠습니다. 과연 저들과 함께 뛸 수 있을까 생각하니 또 주눅이 들었습니다. 너무 일찍 물품을 맡겼던지 추워져 보온용 비닐을 받아 몸을 감쌌습니다. 천천히 맨 마지막 H그룹에 가서 정렬하여 출발지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하늘은 잔뜩 흐렸습니다. 기온은 약 10도 정도로 약간 쌀쌀했고 전날 비가 많이 와 도로가 많이 젖어있었습니다.

세계 115개국에서 온 4만여 명이 운집한 출발점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키 큰 사람들에 가려 출발선이 어디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베를린 시장의 인사말이 끝나고 9시 정각 A~E 그룹들의 출발과 동시에 수만의 풍선들이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다음 F~G 그룹들이, 그리고 제가 속한 H그룹이 각각 2분 간격으로 출발했습니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인파에 저절로 휩쓸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유치원학생이 멋모르고 어른들 틈에 끼어서 밀려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앞으로 보내고 천천히 마지막 그룹에서 뛰니까 6차선 도로가 더 넓어보였습니다. 온 세상이 내 것인 듯 무한한 자유를 느꼈습니다. 응원 나온 연도의 꼬마들과 하이파이브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익숙해진 역들, 주변의 건물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막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풍기는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죽 뻗은 넓은 가로수길을 행복한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그렇게 달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내관광이 되었습니다. 베를린 시내를 한바퀴 돌아서 다시 출발점 부근의 브란덴부르크문을 통해 골인하는 코스는 베를린의 거의 모든 주요 도로 및 지하철역을 통과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평소의 기록정도로 하프코스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02:52:34). 하프코스 지점에는 "절반은 해냈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린 대형 아치가 세워져있었습니다. 또한 규모가 제일 큰 라이브 뮤직밴드가 힘찬 음악을 연주하면서 여기까지 온 달림이 들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사과 1/4 쪽과 바나나 1/3 개를 들고 뛰면서 먹었습니다. 25킬로미터를 조금 지났을까, 응원하던 한 사람이 “세계신기록”이 나왔다는 종이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갈 길이 먼 사람은 잠시 맥이 풀리는 듯 했습니다. 어렵게 36킬로미터를 지나 37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러, 오늘 37 킬로미터 달리시고 지금쯤 편히 쉬고 계실 ‘반달 선배님들’이 생각났습니다. 반달의 응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지막 힘을 내서 뛰었습니다. 매 킬로미터마다 표지판이 있어서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가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마지막 구간에서는 주로 곳곳에서 진행요원들이 몇 킬로미터, 몇 백 미터 남았다고 일러주어 골인지점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 구간 도로의 바닥에 파랑색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 길을 잘못 들 염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도 심리적 안정을 갖게해서 유리하게 작용했던것 같습니다(이번엔 제 앞, 뒤에 꽤 많은 사람들이 달렸기 때문에 다른 길로 접어들 염려는 전혀 없었습니다).


거의 후미그룹인데도 응원의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구 동독지역에 있는 훔볼트대학을 지나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하여 골인 지점을 향해 마지막 구간을 힘차게 달렸습니다. ‘브라보!’, ‘수퍼!’ ‘힘내세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라는 응원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습니다. 골인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시민들의 함성이 더 커졌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아직도 떠나지 않고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를 위한 별도의 응원단이 구성되어 나온 것 같아 온 세상이 내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늘 꼴찌그룹에 속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완주의 기쁨을 나눌 수 없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2007년 9월 30일 그 시간은 저를 위해 특별히 마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6년 서울마라톤에서 처음으로 풀코스 완주했을 때 축하받았을 때의 환희와 버금가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전 구간을 걷지 않고 달려서, 드디어 골인! 완주시간 6시간 10분. 황홀한 순간이었습니다. 제 기록을 공개하자면, 전체 마라톤 완주자 32,532명중 32,416등, 여자 완주자 6,505명중 6,445등, 연령대: 96명중 93등 했습니다. 제한 시간 내에 들어왔고, 반달의 골찌가 독일 베를린마라톤에서 꼴지를 안했다는 게 큰 수확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무런 부상없이 무사히 완주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풀코스에서 기록갱신이 가능했던 것은 날씨, 컨디션, 코스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1백만 베를린 시민들의 열띤 응원과 60개의 밴드의 힘찬 연주가 제일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교통통제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주최 측에서 미리 마라톤 전 구간의 전주에 작은 글씨로 붙여 놓은 교통통제 포스터에 적힌 통제시간(29일: 09시-20시까지, 30일 02시-16시까지)을 철저하게 지켜준 시민의식이 부러웠습니다. 항상 후미그룹은 자동차의 매연을 마시며 달리게 되는 우리의 환경이 떠올랐습니다. 응원 나온 50대 중반의 여인의 말처럼 ‘베를린마라톤을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평범한 베를린시민들’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후미그룹이 지나갈 때까지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응원하는 모습이 하나의 작은 예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하는 기록을 달성하지 못한 사람들도 세계 5대 마라톤중 하나인 베를린마라톤에 참가하여 완주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베를린마라톤에 받은 인상들 중 하나는 우선 마라톤을 생활체육으로 권장,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였다는 것입니다. 밤비니마라톤(어린이마라톤: 만 1세에서 10세까지)에 800명이 참가했고, 미니마라톤(학생)에 1만명이 참가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 마라톤 못지않게 어린이 및 학생들의 미니마라톤에 많은 관심을 쏟은 것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관심과 배려가 어우러져 베를린마라톤이 일종의 <마라톤 축제>라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골인지점에 가족들이 주자들을 사진 찍도록 특별무대를 설치하고 가족들과의 만남의 장소도 별도로 마련해주는 등 주자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는 축제로 만들고자 한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 마라톤대회였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시니어참가자들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은 남성(80대 완주자 2명; 기록:5:21:32, 5:31:07)뿐 아니라 여성완주자중에 스위스 출신의 80대도 있었었다는 사실과(기록:06:01:59), 제가 2007 서울마라톤 연령대(특별상 수상)에서 5등을 했는데, 베를린마라톤에서 96명중 93등을 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이 80대 여성은 개막행사에서 1925년생이라고 호명되기도 했습니다. 이 분들의 노익장은 저 뿐 아니라 모든 마라톤주자들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월 1일자 일간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에 모든 종목의 모든 완주자들의 이름, 완주시간및 순위가 63쪽이나 되는 부록에 실렸고, 미니마라톤 완주자들의 기록은 19쪽에 달하는 부록에 실렸습니다. 제 이름 석자도 들어있는 이 신문은 가보로 간직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세계신기록 수립(02:04:26)의 꿈을 이루신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선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완주하신 한국의 마라토너들에게도 축하의 말씀 전합니다.

아울러 항상 인내와 관심으로 꼴찌를 격려해주신 박영석 명예회장님을 비롯한 서울마라톤클럽, 반달의 모든 식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마라톤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과 베를린마라톤 완주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싶습니다. 일요일 춘천마라톤에 참가하시는 분들의 건강하고 즐거운 완주를 기원합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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